우리, 너희, 그리고 외인들

에베소서 1:3-14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설교요약>

5세기 무렵부터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곡조를 붙여서 노래로 부릅니다. 그래서 기도가 찬양이 되고 말씀이 노래가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에 단순히 율법을 암송하는 허공의 소리일 뿐이다. 바울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와 찬양으로 서로 화답하라고 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찬양할 때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누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놀라운 은혜이고 축복이다. 그 은혜를 경험할 때 소망이 생기고 습관적인 죄와 내적인 상처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3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다고 했는데 그 중에 영적인 가족도 있다. 우리는 영적인 가족 안에서 더 깊은 사랑을 나누는 축복을 누리며 그로 인해서 육적인 가족도 더 온전하게 사랑하게 된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관점으로 볼 때에는 영적인 축복과 육적인 축복은 어떤 관계인가? 결론적으로 보면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 이유는 세상적인 부자가 영적인 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적인 축복을 많이 받던 사도바울은 육적인 축복들을 거의 소유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가복음 12:33-34절에 보면 육적인 축복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눠주면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된다. 여러분에게 있는 육적인 축복은 무엇인가?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그것들을 주님께 드리면 영적인 축복으로 전환된다.

열매는 생명이 있다면 반드시 열려야 한다. 성령의 열매를 가진 자들의 성품은 예수님을 닮은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영적인 제자들을 계속 낳는 것이다. 하지만 성령의 열매는 없고 은사만 있다면 주의해야 한다. 마가복음 16: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은사적 증거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이 은사는 믿는 모든 자들에게 나타난다고 하셨는데 왜 우리에게 이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가? 그 이유는 능력을 일으키는 주체가 우리가 아니라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즉 성령님의 뜻대로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는 능력이 진정한 성령의 은사이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의 능력에 순종해서 일으킨 기적이다. 복음서에 보면 스스로의 능력으로 행할 수 있던 예수님도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셨다. 성령에 거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 결과를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영적인 복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성령 그 자체인 것이다. 에베소서 1:13-14절에 보면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고 그 성령이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셨다고 한다. 성령은 하나님 자체이다.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한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 죄인인 우리에게 거룩하신 성령님이 거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피로 인함이다. 죄에 물든 우리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었고 다시 부활하신 것이다. 이 생명은 더 이상 아담으로 받은 병든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적인 생명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3, 9, 11, 12절에 보면 ‘우리’라는 인칭 대명사가 나온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이미 다 구원 받을 백성들이 결정된다고 하신다. ‘우리’에 대해서는 우리가 믿었다라는 표현이 없다. 하지만 13절에 ‘너희”에 대해서는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어 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너희에 속한 사람들이 우리에 속한 사람들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다시 그리스도의 밖에 있는 사람, ‘외인’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있음에도 아무런 열매도 능력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원인은 극단적인 거짓말에 속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영적인 복들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교인들과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고 여기는 이단적인 사상이다. 즉 거짓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찬송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구원의 길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열어주셨다는 사실이며 한번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그 사랑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것과 같이 주께 드리라! 주님을 가장 앞에 두어라! 그리고 다시 주님이 하신 일들을 찬송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