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메드 영성

마태복음 8:19-23 | 예레미아 35:14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14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의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끊임없이 말하여도 너희는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

<설교요약>

믿음의 절개를 지킨 영성
예레미야3:14에 따르면 노메드 레갑족속의 영성은 300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믿음의 절개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런 절개를 보고 계시고 알고 계셨다. 레갑의 노메드 영성은 예수님을 닮았다.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마귀로 부터 3번이나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타협하지 않으셨다. 그의 친 형제들은 그가 정말 위대한 분이시면 시골에 묻혀있지 말고 세상에 드러내라고 자극했다. 요한복음 7:4-5을 보면 그의 사랑하는 제자로 부터 '십자가를 지지 말라는 유혹' 도 받았으나 타협하지 않으시고 꿋꿋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셨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유혹했으나 죄인들의 죄사함을 위해 인내하셨다.마태복음 27:42에 예수님이 받은 유혹은 십자가를 지지 말고 세상 영광과 쾌락을 즐기라는데로 모아진다. 짧은 인생 예수님을 위해 거룩한 고난을 받는것을 중단하고 스스로의 육신의 정욕을 채우라는데로 모아진다. 바울은 로마옥에 갖혀 있을때 이렇게 빌립보 성도들에게 말했다. 빌립보서 1:28-30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많은 사람과 상황을 통해 많은 은혜를 부어주신다. 그러나 그 은혜가 고난을 받게하기 위해 주신것임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위한것은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이다. 한 영혼이 예수님 처럼 살도록 돕는것이다. 지옥의 고통속에 살아가는 자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영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이다. 예배자들이 되도록 돕는것이다. 나에게 준 은사와 가진것을 나누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면서 어려움을 격는 것이 고난이다. 이때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고난받는 것이 구원받은 증거기 때문이다 라고 한다. 그것은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는 동일한 싸움이기에 이 세상 어디든 존재한다. 주님 만날때 까지 피할수 없는 일이다. 우린 고난을 피해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사는한 세상 어딜가도 동일한 싸움이 있다. 그것은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마귀가 여러가지 방법으로 공격해 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레갑족속의 절개, 예수님의 절개를 가진 그분의 자녀의 삶을 모두 지켜보고 알고 계신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세상 정욕에 빠져 길을 잃은 자들을 깨우는데 사용하고 싶어하신다. 당신은 깨우는 사람인가? 깨워야 할 사람인가? 
무소유의 영성
노메드는 땅을 사지 않는다. 목초지를 따라 계절마다 이동하며 산다. 최소의 생활 용품을 가지고 다니는 거의 무소유의 삶에 가깝다. 이 명령을 300년이 흘러도 레갑자손들은 지켜오고 있었다. 예레미야 35:8-10에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8:20에 따르면 예수님은 바다위를 걸을수 있고 폭풍도 잠잠케 하시는 분이시다. 죽은자도 살릴수 있는 분이시다. 원하시면 무엇이든 하실수 있다. 온세상의 주인이시다. 그런분이 없어서 가난하게 된것이 아니라 가진것을 포기함으로 가난하게 되셨다. 체념을 무소유의 삶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체념은 가진것이 없지만 어떤것을 소유할 기회가 주어지면 움켜쥐는 삶이다. 그러나 무소유는 가질수 있지만 포기하는 것이다.다시 가질수 있는 기회가 와도 움켜쥐지 않고 나눔으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체념이 아니라 무소유의 삶을 사셨다. 무소유의 삶을 사신 이유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집중하시기 위함이셨다. 이 말씀 다음에 한 제자가 아버지를 장사하고 따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마태복음 8:21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태복음 8:22에 이것은 하나님 사역의 긴박성을 보여준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내주실때 한사람 한사람을 더 깊게 더 따뜻하게 사랑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오늘 아니면 내일하지가 아니라 긴박감을 가지고 사랑해야 한다. 누구든 오늘이 마지막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긴박감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을 가장 방해하는 것중에 하나가 '소유' 다. 가진 소유가 많아질수록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소유에 더 많은 관심과 관리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소유가 없다고 대답하게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마태복음 8:19을 보면 이때 예수님은 여우와 새를 비유하며 머리둘곳이 없다고 하셨다. 이것은 나를 따르려면 소유보다 사람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수있니? 라는 의미다. 그 다음 장사하고 따르게 해달라는 사람에게도 때로 혹독하게 대답하신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장 무거운 소유가 될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럼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도 소유가 아니고 사람이지 않는가? 라고 의문을 제기할수 있다. 예수님은 부모를 사랑하고 가족도 사랑했다. 십자가에 죽으면서도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때로 하나님의 사랑이 더 우선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릴 보낼때가 있다. 순종하면 하나님이 놀라운 일들을 이루신다. 그러나 이때 내가 원하는 우선순위를 내세우며 그것을 먼저 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사람이 소유로 우리의 내면에 자리잡으면 사랑이 아닌 도피처가 된다. 우상이 된다. 우상은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사랑을 흘러가지 못하게 한다.따라서 무소유의 삶은 우선순위다.영적인 민첩성과 무소유의 삶은 연결되어 있다. 영적으로 민첩할수록 더 무소유의 삶을 살게되고 무소유의 삶을 살게 될수록 영적으로 민감해진다. 하나님이 소유를 계속해서 부어주시면 어떻게 하나? 라고 반문할수 있다. 민첩하게 흘려보내라. 사용하라. 그러면 썩지 않을것이다. 그러면 영적인 지방이 되지 않고 근육이 될것이다. 
당신은 무소유의 영성이 있는가? 
상급 
예레미야 35:18-19을 보면 하나님의 상급도 특별하다. 이세상의 상급과 다르다. 레갑의 자손에서 하나님을 섬길 사랑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실것을 상급으로 약속하셨다. 예수님은 탄생부터 죽음 부활까지 한결같이 신선한 향유처럼 순수했다.하나님을 향한 사랑 사람을 향한 사랑이 열정이 불탔다. 이것이 하나님의 상급이다. 시간이 지나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계속되고 순수함을 잃지 않고 열정의 불이 계속 타오르는 것은 하나님이 해주셔야만 하는 일이다. 주님이 은혜를 부어 주셔야만 계속 탈수있고 태울수 있고 녹일수 있다. 
주님은 오늘도 노메드의 영성을 가진 사람을 찾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