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소원

요한복음 17:1-11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세 번째 사람으로

누가복음 10:25-37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설교요약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다. 3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에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사람들은 여분의 옷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불로도 사용했기에 귀중품 중에 하나였다. 강도만난 사람은 지금 도움이 절실요 요구되는 상황에 있는 사람이다. 그냥 놔두면 생명이 위독했다. 이때 마침 한 제사장이 그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해 지나갔다. 한 레위인도 그를 보았지만 피해서 지나갔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알고 있었고 이 사람들을 도와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도 알고 있었다. 조금전에 율법사가 대답한 신명기와 레위기 말씀 '마음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제사장은 특히 시체로 인해 부정해 지는 것을 피해야 했다. 시체와 접촉하면 성전에서 의무를 수행하지 못할수 있었다. 그러나 7일 정도의 정결의식을 통해 다시 깨끗케 될수 있었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제사를 드리러 간다고 볼수없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은 위선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 사랑을 알지만 그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피하고 있다. 두 사람이 피해 간 이유중에 하나는 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 이라고도 볼수있다. 도적떼는 주로 외지고 인적이 드문곳에서 강도짓을 한다. 따라서 강도만난 사람은 외진곳에 방치되어 있었을 것이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사람을 피해 지나갔다. 자신의 선행과 경건에 대해 스스로 자만심에 빠져있던 율법사는 이 두 사람의 모습속에서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자신을 옳게 보이려 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누가 볼때와 보지 않을때의 모습이 많이 다를수 있다. 그러나 겸손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늘 의식하기에 아무도 보지 않아도 아름다운 구제와 선행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하는 중에 죽어가는 사람을 보았다. 여행은 자신의 삶을 누리는 시간이기에 누군가에게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강도만나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까이 갔다. 그리고 긍휼이 여겼다.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게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다음날 주막 주인에게 2데나리온을 주고 돌보아 주게했다. 비용이 더 들면 자신이 돌아올때 갚아줄것이라고 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인을 격멸하고 무시했다. 사마리안인은 자신의 동족이 아닌 강도만난 유대인을 돌보아 주었다. 예수님은 이 세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는가 물었다.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사람이라고 했고 예수님은 가서너도 이와같이 하라고 하셨다. 율법사는 이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세번째 사마리아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베푼사람 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자만심에 빠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예수님이 이 율법사에게 이런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었다면 이런 이야기 조차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가 세번째 사람처럼 변화되길 원하셨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진실하게 마음으로 고통당하는 한 사람을 돌보아 주는 그런 삶을 보여주셨다.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율법사에게는 쉬운 삶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망적인 것은 그가 이 비유의 세번째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베푼 사람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깊이 깨달았다.이 세번째 사람은 예수님을 닮았다.강도당한 자는 주님 만나기 전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사단에게 강도당해 몸도 마음도 모두 찢기고 버려진 삶을 살았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삶이었다. 그때 주님이 홀로 우리에게 먼저 찾아와 주셨다. 그리고 아픈 상처에그 분의 보혈의 포도주로 소독해 주시므로 모든 고통을 주는 악한 균들을 죽이시고 치료해 주셨다. 다시 그 상처에 성령의 기름을 붓고 그분의 사랑의 손길로 우리의 상처를 싸매어 주셨다. 그리고 그분의 어깨에 태워 주막인 교회로 우릴 이끌어 주셨다. 우린 예수님에 의해 새 생명을 얻고 치유되고 회복되어 또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고 살리는 천국을 살고 있다. 율법사가 봐야 했던 것은 인간의 사랑의 한계다. 그는 세번째 분 예수님이 필요했다. 그 자신이 강도만난 사람임을 보아야 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사랑하고 착하다고 살고 있는데 그는 죄인이었다. 사람의 사랑은 일시적이고 쉽게 변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지속적이다. 예수님은 다시 돌아 올때까지 우릴 성령의 집인 교회에 맡기셨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계속 지불하시고 있다. 당신의 이웃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강도만난 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은 당신을 이런 사람들에게 보내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셔서 강도만난 당신을 살려주셨다. 

몇주전 수요예배에서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한 형제의 간증을 들었고 감사함의 표현과 존경의 표현을 하며 우느라 말을 잊지 못했다' 크게 격려가 되었다. 다음날 나는 이런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인가? 생각이 되었다. 또한 주님 품에 안기는 순간까지 거룩하고 순결하고 흠없는 신실한 선교사로 목사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뉴욕에서 선교사로서의 5-6년의 세월과 맨하탄 선교교회 담임 목사로서의 12년의 세월 동안 나의 인생의 노른자 같은 시간을 뉴욕에서 사역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으로 생각한다. 나의 성도들과 함께 뉴욕의거리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함께 울고, 웃고, 고난을 통과했고 먹고 굶었다. 찬양했고 예배했다. 열방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함께 아픈 영혼들을 안았고 기도해 줬고 세례를 주었다. 열방 가운데서 함께 아침에도 찬양했고 저녁에도 주를 예배했다. 함께 잤고 기차를 탔고 비행기를 탔고 차가운 마룻바닥에 자면서도 기쁘고 기뻤다. 함께 바닷가를 찾았으며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우리가 어찌 우리 형제 자매들을 잊겠는가? 우리가 어찌 뉴욕을 잊겠는가? 맨하탄 선교 교회를 잊겠는가? 죄송함도 있다. 좀더 사랑해 주지 못한것, 좀더 안아주고 좀더 함께 하고 좀더 긍휼이 여기지 못한것이다. 그러나 감히 바울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빌립보서 1:8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세번째 사람으로 살자. 예수님 처럼 살자. 주님 다시 오실때 까지 그렇게 살자. 

양의 권세

누가복음 10:1-24
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살아 있는 사람인가?

누가복음 9:57-62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설교요약

유익을 추구하는 사람

57절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고백하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하나님의 일을 할때 외로움과 고난이 있음을 알수있다. 예수님의 대답속에 질문한 사람의 마음이 드러난다. 예수님을 따르면 많은 물리적인 유익을 누릴수 있을것 같아 따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위험한 것은 예수님을 따르다가 어려움이 오고 물리적인 유익이 보이지 않으면 언제든 떠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예수님이 이 사람에게 즉시 예수님을 따를때 오는 어려움과 고난을 말해준 것을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의 이런 반응은 이 사람이 잘못된 기초위에 자신의 믿음과 헌신을 쌓아올렸다가 훗날 크게 무너지는 것을 피하게 하기 위한 은혜였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과정속에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경험할때, 여러 어려운 상황들을 마주하게 될때 두가지 반응을 할 수있다. 첫째,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신 여우와 새는 거철할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둘곳 없다는 말씀을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이 내면에 숨어있던 잘못된 동기의 헌신과 욕망들을 고백하고 회개한다. 그리고 새롭게 품어야할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 둘째, 가치가 어려움과 외로움을 능가하게 한다.

도피하는 사람
59절 두번째 사람은예수님으로 부터 벗어날 핑계를 궁리한것 같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죽은자로 죽은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다. 믿지 않음은 영혼이 죽어있는 상태임을 알려 주셨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산자와 죽은자를 물리적인 것으로만 본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자와 죽은자를 영적으로 구분했다. 영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살았지만 죽어있는 상태다. 영혼이 죽어있는 상태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 내면에서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사랑과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죄의 유혹을 이길수가 없어 죄의 노예로 살아간다. 육신의 본능으로 살아간다. 당신은 이런 예수님의 시각이 있는가? 이 시각을 가질때 삶의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바울이 옥에 갖혀 골로새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을때,바울의 기도부탁은 육체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죽은 사람들로 보는 예수님의 시각과 같음을 본다. 바울은 순교를당했지만하나님은 바울이 감옥에서 쓴 서신들을 성경이 되게 하셔서 바울의 시대로 부터 2천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의 글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읽게 하시고 있다. 서신을 읽는 사람들의 영혼이 살아나고 믿음의 사람들에게 계속 생명을 주고있다.

살아있는 사람
영이 살아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한다. 죄의 유혹을 받지만 그 유혹을 말씀과 성령으로 이긴다. 내면에 두려움과 슬픔을 이길수 있는 평안과 기쁨이 있다. 더 이상 사단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지배와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간다. 특히 5 가지를 추구하며 산다. 
첫째,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늘 인식하며 산다.
둘째, 악한 것을 피한다.
셋째, 추적하며 산다. '의,경건,믿음, 사랑, 인내, 온유를 추적 'pursue' 하며 살게 된다. 이런 것들은 예수님의 성품이다.
넷째.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다. 하나님을 따르다 보면 아주가까운 가족들에게도 오해를 살때도있다. 쟁기를잡고 뒤를 돌아보게하는 것들은 먼관계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인 경우가 많다. 이때 믿음의 싸움을 하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우리의 내면에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Divine Appointment'를 따라가야 한다. 당신은 주님이 인도하시는 사람과 장소로 갈려고 매순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다섯번째, 영생을 붙든다. 

당신은 이 5가지를 추구하며 사는가? 
이런 영적인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하는 중요한 방해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 하는 사람의 이성과 감정이다. 당신의 이성과 감정은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는가? 당신의 이성과 감정에 의해 인도를 받고 있는가? 매순간 말씀이 당신을 읽게하고 기도가 당신을 읽게 하고 성령이 당신을 읽게 하라.

영광스런 복음 _부활절

골로새서 1:4-5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설교요약>
구약과 신약의 공통된 주제 예수님

구약성경은 대략 32명의 저자들이 1100여년에 걸쳐 완성되었고 신약은 약 500여년에 거쳐 완성되었다. 구약은 주전 1500년에 기록을 시작하여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주전 400년 경, 신약으로 넘어오는 시기인 400년을 포함해서 구, 신약은 대략 1500~1600년의 시간이 소요되어 완성되었다. 구약은 1100년 동안 32명의 저자들에 의해 한가지 공통된 주제를 계속 기록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것이고 그분이 어떤 일을 할 것인가의 기록이다.

누가복음 4장 17-19절과 이샤야 61장 1-3절을 비교해 보면 이사야서의 '여호와의 영'은 누가복음에서는 '주의 셩령' 으로 표현되었고, 이사야서의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은 누가복음에 '복음'으로 표현 되었고, 이사야서의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은 누가복음과 같고, 이사야서에 '갇힌 자에게 놓임을'은 누가복음에 '눌린자를 자유롭게 하고'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여기에서 하신 말씀은 예수님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할것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음과 영혼과 육체가 사단과 어둠에 묶이고 병에 의해 고통받는 자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고, 슬픔대신 기쁨을 주어주시는 일을 하실것 임을 의미한다. 이사야 61장과 누가복음 4장에 기록된 동일한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과 복음'이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우리의 영혼에 부어질때 우리는 복음, 말씀을 가지고 한 영혼에게 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을 받아야함 이해되고 깨달아지고 믿어진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가난한자, 마음이 상한자, 포로된자, 갇힌자, 슬픈자들에게 나의 가난과, 상한 마음과, 어둠에 묵임과, 슬픈 영혼을 풀어주고 기쁨을 준 그 복음을 전해주고 싶은 열정을 갖게된다.

유월절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과 예수님의 체포는 같은 날짜인 목요일 저녁부터 시작된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 노예생활을 하다가 모세를 통해 극적으로 구원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1년 된 어린 수양이나 염소를 4일 전에 택하여 4일 동안 그 희생 짐승을 보면서 유월절을 깊이 생각하게 하고 14일 저녁 (목요일)에 짐승을 잡고 그 피로 자신의 집 문설주에 바르고, 그 밤에 고기를 불에 굽고 서서,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하게 먹으라고 명령 하셔다. 유월절 고기를 저녁에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었다. 유월절 저녁에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사람과 짐승의 장자를 천사를 통해 죽으셨다. 그러나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사람들의 집은 넘어가게 하셨다. 그래서 유월절은 양의 피로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형벌로 붜 은혜로 넘어가는 날이 되었다. 예수님이 유월절 시작되는 저녁에 로무군병에 의해 체포되었고 고난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결국 유월절 어린양으로 그 피를 흘리며 죽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사단의 속박에서 그의 피로 자유케 되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셨고 우리는 그 피의 은혜로 심판과 저주에서 자유케 되었다. 집 문설주에 바른 피는 예수님의 피를 마음에 받아드려 바르라는 의미이다. 특히 유월절 양의 뼈를 부러뜨리지 못하게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당시 로마군인들은 삽자가 죄수의 발을 망치로 부러뜨려 발을 받치고 숨을 쉬지 못하게 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게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그 다리를 꺽지 않았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 이심을 증가하기 위함이었음을 요한은 말하고 있다.

유월절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예표한다면 죽으신지 3일 만에 부활한 예수님의 일은 구역 출애굽기 14장 28-30절에서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3일만에 홍해 바다를 건너 죽음 직전에서 구원을 받았다. 이것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 말하고 있다. 세례는 물속에서 옛사람이 죽고 물 밖으로 나올때 새로운 생명을 얻는 부활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 한지 3일 만에 홍해 가운데서 옛사람은 죽고 3일 만에 새생명을 얻었다. 홍해의 붉은 물은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한다. 예수님도 죽은지 3일 만에 부활하셨다. 부활의 증거들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었다.

복음안에 있는 축복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소문을 들었다. 그 믿음과 사랑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하늘에 쌓아두신 소망에서 왔다. 그 소망은 진리의 말씀이 있는 복음을 들을 때 그들에게 왔다.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에 소망이 생긴다. 그 소망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쌓아두신 것으로 믿을때 그 사람에게 주어진다. 복음은 슬픔을 치료한다. 고통을 기쁨으로 바꾼다. 우리의 마음은 주님을 알기 전에는 절망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들으면서 소망이 생겼다. 그 소망에서 믿음과 사랑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이것이 복음의 영광이다. 그래서 복음을 받으면 목숨을 걸고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 복음은 이 세상 어떤 협박과 고난과 유혹과 핍박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게한다. 그 이유는 이미 이 복음이 죽은 우리를 살려 주셨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피 흘리시며 죽으신 그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에게 찾아오셔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알려 주셨고 지금도 그 사랑을 부어 주시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를 바꾸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