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에서 찬송하라

에베소서 1:3-14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설교요약>

바울은 고린도, 빌립보 등 당시의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워나갔다. 대도시는 그때나 지금이나 열방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에베소는 바울에게 아주 특별한 곳이었다. 에베소는 다른 대도시들과 달리 정치, 군사, 무역이 발달한 곳이 아닌 종교의 중심지였다. 종교의 중심지였던 만큼 에베소에는 에베소 주변 황제들의 신전들보다 웅장했던 아르테미스 성전이 있는데 이 성전을 통해서 에베소는 주된 재정적인 공급원으로 삼았다. 신상과 기념품, 여관업, 대금업, 은행업을 했고 주술, 마술하는 무당 그리고 몸을 팔았던 신창들도 가득한 곳이었다.


이런 도시에 바울은 왜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자신이 다닌 선교지 중 가장 오랜 시간인 3년을 머물렀을까? 에베소야말로 거짓 신과 욕망을 좇는 열방의 영혼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가장 어두운 그곳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빛이 절실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제자들('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전, 그래서 서로 '제자'로 호칭)이 성령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바울은 그들이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을 알고 말씀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기도를 해주었고 성령의 강한 역사가 일어나 그 능력을 나타내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 시대의 에베소

에베소에도 장로들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은 우상과 전혀 상관없는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도시 전체가 아데미 신전의 덕으로 운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있었다.

현대인들과는 달리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을 자아 성취의 기회로 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상숭배와 관련된 자신의 직업으로 인한 내적, 외적 갈등은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 직업들을 다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다. 사실상 우상과 관계없는 직업을 찾으려면 그들 모두 에베소라는 도시 자체를 떠나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누구보다 그 현실과 그들의 고통을 알았으나 주님의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지 말고 그곳에서 도리어 예배하고 말씀을 흥황하게 하라고 말하고 있다. (행 20:28)

주변에 사진의 일을 즐거워하고 보람을 느끼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 것이다. "능동적"이 아닌 "수동적"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일생에 평균 60%라는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데 직장을 싫어한다고 하니 불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도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어쩌면 더 심각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한복음 15:19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였으니 세상은 우리를 미워할 것이라고 하셨다. 비그리스도인들 처럼 세상에 묻혀서 살지 않고 세상이 나를 미워할 때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환한 빛을 세상에 비출 때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미워하는 사람들도 언제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서 예배받기를 원하신다. 그런 곳에서 예배와 찬송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다. 세상이 교회를 더욱 미워하는 그런 악한 사회에서 고통 받고 있을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바울은 이 편지를 썼고 에베소 같은 곳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주님의 편지이기도 하다.

찬송하는 이유

본문 시작을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한다. 이것은 시편에 "할렐루야"와 같은 의미이다.

우리가 찬송해야 하는 이유,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택하셨기 때문이다. (본문 4,5,9,11절) 하나님께서 그 기쁘신 뜻으로 우리를 세상을 창조하기도 전부터 우리를 알고 계셨고 마음에 두고 계셨다고 그것을 기뻐하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다.(본문 7절) 짧은 한 절이지만 아주 강력한 말씀이다. 구약에서 죄 사함은 언제나 '피 흘림'의 대가로 이루어졌고 그 피 흘릴 제물은 흠이 없고 가장 값진 것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죄가 없는 사람은 없고 죄를 용서받기에는 이 세상의 제물은 너무나 부족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다. 역사상의 모든 인류의 가치를 다 합쳐도 남고 넘치는 가치를 가지신 분, 동시에 죄 없는 인생을 사신 유일한 분, 그분의 피가 흘려짐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게 된 것이다. (히 10:10) 그리고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엡1:9) 때문에 우리는 찬송해야 한다.

'두란노'라는 학교

두란노는 사람 이름인데, 학자들은 대체로 학교의 주인이면서 선생이었을 것으로 본다. 두란노 학교는 당시의 신전이나 극장들처럼, 우상 숭배자들이 자신들의 신들을 위해서 땅을 고르고, 벽돌을 쌓아서 지어진 헬라식 건물이었고, 그 전까지만 해도 바로 그런 세상의 교육과 우상 숭배 만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그런 학교가 두란노라는 라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므로 인해 바울이 에베소에서 2년여 동안 매일 밤낮으로 강론을 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기르는 신학교가 됐을 것이다. 강론한다는 공중 설교를 뜻하기도 해서 이 건물은 학교가 뿐 아니라, 예배당이 된 것이다(행 19:10)

전 세계인이 모이고 금융과 문화와 우상숭배가 가득한 세계의 중심지인 뉴욕,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우리와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건물 "학교", 과연 이 학교는 하나님 눈에는 그냥 학교 건물일 수가 있을까? 우리가 이 에베소 같은 뉴욕에 있고 예배드리는 것이 과연 유연의 일치일 수가 있을까? 에베소의 두란노 학교처럼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통해 이 교회를 통해 예배 받기를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