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생각

 

사도행전 22:24-23:13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대 
25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29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30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
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3 바울이 가로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5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6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9 크게 훤화가 일어날쌔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 여명이더라

 

<설교 요약>

• 고난의 한 복판에서 다른 계획을 말씀하시는 하나님
바울은 유대인의 공회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하고 다시 감금되었다. 그날 밤에 하나님이 바울에게 너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들을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리라는 말씀을 하신다. 이 말씀 안에 하나님의 성품들이 나온다. 첫째는 하나님은 그분을 거부하고 받아 드리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종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둘째는 하나님은 바울의 미래를 계획해 놓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을 결정하는 상황이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우리들의 삶을 보면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의 연속 임을 알 수 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첫째는 하나님이 당신의 미래를 준비하심을 믿어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의 사명에 순종하면 의, 식, 주 를 해결해 주심을 믿어야 한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한가지 분명한 증거가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 결과를 주께 맡기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사랑으로 한다
바울은 공회에서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지만 그 결과 누군가 믿었다는 사람은 없고 반대로 본인을 죽이겠다고 하는 40명의 무리와 그 당시 부활과 천사를 믿지 못한 사두개인들과 그것을 믿었던 바리새인과의 분쟁만 보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울에게 너가 오늘 했던 증언을 로마에서도 할거라는 말씀만 하셨다. 바울은 단지 한 사람의 영혼을 사랑했기에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한 것이다. 또한 주님은 결과를 주께 맡기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사용 하신다. 당신은 성실하게 주님이 주신 사명에 순종하는가? 우리는 요셉과 게하시의 이야기를 통해서 주위 상황도 중요하게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지만 우리 각자의 마음이 더욱 중요한 것을 증명해 준다. 두가지 마음의 싸움이 치열하게 우리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죄의 생각들이다.

• 두 마음의 싸움
바울은 자신의 내면에서 두가지 싸움을 발견했다. 선을 행하려는 마음과 자신이 원치 않는 악을 행하려는 마음이다. 로마서 7장 18-19절에 보면 마음의 법, 즉 하나님이 주신 계명인데 죄는 사랑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먼저 “생각” 부터 공격한다. 이 죄의 법이 나의 몸을 결박하여 죄수로 만들기 원한다. 그럼 이런 두 마음의 싸움에서 어떻게 이길수 있는가? 바울은 이 두 마음의 싸움 속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 이기는 열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법을 섬길 수 있는 마음도 주신다. 따라서 영적 전쟁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마서 7장 25절에 보면 예수님을 믿고 자유케 되었어도 다시 죄의 법의 공격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믿은 후에는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법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분의 선한 일 을 하고자 하는 갈망을 없애려는 공격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 싸움에 이길수 있는 방법을 로마서 8장에서 가르쳐 주고 있다.

• 성령을 따라 살아라
로마서 8장 1-2절에 보면 성령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고 말씀한다. 즉 성령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은 사단의 정죄로 부터 자유하다. 하지만 사단은 그리스도인의 내면에 계속해서 정죄감을 심어 주고 결국에 죄에 넘어지게 한다. 하지만 성령충만함으로 이런 음성을 듣게 되면 “너는 존귀하다. 너는 이미 죄의용서함을받았다” 라는 음성으로 듣게된다. 여기서 누군가는 죄를 짖고 정죄감이 없으면 어떻게 회개하겠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 성경말씀 밖에 없다
육신의 생각은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하지만 이길수 있는 것은 성령의 생각 뿐이다. 성령의 생각을 위해서는 불을 붙이는 기름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성경 말씀이다. 
시편 103장 4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과 권세는 사랑과 긍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내면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상급이고 하나님이 주신 권세이다. 이러한 말씀의 기름을 통해 부어진 생각들은 더욱 성령께 붙들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줄 것이고 그 결과는 더 풍성한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해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사도행전 21:37-22:23
37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2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22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설교요약>

하나님은 그분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생명을 철저히 그 분의 임재로 감싸고 있으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고나 병이나 어떤 일로인해 일찍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이때 그들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지 않으신 것인가? 라고 질문할수 있다. 그래서 '그분의 임재로' 감싸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요점은 육체적인 생명이 살았는가? 죽었는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고 있는가? 혹은 그 임재안에서 죽어갔는가? 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죽든 살든, 고난을 격든 형통의 일을 경험하든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그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고난의 마지막 목적지는 소망이다. 이 소망은 하나님이 마 음에 주시는 어떤 희망이고 꿈이다. 환란에서 이 희망까지 오는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 그래서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감싸시고 있는 사랑의 임재를 경험한다. 그럼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인지를 어떻게 알수 있는가?

바울이 예수님을 전하려 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 23년동안 세월이 그가 예수님을 모르던 세월 과 너무나도 다른것을 직접체험 했기 때문이다. 예수 이름을 전해 주었을때 그 이름의 권세가 귀신들린  종을 자유케 했음을 보았다. 빌립보 감옥의 자신들을 때리던 간수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어떻게 기뻐하고 자유했는지를 보았다. 루디아가 어떻게 헌신하게 되었고 루스드라의 나면서 걷지 못한 사람이 걷게 된 것을 보았고 어떻게 고린도와 에베소의 죄인들이 회개하고 그곳에 천국이 임했는지를 보았다.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사람은 바울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기쁨과 평안의 폭포같은 은혜로 인해 감옥속에서도 천국을 살았다. 이 안에 '기쁨, 관용(gentleness), 평안, 기도, 감사' 가 모두 들어있다. 특히 그가 누린 '평안' 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은 NIV 에서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평안' 이라고 번역했다.

우리는 사고와 이해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사물과 상황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생각지 못한 시각과 이해로 불안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안이 임하면 무엇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의 변화가 있다. 많은 경우 이 관점 때문에 미움, 거절, 관계끊음, 불안, 걱정 등의 감정이 증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가 기도할때 이런 관점들을 부수고 교정하고 분별케 해준다. 우리의 둔하고 어리석은 죄된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 기쁨, 소망 잠잠히 기다림, 낮은 마음등으로 채우신다. 이런 평안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기도와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필요와 감정들을 기도로 맡기며 아뢸때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좁은 이해와 생각을 초월하는 능력을 부어주신다. 잘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나의 갖혀있고 왜곡된 생 각들을 알게 해줌으로 넓은 시야 하나님의 초월적인 관점으로 인도하신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평안이다.

자신이 죽어도 천국에 갈수있다고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을 굳게 믿는 사람들은 이땅에서도 그 예수님을 굳게 믿기에 어떤 고통속에서도 천국을 누리고 경험하며 산다. 그러나 다음 세상에서의 천국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땅에서도 확신이 없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분이 나를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열쇠가 된다는 확신이 없기에 이땅에서도 내 삶의 모든 문제의 열쇠가 된다고 믿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 가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조그마한 미묘한 우리 내면의 불안과 근심에도 세심하게 신경쓰시고 안심 시키시고 평안을 주신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모든것이 되어 야 한다고 그의 간증속에서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환란의 목적지가 하나님의 소망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수있다. 첫째는 이미 이루어진 소망. 둘째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소망. 예수님 만나기 전의 우리가 가졌던 소망과 예수님을 만난후에 가졌던 소망을 비교해 보라.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날것이다. 세번째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형 소망이 있다. 미래의 소망에 대해 자신이 없어질때가 있을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소망에는 모두 사랑이 필수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씀은 이미 그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다고 한다. 예수님 안에 이 모든 축복들이 있다. 이해를 뛰어넘는 평안이 있 다.고난이하늘의소망이된다.그하나님이 주신 소망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묵고있던 지옥의 권세가 풀어지고 자유케 되며 이땅에서 천국의 평안을 누리며 살게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며 사는 사람들은 그 임재를 담고있는 예수님을 주고 싶어한다.

그럼 어떻게 이 천국을 담고있는 임재가 더욱 우리삶에 깊어질까? 사랑을 사용할때 그분의 임재가 더욱 깊어진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주셨기 때문입니다'(롬:5:5/새번역) 이 말씀에 의하면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랑이 없다고 두려워한다. 중요한것은 그 사랑을 사용하는것 이다. 그 사랑을 사용하면 할수록 그 사랑은 성령을 통해 계속 우리의 마음에 부어진다.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길 원하는가? 그럼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행동으로 나누어 주라. 그 사랑을 다 나눠주어 기진맥진해 갈때 성령은 다시 그 사랑을 우리의 영혼속에 더 크게 부어 주실것이다. 

따로 떼어 놓은 은혜

로마서 1: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설교요약>
이번 2018년 몽골 선교팀은 총 15명 이었다. 몽골팀 3명 (오랑거, 오농, 만두호이), 몽골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4명 (김선재, 서성원, 구나미, 홍평안), 한국에 있는 MMC 가족 3명 (박재성, 서가영, 박성진) 그리고 뉴욕에서 온 3명 (김정영, 장복근, 서난경), 3개의 나라에 흩어져 있는 총 15명을 따로 떼어 모으셨다. 몽골 울란바토르와 에데르네트(Erdenet)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울란바토르에서 순교하신 한국 목사님이 세운 한 몽골 교회에서 이틀간 찬양 집회를 했다. 몽골의 청년들과 사람들이 모였고 둘째날은 더 많이 모였다. 매 시간마다 성령을 부어 주셨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따로 떼어 놓은 시간과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후 우리는 하나님의 영에 의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 성령이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영혼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다 성령이 하게 하시는 일이다. 울란바토르의 고아원 아이들은 하나님이 우리 팀이 만나게 하시려 따로 떼어 놓은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찬양 모임에 이틀 동안 참석해 맨 앞자리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며 예배했다. 우리팀들은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우리팀원 중에 MIU 교수로 섬기던 형제가 에르데네트로 향하던 밤 기차에서 은혜스런 나눔을 해주었다. 자신은 아버지의 권유로 중 2때부터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 전도여행을 다녔다. 그러나 팀들은 일을 못하면 정죄를 받았고 긴장감이 있었으며 서로 미워하는 일들 자주 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팀은 일을 실수해도 서로 격려하고 사랑했으며, 일 중심이 아닌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섬기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자신이 그리던 그런 공동체였으며, 이들을 통해 내면에 하나님의 풀어주심과 채워주심으로 감사한다고 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 주시기에 우린 예수님처럼 살게 된다.

2. 하나님이 주신 새 옷을 입게 하심으로
바울은 골로새서 1장에서 골로새 교인들이 이미 열매를 맺고 구원을 받았고 믿음의 소문과 영향력을 흘려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계속 새로운 옷을 입으라고 말씀한다. 새 옷을 입는 것은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자신을 계속 renew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새 옷을 입는 것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려는 그리스도인의 본능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본능의 옷을 선물로 주셨다. 그옷을 입고 안입고는 우리의 의지와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이 주신 옷은 항상 새것이다. 이 옷을 입으면 닳지도 쇠하지도 않고 계속 아름답고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성품으로 유지된다.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과 소망과 순결의 성품은 변질되지 않는다. 그러나 죄성은 이러한 아름다운 성품들을 변질 시키고 하나님의 옷을 멀리하게 한다. 옷을 입을지 않을지는 우리의 의지의 결정이 뒤따른다. 오늘 당신이 생각하고 입어야 할 하나님의 성품의 옷은 무엇일까? 선교여행을 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천국을 경험한다.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하는 은혜와 기쁨을 팀원이 나누어 주었지만, 동시에 우린 이 기간 동안 우리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죄성과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되는 모습을보게된다.마지막날 아침 큐티를 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죄와 약함을 솔직히 나누었다. 이런 깨달음은 우릴 더욱 하나님의 성품의 옷을 입도록 인도해 준다. 하나님이 당신을 깨끗케 하려고 잘라내고 있는 성품과 습관, 관계들은 무엇인가? 만약 이런 일들의 우리의 삶에서 일어 나고 있다면 하나님이 우릴 따로 준비 시키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3. 희망이 아닌 믿음으로 살게 하심으로
사람은 자신의 모든 희망이 사라져 갈 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믿음만이 이 불가능한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만약 자신이 그냥 소망한 일들이 쉽게 이루어 지면 소망이 믿음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냥 소망에서 멈추게 된다. 그러나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믿음이 싹트기 시작한다. 소망은 대상이 필요 없다. 하지만 믿음은 반드시 대상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소망에서 믿음으로 넘어온 것이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각자의 소원을 가지고 소망한다. 그러나 하나님과는 전혀 접촉이 없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과 대화하게 하고 그 대화 속에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한다. 또한 그분의 평안과 기쁨과 사랑이 우리의 영혼에 흘러오게 된다. 사람들은 믿음이 강해지길 원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주목하면 믿음은 자동으로 성장한다. 아무리 믿음을 강하게 하려 해도 하나님의 약속이 없으면 약해지고 불가능 해진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나를 통해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 감사하며 하나님을 추적하라. 그분의 약속을 추적하라.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가복음 8:4-18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9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16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설교요약>
네가지 밭의 비유
오늘 본문의 “네가지 밭의 비유” 중 씨가 뿌려진 첫번째 밭은 길가였다. 사람과 동물의 왕래가 많은 길가의 씨앗은 심기기도 전에 밟히거나 먹혀 사라진다. 첫번째 밭인 길가는 생각이 분주해 들은 말씀이 흩어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두번째 밭은 바위다. 바위 위에 얇은 흙에 있던 탓에 씨앗은 순간 싹은 돋았으나 수분이 없어 금새 말라 죽는다. 이 역시 말씀이 전해진 듯 하나 심기지 못하고 생명 또한 없음을 나타낸다. 세번째는 조금 특이하다. 땅에 잘 심겼으나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 햇빛과 양분을 뺏겨 열매를 못맺게 된 밭이다. 말씀이 안에 있으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세상 향락으로 열매 맺지 못한 사람들을 뜻한다. 마지막 밭은 ‘좋은 밭’, 즉 말씀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예수님이 비유하신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 모두에 등장하는 이 비유가 담긴 본문 10절에서 예수님은 또다른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비유는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단순 명료하지만, 숨겨진 진짜 메세지가 있어 누구나 깨닫는 건 아니라고 하신다. 즉, 본문에서처럼 그 뜻을 알고자 하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그 비유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 듯, 비유로 된 주님의 말씀을 진실로 묻는자들에겐 그 뜻이 가리워지지 않으나, 헛투로 듣는 자에겐 영원한 비밀로 남게 된다는 말이다.  

등경의 비유
‘네가지 밭의 비유’ 뒤로 이어지는 ‘등경의 비유’ 에는 또다른 메세지가 담겨 있다. 본문이 거의 흡사한 마태복음 5장의 ‘동경의 비유’와의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남들에게 본이 될 우리의 적극적 착한 행동을 강조한 마태복음과 달리, 있다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빛의 특징이 누가복음에서는 드러난다. 두 비유를 통해 말씀을 듣는 자들의 태도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 그리고 말씀에 대한 태도로 사람을 네 부류로 나누신 것과, ‘빛이 있어서 빛이 나타나는 자와 빛이 없는 자’. 즉, 빛의 특징을 닮은 것으로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신 것을 알 수 있다. 이 비유들에 담긴 메세지들은 결론적으로  가시밭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면, 이 부류의 사람들은 열매는 없지만, 생명은 있다고 생각했는데…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길 것이라 경고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 삶에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자신의 삶도 바꾸지 못하는 진짜 빛이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진정한 빛이 있느냐? 

비유에 담긴 경고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은 모두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네 가지 밭으로 대변되는 네 부류의 사람들 모두가 있을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우리 중에 없길 바라지만, 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생각들로 가득차서 말씀은 밟혀 버리거나 먹혀버리는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또한, 스스로도 속고 있을 수 있어 가장 위험한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도 교회 안에 있다. 본문의 비유에 따르면, 이 분들은 예배 속에서 찬양할 때 누구보다 큰 감격을 경험하고, 말씀을 들을 때 큰 행복, 기쁨으로 받는, 누구보다 ‘좋은 밭’으로 비춰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배당을 떠나 조금만 지나면 그 싹은 말라버리고, 바로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말씀을 듣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큰 갈등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 나온다는 사실 외에 세상 사람들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 왜 그럴까? 그들은 아직 세상에 속해 있고, 그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세번째 부류에 속한 사람들 역시 교회 안에 있다. 제가 생각할 때 좋은 밭에 속한 분들도 일시적인 기간 동안, 이 세번째 밭과 같은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연인이 생기고, 돈이 생기고 뭔가 바라던 좋은 일들이 일어나서 그 유혹들에 마음을 빼앗겨서 말씀이 삶에서 전혀 열매 맺지 못하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이제 믿기 시작한 분들도 믿음과 삶의 불일치를 한동안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수년 동안, 수개월 동안 그 상태가 지속되면, 과연 그 안에 빛이 있을까? 생명이 있는가? 의심해 봐야 한다. 참 빛은 결코 가려지지 않고, 결국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세가지 밭에 속한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들이 아니다. 다른사람은 물론 우리 스스로를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다. 이 세가지 밭에 속한 사람은 인정하든, 인정 하지 않든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경고 속에 담긴 구원
그러나, 경고는 언제나 구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처럼 오늘 이 네가지 밭의 비유는 주님께서 교회에게 너희가 어디 있는지, 너희의 상태가 어떤지 깨달아라!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해 있는지 영적인 눈을 뜨고 진리를 보아라! 그리고 돌이켜 좋은 밭이 되거라! 그러면 너희에게 안전을.. 그리고 백배의 열매의 선물들까지 줄 것이다라는 메세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이것은 복음이고, 간곡히 “돌아오라!”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외침이다. 네번째 밭의 비유처럼 좋은 밭이 된다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바보 같이 듣는 여러분들을 통해 결국 세상도 감동을 받고, 우리가 뿜어내는 진정한 빛,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죄를 이기게 하는 사랑

예레미야 2:1-13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찌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3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4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7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 
9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0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같은 일의 유무를 자세히 살펴보라 
11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12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찌어다 심히 떨찌어다 두려워할찌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설교요약>
예레미아 2:13 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음을 볼 수 있다.
첫째, 생수의 가치를 버렸다.
이스라엘 백성은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렸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사랑해야 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주고, 보살펴야하는 영혼에게 평가를 내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 주고 있지는 않는지, 또한 내가 예배하고 섬겨야 할 곳에서 하나님의 부재를 원망하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멀리하고 헛된 것을 쫓아 우상에게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가치를 세상의 가치과 비교했다.
하나님을 섬기며 우상을 함께 섬긴다면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하며 세상의 방식을 따르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어떤 가치와도 비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신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려고 고민할 때, 우리 때문에 우리의 직장과 삶에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무감각하게 살았다.
우리가 당장 우리 눈 앞의 웅덩이에 집중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며 살아가다보면 생수이신 하나님이 필요 없어진다. 하나님을 찾는 감각이 무뎌진다. 하나님 말씀 없이 사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 없이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을 의지하게 되고, 세상의 가치만으로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하나님은,
1.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7절에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다’ 말씀처럼 이스라엘을 위해 특별히 공급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날마다 새로운 말씀으로 적셔 주신다
2.  변함 없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 2절 '청년의 때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변함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고,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셨다. 다윗과 엘리야 또한 광야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를 경험하는 특권을 누렸다. 우리 또한 광야와 같은 시간이,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신앙 최고조의 시간이다.

3. 하나님은 온전한 사랑을 주셨다 – 3절에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라고 하셨다. 유다 백성을 첫 열매로 전세계에 선포하시며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첫 열매로 여기셨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다. 이스라엘을 공격을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으로 여기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된 우리는 거룩하게 살도록 해야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림과 동시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거룩하게 구별된 가치를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허망한 것들을 찾게 되는 것이다.

예레미야를 통해 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너와 함께한 신혼의 시간을 여전히 기억한다고 말하신다. 웅덩이를 판 우리가 회개하고 그분께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 할 수 있는 기회이다. 우리가 잊어버린 소중한 첫사랑을 다시 고백하며 하나님보다 더 가치를 두고 살았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오직 그분 앞에 사랑을 고백할 때 우리의 죄악이 떠나갈 것이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다.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세상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첫 열매다. 우리 죄를 숨기고 죄를 만해 하려고 또 다른 웅덩이를 파고 있는 우리에게 회개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신다. 하나님을 향한 봉사와 헌신이 웅덩이가 되지 않게 하자.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시는 그분께 돌아가자. 광야에서 배운 그 첫사랑을, 아무도 알 수 없는 신혼의 사랑을 들고 주님께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