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쁨

시편 147:11
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설교요약>
'주님은 오직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과 당신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을 좋아하신다'(시편 147:11) 하나님은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고 소망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뻐하신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이 변하지 않으시기에,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분은 자신을 바라는 자들을 책임질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
'주님이 이 땅에 명령만 내리시면 그 말씀이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양털 같은 눈을 내리시며 재를 뿌리듯 서리도 내리시며, 빵 부스러기 같이 우박을 쏟으시는데 누가 감히 그 추위 앞에 버티어 설수 있겠느냐? 그러나 주님은 말씀을 보내셔서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시니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어 흐른다'(시편 147:15-18) 보면 하나님의 말씀엔 능력이 있다. 즉 말씀이 온 창조물과 사람의 마음을 얼어 붙게도 하시고 녹이기도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누군가에 게는 더욱 마음을 강퍅하게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물처럼 녹게 해서 죽어가는 영혼에게 생명이 되게 할 수도 있다. 야고보서 1장 6절에 보면 당신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야고보의 의심과 파도의 비유를 통해 묵상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할 때 쓰러질 수 있다. 즉 의심하지 않고 구하고 믿는 기도는 하나님을 누리고 풀어지고 자유를 주고 기쁨을 주고 축복을 가져다 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대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서 광야에서 방황할 때 만난 나발은 악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도움과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악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페르시아의 왕비였던 에스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에 만족하지 않고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까지 나아갔고 그 결과로 고난에 빠진 유대인들을 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고 기다리는 자를 기뻐하신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겸비함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려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찢어진 날개

시편 143:8
8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설교요약>
'내가 주님을 의지하니 아침마다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말씀을 듣게 해 주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께 의지하니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십시오' (시: 143:8) 다윗이 매일 아침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씀을 자신의 마음에 되새겨 달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이 우릴 사랑 하는 것 을 어떻게 보여 주시는가?

날게 하시는 하나님
'날아가거나' 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것은 자유를 의미한다. 하늘에 나는 새도 하나님 의 뜻이 아니면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하늘을 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일임을 알게 해준다. 레위기 1:17에 보면 하나님은 짐승을 불살라 드리는 번제 중에 비둘기를 드릴 때 날개를 찢되 아주 몸에서 분리시키지 못하게 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찢으지고 다시 그분의 사랑으로 꿰매셔서 날개를 펴서 넓은 창공을 날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의 삶에 꿈꾸었던 일들이 찢어질 때 다시 꿰매어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 날개를 펴서 날게 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해야 한다.

찢어진 날개를 다시 꿰매시는 방법
누가복음 2장 34-35절에 예수님에 대한 예언의 말씀 중에는 예수님께서 하시게 될 3가지 사역의 특징이 들어있다. 3가지 사역을 통해 그분의 자녀들의 찢어진 날개를 꿰매어 다시 날개 하시는 놀라운 능력이 들어있다.

첫째. 많은 사람을 파괴 시키고 일어서게도 하시는 사역이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아버지의 소유가 그리워서 였다.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서 죄를 회개하려고 한것은 그분의 소유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배고픈 처지때문임을 알게 해준다. 그렇기에 그가 집에 돌아와서 잘못을 뉘우치고 겸손하게 아버지에게 굴복한다해도 내면의 거짓의 벽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아들의 내면의 거짓된 벽을 허물었다. 우리는 우리의 이기적이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주님을 따르는 것을 알 면서도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도와주시고 다시 죄의 냄새로 쩔은 나를 안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야 한다. 이때 찢어진 날개는 다시 창공을 향해 펼쳐지며 그분이 인도하신 길로 날아갈 것이다.

둘째. 많은 사람의 비방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비방과 대적들도 많았다. 예수님은 우리의 찢어진 날개를 다시 꿰매 다시 날게 하기 위해 주님을 위해 '비방 받는' 경험을 하게 하신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이유가 예수님의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때마다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미움 받음을 생각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미움을 받거나 혹은 그와 유사한 미움을 받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미움 속에서 넓고 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숙하게 된다. 이때가 찢어진 날개가 꿰매어 지는 시간이다.

셋째. 마리아의 심장(마음) 이 예수님 때문에 슬픔의 칼에 찔릴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면 사람들의 내면 안에 있는 칼을 만난다. 슬픔의 칼, 분노의 칼, 미움의 칼, 시기의 칼, 증오의 칼, 정욕과 탐욕의 칼, 교만의 칼...... 우리는 예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사역 을 할 때 많은 칼에 찔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와 열매의 기쁨에 비교하면 그것은 모래 사장에 가끔 밟히는 조개 껍질 정도 밖에 안 된다. 이 조개 껍질 때문에 해변의 모래사장을 걷고 누리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칼에 한번씩 찔릴 때 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날개를 더욱 크게 확장 시키신다. 더 높이 더 넓게 날게 하신다. 더 많은 열방의 영혼들을 품고 치유하고 사랑하게 하신다.

예수님의 두 팔은 비둘기 날개처럼 찢어져 십자가에 달렸다. 그러나 그 두 날개 안에서 많은 열방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옥의 삶이 천국이 되고 있다. 누구도 치료할 수 없는 상처가 치유되고 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용서받고 있다. 하나님은 이 세가지 예수님의 사역의 특성을 기꺼이 행할 사람을 찾고 있다. 그들의 찢어질 날개를 이 세가지 일을 통해 다시 꿰매 날게 하시고 싶어하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빌립보서 2:5-11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설교요약>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사야 59:1)  태어 나면서 부터 죄는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과 단절 시킨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나무 열매를 먹게 하셨지만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후에 뱀이 선악과 앞에선 하와를 향하여 하나님이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 라고 물었을때 하와는 죄를 짓기 시작했다. 
 
첫째. 하와는 자신이 죄를 지을수 있는 길을 열어놓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바꿨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라고 하셨다. 그러나 하와는'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3:3) 라고 대답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굴복시키지 않고 자신의 정욕을 합리화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굴복시키는 것이다.
 
둘째. 하와의 죄는 하나님을 속이는 분으로 본것이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는데 뱀을 이용한 사단은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이 같이 되기에 못먹게 했다는 말을 하와에게 했다. 사단은 하나님을 무조건 나쁘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이성에 의혹을 불어 넣었다. 사단은 오늘도 이성적인 논리로 사람의 생각속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고 선하지 않은분임을 주입시킨다. 이것에 넘어가는 것이 죄다. 
 
세번째. 하와의 죄는 하나님 같이 될려고 한것이다. 뱀은 선악과를 보며 갈등하는 하와에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라고 속삭였다. 오늘도 사람들은 선행, 성공, 희생, 권력,돈, 불가능에 도전, 업적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같이 추앙받고 싶어한다. 하나님 같이 되고 싶은 죄의 본성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드러난 죄보다 예수님 없는 자선과 희생과 모험과 도전과 업적속에서 더 많은 인간의 교만과 세련된 교활함과 우월감이 존재한다. 

네번째. 하와의 죄는 이미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그 나무를 보고 마음으로 죄를 지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창:3:6) 성경은 행하지 않았어도 마음으로 짖는 죄의 심각성을 이야기 한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어도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지 불순종 할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했고 그런 자유의지가 있었다.

하와의 4가지 죄 유형안에 우리가 짓는 모든 죄들이 다 들어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을 만지고 이땅에서 천국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다. 
 
누군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대의 삶을 사는것을 죄라고 하며 간섭하고 정죄하면 그것 또한 억압과 폭력이 아닌가?' '왜 아들 까지 보내 믿으라고 하면서 우릴 부담스럽게 하는가?' 라고 반문할수 있다. 이때 하나님은이렇게 물으신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 만나 잘 살아야 하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가?' '왜 그토록 불행한가?’ 예수님은 반석위에 집을 짓지 않은 사람은 모두 비바람의 불어닥칠때 모두 무너질것이라고 하셨다. 열매가 바뀌려면 나무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포도열매를 원하면 가시나무는 먼저 포도나무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내 삶의 뿌리로 놓지 않고 돈과 세상정욕과 자기자신과 사람과 성공과 자랑과 우월감을 뿌리로 기초로 놓으면 언젠가 포도열매가 아니라 가시가 열매로 맺힌다.

예수님이 사랑과 믿음이 당신의 가장 중요한 위치가 아니면 언제가 그 무너짐이 심할것이다. 한 순간에 그동안 쌓았던 모든것이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님의 그 말씀, 뿌리를 종자를 바꾸라는 그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당신의 모든것으로 두었다면 비바람과 폭풍이 몰아쳐 와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무너진다 해도 하나님이 다시 순식간에 세워 주실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뿌리채 바뀐 거듭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삶의 홍수와 파도가 다가온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더욱 빨리 크게 열매를 맺고 향기를 세상에 드러내게 될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한다.  
 
나의 삶의 뿌리가 바뀐 구체적인 증거에 대해 성경은 '성숙' 이라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기를 원하신다. 예수님 처럼 그 인격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예수님 처럼 살길 원하신다. 

내 안에서 자라가는 예수님의 인격 4가지 
첫째. 헛된 속임과 이기적인 야망의 마음으로 어떤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경쟁심과 허영이 없는 마음의 특징은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는 겸손으로 나타난다. 
둘째. 나의 관심이 아닌 타인의 관심을 구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늘 사람들의 필요를 먼저 보셨다. 타인을 향한 관심은 보는것에서 시작된다. 
세째.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다. 사람이 누군가를 섬기고 자신을 비우는 가장 첫번째 단추는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것이다. 예수님의 순종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증거한다. 종으로 섬기며 사는 것은 자존감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다. 그 자존감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다. 
네째. 일시적인 순종이 아닌 죽는 순간까지 순종하신 인격이다. 예수님의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자신이 원치 않으실 때도 순종하셨다. 순종이 두려워 질때는 그것을 위해 기도하시고 하나님께 물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을 복종시키셨다. 

예수님 처럼 되라고 하신 이유 
바울은 이 예수님의 4가지 인격의 특성을 품고 예수님 처럼 살라고 하셨다. 그 목적은 첫째: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품을때 그 사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무릎꿇고 예배하는 일을 일으키시기 위함이다. 둘째: 하나님이 이런 일을 나를 통해 이루실때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당신이 오늘 이땅에 존재하는 이유다.

감추어진 보호

사도행전 21:1-36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설교요약>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위험과 환란이 기다린다는 성령의 증언들을 들었다. 그럼에도 주저함 없이 예루살렘으로 출발해, 배를 타고 이스라엘의 북쪽 두로에 도착했다. 두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 우상들의 근원지였고, 이스라엘 전역에 우상이 들어오게 했던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도시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역사를 가진 두로에 바울이 도착했음에도 그곳에는 이미 교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두로에 교회가 생긴 역사를 되짚어 보면, 21년전에 예수님에게 56km 의 거리를 걸어와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그 예수님을 자신의 나라 두로 사람들에게 전해주었고 그 소식을 들은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보자 마자 준비되었다는 듯이 예수님께 나가 무릎 꿇고 큰 믿음으로 간구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로부터 약 28여년 후에 바울은 자신의 생애에 큰 환난을 앞둔 시기에 두로의 제자들로부터 위로와 따뜻한 환대를 받고 있었다.

특히 이 두로의 귀신들린 딸문제로 예수님께 나간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혹독한 대우를 받았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 15:26) 라며 거절감을 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거절감 어린 말을 개의치 않고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믿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마: 15:27) 예수님은 짧은 시간에 이 여인의 소원을 들어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믿음을 강하게 훈련 시키셨다. 하나님이 이 여인을 통해 주시는 음성은 하나님에게 거절감을 느끼는 상황을 맞이해도 사랑받고 있는 사람임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말하며 산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이 오거나 반대로 안락하고 편안한 삶이 되면 너무도 쉽게 그분의 나를 향한 사랑의 감각을 잃어 버리게 된다. 이것에 대해 기독교 작가 필립얀시가 지적한 톨스토이와 도스 토예프스키의 이야기를 나눠본다.

톨스토이는 온갖 규율과 말씀을 지키는 척 하지만 결국은 위선적인 자신의 모습만을 발견해 가다 결국 부랑자로 죽었다고 하며,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음울한소설을 쓰고 술과 도박으로 건 강과 재산을 탕진했지만, 죄를 짓고 체포되어 죄수용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로 가는 길에 어느 여인을 통해 성경한권을 전해 받고 신약성경을 통독한다. 그는 감옥에서 인간을 악의 절정을 보게 되고 또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만나게 된다.

바울은 두로 가이사랴를 거처 이스라엘에 도착하고 7일째가 되었을 때 그가 율법을 비방하고 성전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돌로 쳐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은 천부장으로 군인들을 모아 현장으로 가게 해 바울을 지켜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기전 여러번 그가 위험에 처하고 죽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셨지만, 보호를 예비해두신 것은 미리 알려주시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는 그의 삶의 결단과 함께 미래의 축복을 말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그가 주님을 따르는 시간이 오래되어 갈 때 주님은 고난(이삭 바침) 만 이야기 하고 이삭대신 양을 메 놓을 것이나 그 고난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그를 향한 축복은 말씀해 주지 않으셨다. 시어머니를 따라나선 룻에게도 앞으로 있을 고난만 예견 되었지 그녀를 향한 보아스 와 영적인 축복들을 조금도 이야기 해주지 않으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성품 중 하나다. 하나님은 때론 고난과 함께 축복도 말씀하시지만 때론 앞으로 겪게 될 고난만 말씀 하시고 보호와 축복은 감추시기도 한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들의 사랑을 보고싶어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 한 많은 말들의 홍수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향한 사랑을 삶으로 행동으로 순종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드물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향해 아무런 유익이나 번쩍거리는 찬사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함께 있어주고 변함없이 사랑해 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분이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약속해 준적도 있지만 장차 있을 고난만 이야기 하곤 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사랑의 고백을 듣는 것뿐 만이 아니라 보고싶어 하셨다. 이것이 보호 와 축복을 감추신 이유다.

홀로 걸어야 하는 시간

사도행전 23:13-38
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설교요약>

바울은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지않고 도보로 하루가 걸리는 거리를 홀로 간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홀로 있는 시간동안 성령께서 예루살렘에서 있을 환난과 고난을 미리 알게 하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려움이 오면 본능적으로 사람을 찾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움이 찾아오면 먼저 하나님을 찾는다. 그래서 바울도 자신의 앞에 그 어떤 환란과 고난을 성령 으로 직감하고 혼자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 걸었던 것이다.

• 고난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받을 고난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급히 가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게 확고하게 자신이 갈곳과 있어야 할 곳을 알수있었던것은 바울이 하나님과 홀로 있던 시간에 얻어진 것이다. 우리가 홀로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 깊어질때, 혹은 혼자 있을때도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는 축복이 주어진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가야 할 곳이 어려운 곳인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길 원하시는 곳인지를 결정하고 가는 사람들이다. 예수님도 성만찬 후에 체포될 것 을 아셨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당신의 삶에 기쁨과 하나님을 사랑함이 있다면 당신은 홀로 하나님 앞으로 나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반대로 당신의 마음에 기쁨이 점점 희미해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희미해 지고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 보다 다른것에 더 집착해 가고 있는 사람일수 있다.

• 혼자 있을 때 자신의 헌신과 희생의 분명한 목적을 알게 된다.
바울이 미둘레네에서 에베소의 지도자들과 다시 말씀으로 훈련하며 이 두 가지를 상기시켰다. 첫째는 바울의 헌신의 목적이다. 바울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길 원하는 확실한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헌신과 희생이 삶의 목적이 되면 위험하게 된다. 희생과 헌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의 목적이다. 그 목적이 상실하면 희생과 헌신이 자기의 우상이 된다. 당신의 희생과 헌신으로 한 영혼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만나는지 명심해야 한다.

• 홀로 있는 시간은 성령이 사람들을 감독자로 세우고 인도하고 계심을 보게 해준다.
28절에 보면 바울은 두란노에서 12명의 제자를 세우고 양육한 것이 본인의 노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성령님이 감독하고 계심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영혼이 약해질 때 나타나는 증상 중에 하나는 내가 모든 것을 하고 있다라고 하는 생각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셔야만 볼 수 있는 일이다.

• 홀로 있는 시간은 사랑과 정이 있는 사람으로 세운다.
36-38절에 보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임하면 매정하고 냉정하던 사람이 사랑과 정이 많은 사람으로 바뀐다. 또한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 보면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사람이 성장하는 것을 알고 있다. 말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미숙함을 깨닫는다. 깨달으면서 생각하고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꾼다. 그리스도인은 사랑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고민한다. 원수도 사랑하라 했는데 원수가 아닌데도 사랑이 가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고민한다.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을 기대하면 안 된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옮기고 떠나야 한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사랑하게 되기를 의지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할 때 우리의 사랑은 점점 성숙되어 간다. 바울은 오래 참았다. 바울은 불같은 그의 성격을 온유함으로 변하려 생각했고 깨닫고 성장해 갔다.

우리는 홀로 있는 시간들을 통해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들 을 통해 다시 순수한 정과 눈물과 인간미를 회복한다. 사람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는 자신의 마음에 정과 눈물과 인간미를 잃고 냉정하고 무정해 질 때다. 이런 내면의 정과 사랑은 스스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주면서 깊은 자존감과 내면의 견고함을 갖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