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빌립보서 2:5-11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설교요약>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사야 59:1)  태어 나면서 부터 죄는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과 단절 시킨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나무 열매를 먹게 하셨지만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후에 뱀이 선악과 앞에선 하와를 향하여 하나님이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 라고 물었을때 하와는 죄를 짓기 시작했다. 
 
첫째. 하와는 자신이 죄를 지을수 있는 길을 열어놓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바꿨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라고 하셨다. 그러나 하와는'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3:3) 라고 대답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굴복시키지 않고 자신의 정욕을 합리화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굴복시키는 것이다.
 
둘째. 하와의 죄는 하나님을 속이는 분으로 본것이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는데 뱀을 이용한 사단은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이 같이 되기에 못먹게 했다는 말을 하와에게 했다. 사단은 하나님을 무조건 나쁘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이성에 의혹을 불어 넣었다. 사단은 오늘도 이성적인 논리로 사람의 생각속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고 선하지 않은분임을 주입시킨다. 이것에 넘어가는 것이 죄다. 
 
세번째. 하와의 죄는 하나님 같이 될려고 한것이다. 뱀은 선악과를 보며 갈등하는 하와에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라고 속삭였다. 오늘도 사람들은 선행, 성공, 희생, 권력,돈, 불가능에 도전, 업적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같이 추앙받고 싶어한다. 하나님 같이 되고 싶은 죄의 본성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드러난 죄보다 예수님 없는 자선과 희생과 모험과 도전과 업적속에서 더 많은 인간의 교만과 세련된 교활함과 우월감이 존재한다. 

네번째. 하와의 죄는 이미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그 나무를 보고 마음으로 죄를 지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창:3:6) 성경은 행하지 않았어도 마음으로 짖는 죄의 심각성을 이야기 한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어도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지 불순종 할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했고 그런 자유의지가 있었다.

하와의 4가지 죄 유형안에 우리가 짓는 모든 죄들이 다 들어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을 만지고 이땅에서 천국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다. 
 
누군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대의 삶을 사는것을 죄라고 하며 간섭하고 정죄하면 그것 또한 억압과 폭력이 아닌가?' '왜 아들 까지 보내 믿으라고 하면서 우릴 부담스럽게 하는가?' 라고 반문할수 있다. 이때 하나님은이렇게 물으신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 만나 잘 살아야 하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가?' '왜 그토록 불행한가?’ 예수님은 반석위에 집을 짓지 않은 사람은 모두 비바람의 불어닥칠때 모두 무너질것이라고 하셨다. 열매가 바뀌려면 나무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포도열매를 원하면 가시나무는 먼저 포도나무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내 삶의 뿌리로 놓지 않고 돈과 세상정욕과 자기자신과 사람과 성공과 자랑과 우월감을 뿌리로 기초로 놓으면 언젠가 포도열매가 아니라 가시가 열매로 맺힌다.

예수님이 사랑과 믿음이 당신의 가장 중요한 위치가 아니면 언제가 그 무너짐이 심할것이다. 한 순간에 그동안 쌓았던 모든것이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님의 그 말씀, 뿌리를 종자를 바꾸라는 그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당신의 모든것으로 두었다면 비바람과 폭풍이 몰아쳐 와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무너진다 해도 하나님이 다시 순식간에 세워 주실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뿌리채 바뀐 거듭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삶의 홍수와 파도가 다가온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더욱 빨리 크게 열매를 맺고 향기를 세상에 드러내게 될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한다.  
 
나의 삶의 뿌리가 바뀐 구체적인 증거에 대해 성경은 '성숙' 이라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기를 원하신다. 예수님 처럼 그 인격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예수님 처럼 살길 원하신다. 

내 안에서 자라가는 예수님의 인격 4가지 
첫째. 헛된 속임과 이기적인 야망의 마음으로 어떤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경쟁심과 허영이 없는 마음의 특징은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는 겸손으로 나타난다. 
둘째. 나의 관심이 아닌 타인의 관심을 구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늘 사람들의 필요를 먼저 보셨다. 타인을 향한 관심은 보는것에서 시작된다. 
세째.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다. 사람이 누군가를 섬기고 자신을 비우는 가장 첫번째 단추는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것이다. 예수님의 순종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증거한다. 종으로 섬기며 사는 것은 자존감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다. 그 자존감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다. 
네째. 일시적인 순종이 아닌 죽는 순간까지 순종하신 인격이다. 예수님의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자신이 원치 않으실 때도 순종하셨다. 순종이 두려워 질때는 그것을 위해 기도하시고 하나님께 물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을 복종시키셨다. 

예수님 처럼 되라고 하신 이유 
바울은 이 예수님의 4가지 인격의 특성을 품고 예수님 처럼 살라고 하셨다. 그 목적은 첫째: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품을때 그 사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무릎꿇고 예배하는 일을 일으키시기 위함이다. 둘째: 하나님이 이런 일을 나를 통해 이루실때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당신이 오늘 이땅에 존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