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진 보호

사도행전 21:1-36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설교요약>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위험과 환란이 기다린다는 성령의 증언들을 들었다. 그럼에도 주저함 없이 예루살렘으로 출발해, 배를 타고 이스라엘의 북쪽 두로에 도착했다. 두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 우상들의 근원지였고, 이스라엘 전역에 우상이 들어오게 했던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도시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역사를 가진 두로에 바울이 도착했음에도 그곳에는 이미 교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두로에 교회가 생긴 역사를 되짚어 보면, 21년전에 예수님에게 56km 의 거리를 걸어와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그 예수님을 자신의 나라 두로 사람들에게 전해주었고 그 소식을 들은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보자 마자 준비되었다는 듯이 예수님께 나가 무릎 꿇고 큰 믿음으로 간구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로부터 약 28여년 후에 바울은 자신의 생애에 큰 환난을 앞둔 시기에 두로의 제자들로부터 위로와 따뜻한 환대를 받고 있었다.

특히 이 두로의 귀신들린 딸문제로 예수님께 나간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혹독한 대우를 받았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 15:26) 라며 거절감을 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거절감 어린 말을 개의치 않고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믿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마: 15:27) 예수님은 짧은 시간에 이 여인의 소원을 들어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믿음을 강하게 훈련 시키셨다. 하나님이 이 여인을 통해 주시는 음성은 하나님에게 거절감을 느끼는 상황을 맞이해도 사랑받고 있는 사람임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말하며 산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이 오거나 반대로 안락하고 편안한 삶이 되면 너무도 쉽게 그분의 나를 향한 사랑의 감각을 잃어 버리게 된다. 이것에 대해 기독교 작가 필립얀시가 지적한 톨스토이와 도스 토예프스키의 이야기를 나눠본다.

톨스토이는 온갖 규율과 말씀을 지키는 척 하지만 결국은 위선적인 자신의 모습만을 발견해 가다 결국 부랑자로 죽었다고 하며,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음울한소설을 쓰고 술과 도박으로 건 강과 재산을 탕진했지만, 죄를 짓고 체포되어 죄수용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로 가는 길에 어느 여인을 통해 성경한권을 전해 받고 신약성경을 통독한다. 그는 감옥에서 인간을 악의 절정을 보게 되고 또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만나게 된다.

바울은 두로 가이사랴를 거처 이스라엘에 도착하고 7일째가 되었을 때 그가 율법을 비방하고 성전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돌로 쳐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은 천부장으로 군인들을 모아 현장으로 가게 해 바울을 지켜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기전 여러번 그가 위험에 처하고 죽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셨지만, 보호를 예비해두신 것은 미리 알려주시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는 그의 삶의 결단과 함께 미래의 축복을 말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그가 주님을 따르는 시간이 오래되어 갈 때 주님은 고난(이삭 바침) 만 이야기 하고 이삭대신 양을 메 놓을 것이나 그 고난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그를 향한 축복은 말씀해 주지 않으셨다. 시어머니를 따라나선 룻에게도 앞으로 있을 고난만 예견 되었지 그녀를 향한 보아스 와 영적인 축복들을 조금도 이야기 해주지 않으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성품 중 하나다. 하나님은 때론 고난과 함께 축복도 말씀하시지만 때론 앞으로 겪게 될 고난만 말씀 하시고 보호와 축복은 감추시기도 한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들의 사랑을 보고싶어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 한 많은 말들의 홍수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향한 사랑을 삶으로 행동으로 순종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드물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향해 아무런 유익이나 번쩍거리는 찬사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함께 있어주고 변함없이 사랑해 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분이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약속해 준적도 있지만 장차 있을 고난만 이야기 하곤 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사랑의 고백을 듣는 것뿐 만이 아니라 보고싶어 하셨다. 이것이 보호 와 축복을 감추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