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감사

골로새서 4:2
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설교요약>
• 감사하는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이다
성경에는 '깨어 있으라' 라는 말씀이 많다. 감사 속에는 사랑, 겸손, 진실, 섬김, 기쁨, 소망이 모두 들어있다. 그러나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는 사람에게서는 쉽게 교만함을 찾아볼 수있다. 그 교만 안에는 위선, 미움, 슬픔, 절망도 함께 있다.

• 원망할 때 모든 축복은 불행으로 바뀐다
광야에서 모세의 명령을 받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보낸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이 재앙으로 죽고 오직 2명만이 생존했다. 이런 결과의 원인은 감사와 원망에서 비롯되었다. 죽은 10명은 원망했고, 그 원망에는 세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했다. 이들은 자신들만 원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이 주실 축복들을 원망하게 했다. 둘째, 아직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한 그 땅을 악평했다. 셋째,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원망하고 남들도 원망하게 했다. 살아 남은 갈렙과 여호수아의 감사의 특징도 세가지였다. 첫째, 이들은 온 회중으로 감사하게 만들었다. 둘째, 하나님이 약속한 그 땅을 그냥 아름답다고 하지 않고 심히 아름답다고 했다. 셋째, 지도자를 대적하는 자들을 향해 '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민:14:9) 며 사람들로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를 존중하게 했다. 결국 원망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려 했던 모든 축복을 발로 걷어찬 셈이 되었다. 그러나 감사한 사람들은 그 모든 축복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밟는 축복을 누렸다. 바울은 구약의 이런 사건을 거울로 삼고 원망치 말고 감사하라며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10:9-10) 신약의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이 삼 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불평하고 원망한 내용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보통 오랜 시간 공동 생활을 하다 보면 불편함 점이 많고, 그 가운데 서로 불평하고 원망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특별히 제자들의 불평 불만을 한 기록들이 없다.

• 막막한 상황이 와도 먼저 다시 감사하라
그러나 그렇다고 딱히 감사를 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 동거동락하셨던 예수님에게서 감사의 모습이 드러난다. 오천명의 굶주린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어린 아이가 주님께 드린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개를 가지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gave thanks)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요:6:11) 예수님은 어떻게 이 작은 음식으로 오천명을 먹일 수 있나요? 라며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막막한 현실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셨다. 이 말씀을 기록한 저자는 사도 요한 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감사의 모습을 그냥 건성으로 보고 지나갈 수 있었다. 그는 또한 예수님이 먹고 남은 조각들을 모두 버리지 못하게 하시고 바구니에 담게 하신 것도 기록했다. 또한 바로 후에 다시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사천명이 먹고 남은 것을 일곱 광주리에 거두게 하셨다. 이 것은 후에 배고플 때 먹게 할 용도로도 모으게 하셨지만 하나님이 주신 그 은혜들을 잊지 말고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먼저 감사하고 그 은혜를 붙들고 기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증거가 거둔 일곱 광주리 떡 다음 이야기에 있다. 배를 타고 제자들과 함께 건너편으로 가는 도중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떡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이스트(누룩)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이스트처럼 작은 그들의 영향력에 빵 전체가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쉽게 착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악한 영향력이 퍼지는 것에 대한 경고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누룩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이 일곱 광주리 거둔 떡을 가지고 오지 못한 것 때문에 그런 줄 알고 서로 눈치를 보면 이야기 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개로 사천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마:16:9-10)

• 떡과 물고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물고기는 훈제 되었거나 이미 요리가 되있었던 한 끼 음식이었음을 고려할 때 말라 비틀어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온몸이 비틀어지고 일그러지는 고통을 상징한다. 따라서 열 두 광주리와 일 곱 광주리에 거두게 하신 떡과 물고기는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예수님이 주신 구원을 한시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우리는 전에는 어두움이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빛 안으로 들어왔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어둠에서 구해 주신 것을 감사하는가? 그렇다면 깨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이 와도 열 두 광주리를 붙들고 먼저 감사하는가? 그렇다면 깨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직 주시지 않았지만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을 갈렙처럼, 여호수아처럼 먼저 감사하는가?
그렇다면 깨어 있는 것이다. 

살아야 할 청년 유두고

사도행전 20:1-12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 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설교 요약>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열심히 하나님이 계신 여러 모임에 참석해도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음을 청년 유두고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유두고처럼 죽어버린 이 시대의 청년들의 영혼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다음 4가지 영적 원리를 기억하자.
첫째, 먼저 청년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둘째, 삶으로, 행동으로, 말씀대로 사는 모습의 본을 보여준다.
셋째, 어떤 형태로든 영적으로 죽어 있는 청년들을 계속 끌어안고, 말씀을 심어주고, 사랑을 주고, 지도자로 세워주려 한다.
네째, 소망을 주고, 사랑을 주는 사람으로 그들 곁에 서 있어야 한다.

성령님께서 유두고의 이야기를 바울의 드로아 사역 중  대표적 일로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청년의 때에 살아 있는 영으로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삶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청년에 때에 하나님이 낛을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는 자들에게 진정한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찾으면 기쁨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낛’, ‘기쁨'인 것이다.

둘째, 노년의 때에는 생각해 내는 일이 어렵고 받아들이는데 둔해지기 때문이다. 
청년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행복을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을 만지실 때 흘러나오는 통로다. 이 때의 생각들은 하늘의 영감과 통찰력과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확신과 소망들로, 그것들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을 보고 체험하는 축복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연로해지면 생각도 노쇠해지고, 영감과 소망도 현저히 약해지므로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열정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체험하는데 헌신한다는 것이다. 체험의 가장 큰 장애물인 ‘실패에 대한 두려움’ 또한 수많은 실패의 체험을 통해 제자들이 스스로의 연약함을 보고 주님을 어떻게 신뢰하게할지 깨닫게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도 극복할 수 있다. 신중한 것도 좋지만 상황과 타인의 평가를 너무 두려워만해서는 어떠한 일도 해낼 수 없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주실 때 열정적으로 체험하고 도전하라. 그 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게 될 것이다. 

두 가지 평안

요한복음 14:27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017 CROSS 특별 예배

<설교요약>
27절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27)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두 가지 평안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과 세상이 주는 평안이다.

• 세상이 주는 평안
첫째: 탐심과 연결되어 쉴 수 없는 평안이다(눅12:19)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한 부자가 많은 재산을 쌓아 놓고 이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속삭인다. 이 사람의 평안은 자신의 재산과 소유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소유가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소유에 생명을 걸고 사는데 문제가 있다. 이것에 대한 해결점은 20-21 절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의 평안은 탐심과 연결되어 있고 그 탐심은 상황에 따라 사람을 쉬지 못하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세상의 탐심으로부터 오는 평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가려면 자신이 가진 소유를 하나님의 자리에 놓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오늘 생명을 잃으면 그 소유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가진 소유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천국의 평안이 오기 때문이다.

둘째: 고통과 상처와 천대를 주는 평안이다(요19:3)
요한복음 19장 3절에 보면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에게 고통과 치욕, 멸시를 주기 위해서 왕이나 귀족들이 입었던 자색 옷을 입히고 손으로 때리면서 평안하라고 속삭였다. 이것은 세상이 주는 평안이다. 이러한 세상의 평안은 예수님의 몸에 자색 옷을 입혀 주는 것처럼 일시적인 고통을 잊게해 주지만, 후에 수치와 고통, 두려움이 동반된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결과를 알면서도 이 세상의 평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 그럼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어떤 것일까?
첫째: 예수님의 평안은 예수님의 은혜로 치유 받았지만 스스로를 부정한 존재로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평안이다. (막5:33-34)
마가복음에 보면 12년 동안 혈루증에 걸린 여인이 나온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한 번만 만지면 나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어서 예수님의 겉옷을 만졌고, 병이 낳았다. 하지만 그녀는 유대교의 율법 때문에 두려워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예수님을 믿으면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할거라는 죄책감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 여인처럼 예수님이 부르실 때 여전히 예수님과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 느끼며 살 수 있다. 그러나 마가복음 5장 33-34절에 보면 예수님은 여러가지 은혜의 통로를 통해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평안함과 자유함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는 평안이다. 마태복음 6장 34절에 보면 예수님의 평안이 임하면 내일 일에 대해서 준비해도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축복이다. 세상의 평안은 불안이 올 때 세상의 일시적인 쾌락과 흥분을 주는 곳으로 도피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 두려움과 정면으로 부딪치며 그것을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불안과 두려움의 일상 속에서도 기도를 통해 오히려 더 큰 평안과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경험하게 된다. 내일 일은 우리가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내일' 이라는 명사는 인격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일을 주장하고 있는 인격이신 하나님이 내일을 주관하도록 맡기라는 의미가 된다. 내일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라. 그 분이 우리의 내일을 미리 준비하시고 인도하신다.

빛의 권세

에베소서 5:8-11
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설교요약>

빛은 어두음을 드러낸다. 어두움은 사람들의 내면, 즉 영혼 안에 남아 있는 어두움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빛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려 할 때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한다. 삭개오가 세리장이었을 때 인파를 뚫고 예수님께 나아가려 했으나 사람들이 길을 내어주지 않아 예수님께 다가갈 수가 없었다. 결국 삭개오는 나무위로 올라가서야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 결국 그를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막은것은 사람들(어두움) 인 것이다. 에베소서의 말씀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에서 성도를 대상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빛으로 어두움을 밝혀라”는 것은 어두움에 참예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물드는 것을 조심하라는 말이다. 어두움은 열매가 없고, 있다면 파괴적인 열매 뿐 이고 빛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어두움이 우리를 막는 것이다. 

우리는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빛의 열매는 9절의 말씀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은 나무였다. 여기서 나무는 삭개오의 원함을 이루어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했다. 나무는 또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결국 사람으로 인해 예수님을 만나고, 혹은 만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극적인 일들이 사람을 통해서 일어난다. 나는 누군가의 빛이 되어 주고 있는가, 아니면 빛을 가리고 있는가? 

하나님의 빛이 그의 자녀들을 통해서 한 영혼의 어두움을 비출 때 그것을 보고 무릎을 끓고 엎드리면 하나님은 막힌 것들을 부어 주시고 채워 주시기 시작한다. 어두움은 믿지 않은 자들에게 나가지 못하는게 하고, 믿는 자들을 통해서 예수님 보지 못하게 막아서는 역할을 한다. 내 안의 깊숙이 자리잡은 어두움을 자백하고 고백하여 그것이 깨어져 나갈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존재하는 빛을 보고 나오기 시작한다. 

어두움은 영혼이 없는 겉만 번지르르한 언어다. 겉으로는 기도하고 좋은 말을 하고 가르치는데 내면에서는 사랑도 느껴지지 않고 진실도 없고 공허하다. 겉으로는 영적이나 실상은 아무 것도 와 닿지 않는 공허함 뿐이다. 겉으로는 별거 없어 보이는데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데, 그 삶 자체가 자유로우면서 경건하고 평안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빛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성경을 매일 읽어야 한다. 말씀을 읽으면 영혼이 맑아지면서 분별력이 생기다.

영적인 방법으로 싸워 영적전쟁에서 이기고 빛의 권세를 사용하는 방법 10가지를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1. 매일 아침 가장 조용한 시간에 성경을 읽어라. 혼미한 마음이 정화되어지고 맑아진다. 
2. 마음이 와 닿는 말씀을 적고 내 마음에 상처와 고통을 주는, 그 문제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적어보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라.
3. 자신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적거나 입으로 고백해 보라. 그리고 하나님께 맡겨라. 
4. 자꾸만 신경 쓰이게 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 임하도록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그 사람의 어두움이 드러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5. 분노가 아니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하라. 분별은 분노와 반대되는 것이다. 분노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해가 생겨날 수 있기를 구하라. 
6.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단어들을 하나 하나 노트에 적으라. 그것은 예언 같은 것이다. 미리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들을 붙들고 주님께 올려드리면서 기도하라. 말씀을 읽고 나면마치 과즙기의 즙을 짜내 듯 자연스럽게 기도가 흘러나온다. 기도하기 힘들 때는 집중해서 말씀을 보면 기도할 제목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7. 하나님이 이 싸움을 통해서 확장시키려고 하는 나의 성품이 무엇인지 알아보라. 그 것을 배우고 주님께 감사하고 순종하라. 
8.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긍휼히 여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9.  주위의 분별없는 사람이 그 사람에게 속지않도록, 영향을 받지 않도록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라. 하나님의 빛은 다 동일하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 빛에 임재하는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시각을 갖게 된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은 동일하게 그것을 간파해 낸다. 
10. 두려워 하지 말라. 하나님은 결국 어두움의 정체를 드러내실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것을 폭로 시킨다. 우리의 앞뒤를 가로막거나 힘들게 하는 것들을 두려워 하지 마라. 우리가 신경 쓸 것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고 거짓없는 마음으로 순수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Father Heart of God


요한복음 17:6-26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설교요약>
Jesus prayed to the Father, a day before he was crucified. This prayer is very significant because it reveals to us what is inside of the heart of God, heart of Jesus, and heart of the Holy Spirit. It also explains the reason for Jesus to die on the cross, that is, the purpose of our redemption. The purpose is about intimacy with God. Jesus was born as a human being and he is the son of God. He came to demonstrate for and to teach us that is the way.

God is Love 
In John 14, Jesus said ※I do only what I see the father doing.§This decision were right because he didn't do his will, but did the will of the Father who sent him. This is a completely new radical life style that Jesus brought. In the world, most religious people like to follow the rules. Jesus' lifestyle didn't throw away the laws, but he fulfilled the law. This way of fulfilling the law is based on the intimacy with the Father's heart and the father is love. God is love. God does not have love. He is love, living love, only real love there is on earth and heaven. This love is completely free form selfishness.

When Jesus challenges us to follow Him that means to live the same kind of intimacy and power that comes from relationship with God. Trust God for this radical lifestyle that is not based on rules. But based on the ability hear what God is sayings, then you are no longer under the law. God is calling us to live by faith. Jesus died on the cross to make this possible and prayed that love the Father has for his son will be in us. Love that Father has for his eternal son is the same love that God has for each one of us. We must encounter and experience the love of the Father for a child. Jesus died on the cross to redeem us, so that we can experience the love and have faith that Holy Spirit will fill us with the power to know what God is each day. 

We are forgiven by the blood of Jesus on the cross. So that we can have intimacy with Father and live from relationship that is pure love, love that is eternal, and love that is not selfishness. This is the way of life for Christian. The way of the life is the way of the cross; the way of the cross is about the love of God. 

Hearing God's Voice
The most important thing for Christians is to learn to live like Jesus through hearing the voice of God. For that, we need to pray everyday to God to fill us with the Holy Spirit, life of the trinity. We are created to be filled with the living presence of God for purpose of redemption. It's the heart of being the disciples of Jesus. Jesus died so that God will become one with us. When Peter walked on the water, he took a step with faith. But he let go of the faith when he was distracted by wind, then started to sink. It's not because God's word failed, but Peter's faith failed. But God of love with no condemnation grabbed Peter and pulled him up. We have faith that God will do the same for us as we are learning.

Every day he will lead us to the cross, which is to die. Cross is about dying; but at the moment there is death on the cross, resurrection happens. New life comes. Lay down your life and your will, but look for the will of the Father. Make your life's main goal to hear God's voice and to live the life of Jesus. God is living in us when we live by fa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