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통한 창조

사도행전 19:21-41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설교요약>
고난을 통한 창조     
바울이 에베소에서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2년 동안 열 두 명의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 결과 그 제자들을 통해 터키 전역의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아데미 다이아내 신을 숭배하며 마술을 행하던 신전의 리더들은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어 자신들의 마술 책을 불태워 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삶에 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음을 보게 된다. 

 사람의 영향력
에베소에는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판매하는 큰 사업장이 있었다. 그 사업장의 사장은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으로 거느린 종업원의 수도 많은 성공한 사업가였다. 어느날 데메드리오는 다이아나 신상의 판매율이 떨어지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것이 곧 자신의 사업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것임도 간파했다. 신상 판매율 저조의 직접적 원인은 바울의 전도 활동으로 사람들이 아데미 숭배를 멀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수 천 수 만의 그리스도인들이 한 일이 아니라 에베소에서 성령을 받고 2년 동안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던 열 두 명, 소수의 제자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일이였다. 그리고 그 열 두 명의 제자들 뒤에는 바울과 그를 도우며 따랐던 몇 명의 신실한 제자들이 있었다.

상황이 이렇자 데메드리오는 사람들을 선동해 아데미를 외쳤고, 자극된 군중 심리로 흥분한 군중들은 바울의 동역자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사로잡아 당시 공공집회 장소로도 사용된 연극장으로 끌고 갔다. 흥분하여 모여든 군중들로 인해 바울 대신 체포된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시 섬기게 된 제자들로 바울과 함께 다시 3차 전도 여행을 하던 중 에베소에서 체포되어 목숨이 위태롭게 된 것이었다. 바울을 포함해 가이오나 아리스다고 같은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 위험과 고난을 겪었음에도 계속해서 선교 여행을 통한 전도를 지속했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넘치는 하나님의 위로
당시 소요 사태 등을 책임지는 정당 중앙 집행 위원회 서기국의 우두머리인 서기관은 데미드리오가 일으킨 소요를 제압하고 군중들을 순식간에 흩어지게 하였다. 그리고 그 서기관을 통해 하나님은 아무 잘못 없이 붙잡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풀어지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헌신하며 따라가는, 그 분의 사람들을 철저히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는 하나님은 왜 이런 고난과 위험들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막아주시지 않고, 바울, 가이오, 아리스다고 같은 불쌍한 사람들이 이런 고통과 환난들을 꼭 통과하게 하시는걸까? 반문할 것이다. 하나님이 왜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고난과 환난을 허락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을 통해 그 비밀을 밝히고 있다.

첫째.  하나님은 모든 환난 중에 우리를 위로하심으로 그 분을 깊이 찬양하고 그 분의 임재를 경험케 하신다
만약 당신이 조용히 앉아 당신에게 반복되는 문제들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위로들을 노트에 적어 본다면, 하나님의 수많은 위로와 그 분이 여러가지로 공급하신 것들이 그 문제들을 통과하는 가운데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동시에 그 문제들을 통해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셨음을 보게 될 것이다. 또한 문제를 통해 깨달은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께 낮아진 마음으로 구하게 되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그 분의 세심한 사랑을 경험하고 있음도 알게 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위로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게 하신다
우리의 삶에 허락된 환난은, 환난과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냉담하고 무관심하고 심지어 정죄하기까지했던 나의 교만한 마음과 죄악을 보게 하는 능력이 있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위로하는데는 심리학적 지식이나 스킬보다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것이 최고의 능력이 될 수 있다. 즉, 누군가를 살리고 치유하고 영적으로 깨우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사람을 살리시고 치유하는 분이심을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셋째. 고난이 넘칠수록 위로가 더 넘친다.
바울, 가이오, 아리스다고, 베드로, 그리고 성경의 셀 수 없는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난의 길을 걸어갔다. 그들이 계속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고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난이 넘칠수록 예수님의 위로가 더욱 넘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위로를 많이 받으며 고난을 체험한 사람들은 너그럽고 겸손하고 진실되며, 그 마음이 평안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어 지옥에 매여 사는 한 가정과 나라와 열방이 풀어지게 하여 작은 천국을 만들어가는 변화들을 가져왔다.

환난의 시기에 고난을 피하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무엇을 해보려 하지 말고 그냥 고난을 받아보라. 아픈 마음과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고난 속으로 주님을 계속 따라가면 된다. 그러면 주님이 다시 우리 내면에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주신다. 주님께서 처음보다 더 새 것, 더 좋은 것으로 우리를 다시 재생되게 하실 것이다.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는가?

사도행전 19:1-20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헬, 또는 침례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1)세례를 받으니 헬, 또는 침례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설교요약>
제자들을 세우는 일
1절에 보면 먼저 예수님을 믿었던 제자들을  바울이 에베소에서만나게 되는데,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묻는다. 하지만 2절에 그들은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 대답한다. 6절에서는 바울이 그런 그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안수할 때, 그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은 이미 예수님을 믿었는데 왜 성령을 알지조차 못했는가?이다. 고린도 전서 12장 3절과 로마서 8장 15절에 보면 에베소의 제자들은 이미 성령 이 그들 안에 거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베소의 제자들은 성령 충만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도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르고 믿었지만 사도행전 1장 4-5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말씀에 따라 성령을 사모했고, 오순절에 성령 충만을 받게 된다. 또한 에베소서 5장 18절에 바 울도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성령 충만 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계속해서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한다. 사도행전 2장 4절에보면 성령 충만과 성령 세례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어 성령이 내 안에 거하셔셔도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충만의 목적첫째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그분의 사랑과 위로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기 위함이다
6절에 보면 방언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지만, 성령충만의 외적인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증거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그 분의 사랑과 위로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 3절에 보면 바로 이것이 예언이다. 예언 기도는 사람들에게 공포심과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이다. 즉 사람들에게 덕과 위로, 격려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언은 마음에 찔림을 주는 말씀을 해도 사람들에게 위로와 마음의 치유를 주는 특징이 있다. 또한 나의 마음에 교훈을 주셔서 깨닫게 해주심으 로  또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게 하시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하나님의 영은 이런 일을 행하신다. 설상 한 영혼 의 숨은 죄를 드러나게해도 자신의 경험과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영으로 그것을 드러나 게 함으로 그 상한 마음에 평안을 주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소수의 제자들을 통해 세상을 바꾸기 위함이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나 안수해 준 제자들은 열 두 명이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두란노 서원에서 2년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가르치는 사역을 하였다. 그 결과는 10절에 보면 ‘아시아 지역에 사는 모 든 이들이 주의 말씀을 듣더라’로 나타난다. 바울 혼자서 이 넓은 지역을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즉 바울이 말씀을 전했던 열 두 명의 제자들을 통해 지금의 뉴욕과 같았던 에베소에 모인 전세계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이 열 두명의 소수를 통해 타락하고 문란한 도시 에베소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셨다. 이처럼 오늘도 하나님은 그냥 그리스도 인이 아니라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을 찾고 계신다. 또한 그냥 제자가 아니라 성령 충만을 갈망하는 제자를 찾고 계신다.

성령 충만한 제자가 되기 위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싶다.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 18:19) 이 말씀을 볼 때 마다 '함께 구하면'에 초점을 두었었다. 그러나 최근 묵상에서는 '합심' 이라는 단어가 눈과 마음에 들어왔 다. 그것은 서로 동일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마음이 서로 서로 동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두에게 동일한 마음을 주신다. 그 동일한 마음으로 함께 구할 때 성령이 부어진다.

새롭게 하는 사랑 2

사도행전 18:12-28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설교요약>
신약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크게 세 유형의 사람들로 분류할 수 있다.

육신의 필요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첫번째 무리는 육신의 필요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한 아이의 음식이였던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의 무리를 먹이고도 남는 음식들을 제자들에게 열 두 광주리에 담게 하셨다. 이 기적을 보고 오천명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왕으로 삼으려 했다. 이것을 미리 아신 예수님은 홀로 조용히 산으로 가 몸을 숨기셨다. 이튿날 이 수 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찿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찿기 위해 배를 타고 가버나움까지 가는 열정을 보였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은 표적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나님이 내려주셔서 먹었던 만나라는 떡이 바로 자신을 예표하는 그림자였음을 말씀해 주셨다. 자신이 생명의 떡이기에 자신을 믿으면 영생을 얻게될 것이라 하셨다. 썪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을 위한 양식을 위해 일하라 하셨다.

예수님 모시고 자신의 힘으로 사는 이들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택하여 사역을 시작하던 초창기였다.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셨는데, 풍랑이 일어나 배가  바닷물에 덮이게 되었다. 예수님은 그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그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자기들이 죽게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불평하며 예수님을 깨웠다. 이때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고 잠잠케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왜 무서워하고 믿음이 없느냐?'라며 책망하셨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예수님은 모시고 살지만 여전히 자신이 삶의 주인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인생의 배에 모시고 있고,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계신다. 그러나 삶의 어떤 힘든 문제가 찿아오면, 예수님을 자주 원망하고 그 모든 원인을 주님께 돌린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지만 자신들의 주님으로 예수님을 인식하지 않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크게 두 가지 은혜를 주시고 계셨다. 첫째, 삶에 적용할 생명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셨고 둘째, 많은 표적들을 통해 그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간섭하시고 인도하고 계심을 보여주셨다.하지만,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생명의 말씀을 들었느냐가 맏음의 성장과 태도의 변화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때문에 예수님은 받은 말씀과, 삶 속의 공급하시는 기적을 토대로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럼 어떻게하면 우리의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할 수 있을까?그 모델을 세번째 유형의 사람을 대표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서 찿을 수 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처음에 로마에서 황제 글라우디오가 유대인을 추방하는 일로 고린도에 생업을 따라 이민 왔다. 그러다 바울을 만났고 하나님이 어떻게 고린도에서 역사하시는 지를 모두 지켜 보았다. 회당장 그리스도와 그의 온 가족의 회심과 그 후임자 회당장 소스데네의 회심과 제자가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하나님이 바울과 함께 하시며 그를 강권적으로 사용하시며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을 보고 체험하는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이 두 사람을 자신들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은 사람들로 소개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5) 이 두 사람이 마음을 새롭게 한 방법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뜨거운 사랑'이었다. 이 두 사람은 바울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성도들에게도 감사를 받을만큼 사랑과 열정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가장 안정된 순간에도 주님이 말씀하시면 언제든 순종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 사랑이 아볼로에게 흘러갔고, 아볼로는 그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의 가르침과 함께 흘려 보냈다. 이렇듯 세번째 유형의 사람은 사랑의 사람이다. 사랑하며 사는 제자다. 마음이 새롭게 되는 방법은 사랑밖에 없다. 이러한 사랑하는 마음에 더해지는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은혜의 폭포로 우리의 막혀 있는 영혼의 답답함이 뚫어질 것이다. 그 동안 없다고 불평하고, 비교하고, 원망하던 마음이 떠나고, 하나님이 지금 당신의 삶에 부어주고 계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소망의 일들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또한 당신의 마음을 긍휼함으로 채워 우리가 도와주고 싶은, 아볼로와 같은 사람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적극적으로 헌신하라. 

우리는 이 세 유형 중에 어디에 있는가?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있는가? 좋은 말씀과 체험은 많이 하나, 마음이 냉랭하진 않는가? 그렇다면 세번째 유형으로 변모하라. 세번째 유형은 받은 말씀과 체험들을 사랑으로 매일 새롭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 때 당신의 영혼은 소망과 긍휼과 담대함으로 매일 새롭게 채워질 것이다.

새롭게 하는 사랑 1

사도행전 18:12-28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공급하심

사도행전 18:1-11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설교요약>
무역도시이자 남 그리스와 북 그리스 사이의 연결 도시로 이용되었던 그리스는 그 당시 가장 부유하고 사람이 많은 도시였다. 그러나 이런 재물로 인해 교만과 부도덕, 동성연애 등의 사악한 죄악이 이곳에 만연하게 되었다.이 곳에서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장막을 지으며 복음을 전하게 된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시는 공동체 내에서의 사람과의 은혜와 수동적인 은혜들을 살펴보자.

사람 은혜
바울이 홀로 아덴을 거쳐 낯선 고린도에 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마침 믿는 유대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게 해주셨다. 그들은 당시 로마에 살고 있었는데 황제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는 바람에 고린도로 이민을 와야만 했다. 당시 수공업의 기술을 가지고 있던 바울과 이 부부의 직업도 동일했다. 그래서 함께 일을했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을 도우며 헌신했다. 당시 지중해 근방에는 많은 나라들과 도시들이 있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그 많은 로마의 식민지와 도시들로 갈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고린도에 왔을 때는 놀랍게도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한 시점 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까지도 아까워 하지 않고 바울을 도왔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누군가 당신을 위해 목숨도 아까워 하지 않고 돕는다면 어떨것 같은가? 꺼져가던 영혼도 다시 뜨겁게 타오르지 않겠는가? 우리는 주님을 따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경험들을 자주한다. 함께 주를 위해 일하고 먹고 웃고 울었던 사람들이 곁을 떠나간다. 그때 마음이 슬퍼질수 있고 열정이 약해지며 힘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 다시 하나님을 기대해야 한다. 하나님은 또 다른 도울자를 예비시키시고 보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바울과 아굴라 부부처럼 함께 일하고 주를 섬기며 헌신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들을 주도적으로 세워가야 한다. 그렇게 하는 목적은 사람들의 존엄성을 세워주고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관계로 세워가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새롭게 주시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생각하라. 그들을 뜨겁게 사랑하라. 만약 지금 아무도 없는것 같다면 떠나간 사람으로 인해 슬퍼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하라. 하나님은우리에게 사람을 주시는 분이시다.

수동 은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도 자신이 주도적으로 회당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고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와 베뢰아로 들어갔다. 거기서도 자원해서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했고 믿었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한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다시 몰래 그곳을 떠나 아테네에 도착했다. 아테네 에서도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매일 장터에서 철학자들과 변론하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체포되다 시피해 법정에 서야 했다. 그 전에는 빌립보에서 자원해서 귀신들린 여종을 귀신을 쫓아내어 자유케 해주었다가 빌립보 감옥에 수모를 격어야 했다. 그러나 그 감옥에서도 자신을 때리고 고통을 준 간수에게 복음을 전해 구원받게 해주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바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한 일이다. 그런데 당시 바울 곁에서 카메라맨 역할을 했던 저자 누가는 고린도에서 두드러지는 한 인상적인 장면을 적고 있는데 그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영에 강하게 붙잡힌 모습이었다. 지금까지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열정적으로 사역하며 헌신했다. 그런데 고린도에서는 하나님이 그를 등에 엎고 뛰시는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몸은 추운데 전혀 그것을 느끼지 못할때가 있다. 몸은 휴식을 원하는데 생각은 전혀 힘들지 않고 괞찮다고 느낄때가 있다. 그 상태를 방치하면 몸에 문제가 생긴다. 바울은 어쩌면 자신이 느끼는 어떤 영적인 육적인 기갈이 있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는 고린도에서 노동을 하면서 안식일 마다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했다. 4절 '안식일 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he reasoned in the synagogue, and persuaded the Jews and the Greeks' (4절-NIV) 여기서 두개의 동사는 분명 능동태로 쓰여졌다. 우리는 주를 따르면서 자신의 상태를 잘 알지 못할때가 있다. 자신의 느낌과 실제가 다를때가 있다. 실제는 마음이 두려운데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외로운데 외롭지 않다고 느끼며, 몸이 힘든데 크게 힘들지 않다고 느낀다. 반면 그 반대일때도 있다. 두렵지 않은데 두렵다고 느끼고, 외롭지 않은데 외롭다고 느끼고, 힘들지 않는데 힘들다고 느낀다. 이때 우리의 상태를 정확하게 아시는 분은 하나님 이시다.이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수동태의 은혜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사로잡으시는 은혜다. 그 우리 자신과그 짐의 무게도 모두 그분이 짊어지시기 위함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수동의 은혜다.

우리는 그분의 푸근한 가슴에서 다시 새힘을 얻는다. 그분의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큰 평안과 생명을 공급받는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힌 바울을 보면서도 그를 핍박하고 공격하는 유대인들의 증오는 계속되었다. 그때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한 증거를 남기며 유스도라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고 회당장 그리스보와 온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밤에 다시 환상중에 바울에게 나타나 두려워 하지 말고 계속 전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와 함께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그를 아무도 해할수 없게 지켜 줄것이라고 하시며 그 도시에 하나님이 구원할 사람들이 많다고 다시 수동의 은혜를 주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강권적인 수동적인 은혜를 보면서 그것을 의지가 약하고 의존적이고 요행을 바라는 삶이라고 유대인의 율법적인 관점으로 볼수있다. 매순간 하나님 앞에 굴복하라. 그분 앞에 무릎꿇고 십자가 앞에 나오라. 그리고 은혜 아니면 살수가 없다고 고백하라. 그때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하고 우리의 사랑은 더욱 진실해져 가고 우리의 선행은 더욱 생명을 주는 축복이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