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보려면

사도행전 17:15-34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나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고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들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붇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나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여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슴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고 있었더라 
 

<설교요약>
사도바울은 2차 전도여행때 베레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선동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도록 방해를 받았다. 바울은 핍박하는 무리들에게 쫒기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아테네에 머물면서 베레아에 남아있던 디모데와 실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바울이 전했던 말씀중에 두개의 구절을 함께 묵상해 보려고 한다.

정해주신 시간과 경계
26절에 보면 두 개의 단어가 눈에 띈다. '연대와 경계' 다. 연대는 “정한 때” 라는 어떤 시기와 기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경계는 “정해진 한계”라는 장소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시간과 장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시간과 장 소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라
27절을 보면 성령은 바울을 통해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신다. 특히 '더듬어' 라는 단어는 “만져보다” 라는 의미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를 주의 깊게 묵상해 봐야 한다.

하나님을 찾는 방법
1) 축복하는 사역이다.
야곱의 생애를 한가지로 압축하면 “축복하는 일”이었다. 창세기 47장 9절에서 10절을 보면 애굽의 왕인 바로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다. 그 다음에 야곱의 죽음이 가까워 올 때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복하는데 이때 장자인 므낫세에게 야곱이 오른손을 얹지 않고 둘째인 에브라임에게 얹은 것을 보고 잘못 얹은 줄 알고 요셉은 아버지의 손을 옮기려 했다. 그러나 야곱은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창: 48:19) 하며 그 손을 옮기지 않고 에브라임을 므낫세 보다 앞세웠다. 이것은 야곱이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영에 붙잡혀 축복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12명의 아들들을 축복하며 생애를 마쳤다. 그리고 훗날 그 예언들이 모두 성취되었음을 그 증거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또한 하나님의 영에 붙들려 한 축복임을 증명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선택하시고 그분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시겠다고 감동시키신 일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야곱이 가졌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다.당신이 누군가를 축복할 때 당신은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2)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
시편 143장 7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그분의 얼굴을 숨기실 때 자신의 영혼이 피곤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얼굴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그분의 얼굴이 우리에게 비취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증거는 기쁨과 평안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침을 뱉었다. 이제 하나님은 이렇게 수치와 폭력으로 인해 일그러진 이 땅의 영혼들의 얼굴을 그분의 손으로 감싸주고 상처를 싸매주며 흐르는 눈물과 피를 닦아주는 사람들을 찾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가로막는 고질적인 방해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수치와 폭력에 상한 마음이다. 우리는 마음이 완벽하게 죄 사함 받고 치유 되기 전 까지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삶 속에서 겪는 슬프고 마음상하는 일들이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의 고통 받는 마음에 치유와 기쁨을 줄 수 있는 능력임을 말씀하고 있다.하나님이 당신의 그 해결되지 않은 슬픔과 고통들로 누군가를 치유하고 있을 수 있음을 믿으라.

3) 하나님을 찾으려면 한번에 한 사람씩 사랑하라.
야곱이 요셉이 보낸 수레를 타고 애굽으로 내려갈 때 그의 전 가족은 70명 이었다. 하지만 야곱이 147세에 그의 임종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창: 48:4). 야곱이 이 비전을 40세에 받았다고 하면 거의 100년이 지난 시간이지만 야곱은 죽음 직전에 하나님의 비전을 분명히 기억한다. 외적인 상황만 본다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계속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이 일에 중심에는 요셉이 있었다. 야곱에게 있어 요셉은 두 가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준다. 첫째. 사랑은 다시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둘째. 완벽하지 않은 사랑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 하나님은 야곱의 불완전한 사랑으로도 요셉같이 훌룡한 용서와 사랑과 생명을 사랑하는 열매를 거두게 하셨다. 또한 죽은 줄 알았던 그 사랑을 다시 부활시키셨다. 우리의 사랑은 예수님처럼 완벽하지 않다. 우리의 사랑은 물거품처럼 되버릴때가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것 보다 계속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신다. 우리가 한번에 한 사람을 사랑하려 할 때 완벽하지 않아도 때로 물거품처럼 되어도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신다.

당신은 누군가를 축복하고 기도해 주고 있는가? 당신의 슬픔과 고통으로 누군가의 얼굴의 수치와 상처를 닦아주고 있는가? 한 번에 한 사람씩 사랑하고 있는가? 그러면 하나님이 살도록 인도해 주신 땅과 그 시간들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보게 될 것이다.

준비된 마음

 

사도행전 17:10-14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설교요약>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대하는 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가 그분의 말씀을 마음과 뜻을 다하여 신중히 기쁨으로 듣기 원하신다.

준비된 마음과 믿음
듣는 것이 신중한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도 상대방이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신중하게 말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그도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신중한태도를 취하지 않는 현상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가 말씀을 듣는 중에 읽고 묵상하는 중에 소망의 생각과 마음들을 주셨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가?

눈으로 보는 것을 누릴 수 있는 준비된 마음
성경에는 눈으로 보았지만 누리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다. 12명의 정탐꾼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눈으로 보았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죽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실것이라는 약속을 약 1년 4개월 전 이미 홍해를 건너기 전에 모세를 통해 들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실것 뿐만 아니라 그 땅에 할일도 미리 말씀해 주셨다. 따라서 그들이 보았지만 누리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가 아니다. 1년 4개월 전에 주신 말씀을 마음에 넣어 놓지 않고 신중하게 듣지않고 건성으로 들었기 때문에 막상 현실에 부딪칠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못하고 현실의 상황 앞에 절망하게 된것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해준 사랑의 말들을 쉽게 잊지 않는다. 그것은 건성으로 듣지 않고 진심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듣는 것은 사랑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을 어려서부터 암송하고 외웠다. 그러나 그 말씀안에 예언 되어 있는 메시야 예수님에 대해서는 왜 보지 못하는가? 이것은 지식으로는 받아 드렸는지는 모르지만 준비된 마음, 신중한 마음으로는 받아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받아 드리지 않는 말씀은 결국 사단이 그의 눈을 가려 속임 가운데로 인도하기 마련이다. 말씀은 우리 삶의 '사용설명서' 다. 우리는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알려면 말씀을 준비된 마음으로 잘 들어야 한다. 그러면 그분을 더욱 잘 보게 되고 그분이주시는 것을 보는것 뿐만 아니라 모두 누리게 된다.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
주님이 우리와 24시간 동행 하시는데 왜 만남을 준비해야 하는가? 공식 예배와 또는 개인 경건의 시간은 늘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 하나님과 밖에서 만나는 시간과 흡사하다. 우리는 이런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간을 통해 기대와 기쁨으로 채워지는 천국을 경험한다.

1) 할 말들을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을 미련한 사람 보다도 더 미련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말들 속에는 소원도 고백도 아픔도 갈등도 감사도 기쁨도 모두 들어 있게 된다.

2) 기도로 준비한다.
기도하며 준비할 때 이미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하늘의 문이 열리고 축복들이 부어 지기 시작한다. 응답들이 주어진다.

3) 빈 그릇을 준비한다
미리 시간 전에 와서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메마른 땅이 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은혜를 사모하면 하나님은 그 준비한 마음의 그릇에 그분의 은혜를 부어 주신다. 특히 당신의 모든 생각, 계획, 염려를 비워 빈 그릇이 되게 하라. 온갖 세상 것들로 가득 찼다면 먼저 주님 앞에서 고백하며 비우면 주님이 채우실 것이다.

4) 선물을 준비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무엇인가 주고 싶어진다. 주면서도 받아주면 너무도 고마워 한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까 생각하며 나오라. 그때 눈으로 보는 것을 누리게 될것이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사도행전 16:35 - 17:9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한대 
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주니라

<설교요약>
두 종류의 사람
우린 삶에서 위로 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상황은 위로 받기 보다 위로 해주고 돌봐주어야 하는 상황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 내면에는 갈등이 일어날수 있다. '나는 누구에게 위로를 받지? '라는 불만이 계속 솟아오른다. 그러나 또 다르게 반응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계속 위로하고 누군가를 돌보면서 자신의 길을 간다. 그리고 계속 누군가에게 공급을 받는 것처럼 힘이 있고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그들은 '다음엔 누굴 위로하고 도울까?' 라고 말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 당신의 삶은 이 둘 중에 어느 쪽에 속했는가? '위로 해 주는 자를 계속 찾는가?' 아니면 '위로 해 줄 사람을 찾는가?'

기대치 않은 위로
바울 일행은 야손의 희생 덕분에 안전하게 형제들에 의해 베뢰아에 도착했다. 사도행전 17장 10절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리라' 야손과 그의 가족은 바울과 그 일행을 향한 하나님의 큰 위로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소유까지 걸고 바울을 도왔다. 더 큰 위로는 이 짧은 시간에 데살로니가에 많은 영혼들이 예수를 만났고 그들의 삶과 믿음은 '아가야' 즉 마게도냐 남쪽 그리스 영토 전역에 본이 되고 향기가 된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계속 위로하고 돌보야 하는 상황에도 계속 기쁨으로 그 일들을 해 나갈 때 하나님은 전혀 기대치 않은 위로와 선물로 우리를 만나주심을 믿는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음
잠언서 29장 25절에 이렇게 말씀한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 무에 걸리지만 주님을 의지하면 안전하다'(잠: 29:25) 'It is dangerous to be concerned with what others think of you, but of you trust the Lord, you are safe' (GNT)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각인 되고 싶다.
2) 사람의 도움과 사랑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3) 그 관심과 도움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사람의 거절과 배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마음을 쏟을 때 일어나는 변화들은 무엇인가
1)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상황속에서 인도해 가신다.
2) 기도하게 된다.
3) 진정한 사랑으로 사람을 대한다.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유익보다는 진실한 마음으로 대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피곤해지고 유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을 존중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유치하게 생각되면서 점점 사무적이고 이익중심적이고 실용적인 가치만을 추구하게 된다. 이 또한 사람을 두려워하는 삶의 전형이다. 바울은 빌립보에 한 영혼 때문에 고통을 당했다. 그는 루디아 한 사람, 귀신들린 한사람, 감옥의 한 간수, 데살로니가의 한 사람 야손을 세상의 가치기준과 직업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으로 진심으로 대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전혀 기대치 않은 위로를 주셨다. 그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을 일으키셨다. 그런 삶을 살수 있는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주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더 많은 시간과 삶을 드리는 하루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을 생각하고 신뢰할 때 나의 내면과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확인하고 글로 적어 보자.

잃어버린 슬픔

사도행전 16:16-34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17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설교요약>
영혼에 대한 슬픔
바울과 그 일행들은 이방인 루디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기도하는 곳으로 가다가 점치는 귀신이 들린 노예 소녀를 만나게 된다. 이 소녀는 귀신의 영에 사로잡힌 고통은 물론, 점을 쳐주고 번 돈 모두를 자신의 주인에게 바쳐야 하는 이중고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소녀 안에 귀신은 바울과 그 일행이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음을 알고도 소녀 안에서 머물며,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들이라” 라고 하며 계속해서 크게 외쳐댔다. 바울이 몹시 괴로워하며 귀신을 쫓아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괴로움이란 슬픔으로 킹제임스 버전에서는 번역된다. 따라서 바울이 이 귀신 들린 소녀를 보면서 가졌던 내면의 괴로움은 한 영혼이 받는 고통에 대한 큰 슬픔 또한 동반된 것임을 분명하다. 그래서 소녀를 통해 유익을 얻고 있는 주인으로 해를 입을 수 있음을 알았알 것임에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그 아이에게 떠나도록 명령했고, 아이는 결국 자유케 되었다. 결국 그의 슬픔이 한 영혼을 풀어주는 생명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실 때 그 분을 위해 우는 자들을 향해, 십자가의 예수님을 볼 때마다 자신이 지은 죄와 누군가에게 고통을 준 것을 슬퍼하며 울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 즉 가족과 타인의 영혼 구원을 위해 울라고 하셨다. 만약 당신이 그러한 애통함으로 울고 있다면 당신은 복 받은 사람이다.

슬픔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근본적인 원인
귀신 들린 소녀의 주인들은 여종이 당하는 고통은 안중에 없이, 그로 인해 얻는 재물이 더 소중했다. 이렇듯 탐욕에 빠진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룩한 슬픔은 없고, 오직 악한 슬픔만이 가득하다. 이 귀신 들린 아이를 노예로 부려 수익을 얻은 여러 주인들 중 단 한 명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고, 회개도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애통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타인의 아픔 때문에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약속 하셨다. 그렇기에 이 소녀를 악용한 주인들의 내면에는 진정한 '위로'가 없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에 칭찬과 위로가 필요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 후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표현을 하셨다. 이것은 모든 창조물에 하나님의 칭찬을 갈망하는 본능을 심어 놓으셨음 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칭찬과 위로 탱크를 자신의 위로와 칭찬으로 채우신다. 특히 채우는 과정 중 중요한건 '보시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 분이 우리를 바라볼 때 우리의 내면에 위로와 칭찬이 채워진다. 그 위로와 칭찬은 우리의 내면에 탐욕과 정욕이 근접하지 못하게 우리를 더욱 거룩한 열정들로 내면을 뜨겁게 한다. 그런데 내면에 하나님,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 사람들을 보려 하지 않고, 사람들을 낮은 곳에서 자신을 하나님처럼 우러러 보라고 압박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자신을 대신해서 사람들을 봐 줄 사람들, 칭찬하고 격려할 사람들을 찾으신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늘의 위로를 부어주신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정반대의 상황으로 보내실 때 크게 세 종류의 반응을 보인다.
1)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리한다.
2) 몸은 가까이 있지만, 마음이 멀어진다.
3) 그래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과 몸을 다하여 주를 계속 따라가는 사람이다.
바울과 실라는 세 번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한밤 중에 아프고 힘들어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기도하고 찬송했다. 그 때 지진이 나고 손발로 묶인 쇠사슬이 모두 풀어졌다. 하지만 간수의 처지를 알고 옥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 받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주를 위해 살다 당한 어려운 상황들로 모든 것을 쉽게 속단해선 안된다.  바울이 감옥에 갖힘으로 인해 하나님은 간수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에는, 그냥 찬송하고 기도하라. 그럼 다음은 하나님이 길을 알려주신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우리의 그 어떤 짐보다 우리 존재 자체를 가장 무겁게 느낄 때가 많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은 자기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짐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까지 짊어지신다고 하셨다. 그럼 그 분이 나를 짊어지시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첫째. 하루 종일 모든 일과 만남 속에서 그분이 나를 어떻게 짊어지시는지 기대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둘째. 그분이 나를 짊어지신 일들을 감사하며, 구체적으로 하루를 기록으로 마감한 다음, 종종 그것들을 다시 보는 것이다.

헛되지 않은 일

사도행전 16:1-15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설교요약>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 헌신하면서 지칠 때가 있다. 주의 일을 평생 사는 동안 얼마 동안은 할 수 있지만 '항상'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바울은 항상 주의 일에 힘쓰라고 했다. 항상 주의 일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그 수고가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하나님이 심기 원하시는 일
바울은 예수를 믿으면, 그 분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살아나 새로운 삶을 살다가, 육체의 생명이 다하면 그 영혼이 예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혈과육이 아닌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고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날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예수님께서 이땅에 다시 오실 때 죽어 흙으로 돌아간 육체도 다시 부활의 몸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 '주의 일' '헛되지 않는다'고 말한 그 일은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롭게 성령으로 거듭난 일을 말한다. 그들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이 땅에서 영적인 부활의 삶을 살아가면서 이 땅에 천국을 가져오는 통로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성장하여 제자가 되어, 예수님처럼 삶을 살면서 또 다른 영혼들을 거듭나게 한다. 그리고 그들로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살게 하고 죽어서는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는 헌신의 삶을 살도록 돕는다.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할지, 어떻게 입을지, 무엇을 마실지 준비하며 살까 걱정하고 혼동스러워한다. 당신은 어떤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슨 일을 해야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인도 받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성령으로 심고 있는 사람이다. 주의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헛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헛되지 않은 주의 일을 하며 성령으로 심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성령의 증거들
1) 갈 길과 해야할 일을 인도 받는다
우리가 헛되지 않은 주의 일에 우리의 삶을 고정하고 삶을 드릴 때, 하나님은 그 때 그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정을 내리도록 쉽게 인도하고 계심을 체험하게 된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어떤 결정과 선택을 해야할 지 분별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가 주의 나라와 그분의 일을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그 분이 원하시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신다.

2)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은; 성령의 갈망을 감지하는 것이다
바울은 1차 선교 여행처럼 아시아 즉, 그가 전에 활동했던 곳으로 떠나려 했는데, 그 길을 성령이 막으시는 걸 감지 했다. 바울 일행은 분명한 계획을 세웠었다. 그들은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 했다. 그러나 성령이 막으셔서 다시 비두니아(터키 북부지역)로 가려고 무시아에 도착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 분을 전심으로 따르고 구하고 순종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갈망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타내신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세운 계획이 있다 할지라도 성령이 그 세운 계획들을 막으시는 것 같을 때 그 계획을 내려 놓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다.

3)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에게 임하는 축복은; 기도로 도울 자를 만난다
바울은 기도처를 찾다가 강가에서 모인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 곳에서 옷감 장사를 하던 루디아의 마음을 하나님이 여셔서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여인은 강권하여 자신에 집에 바울 일행을 머물게 했다. 바울 일행이 처음에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도하는 곳을 찿으러 가다가 루디아를 만난 일은 의미심장하다. 하나님은 단 번에 루디아를 통해 그들의 의, 식, 주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주의 일에 힘쓰는 삶을 살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환상을 보고 막상 순종하여 행동해도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기도하려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만남의 축복을 주셨다.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순종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쉽게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바로 기도해야 할 때이다. 기도할 장소를 찾아야 할 때인 것이다.

당신은 주의 일에 힘쓰고 있는가? 성령으로 심고 있는가? 이것이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에게 임하는 축복들이다. 헛되지 않은 일에 당신의 생애를 드리고 싶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