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는 은혜

빌립보서 4:19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설교 요약>
만나지는 은혜
빌립보서 4:19절에(NIV) 보면 meet와 glorious riches 이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자.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신데 어떻게 우리들을 만나 주시는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신다. 하나님이 만나게 해 주신 사람들은 위로와 격려, 기쁨, 소망을 주며 우리들의 삶을 부여케 한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은 만남은 우리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채워지게 한다. 또한 그 사람들을 우리들의 삶 안으로 이끄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값없이 받은 예수님의 그 사랑과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에 감사해서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고난과 희생, 목숨을 드렸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다. 그 만남은 감사로 시작한다. 그러나 한가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해 볼 것이 있다.

필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
누가 복음 17장 17절에 보면 10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으로 인해서 다 깨끗함을 받지만 한 명에 사마리아만 다시 와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하신다. 19-20절에 보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하신다. 여기서 너는 그의 나병이 아닌 너 자신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9명의 나병환자들의 필요는 채워졌지만 더 중요한 구원의 은혜가 아직 임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 후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님을 주목하고 믿으면 병보다 더 중요한 영혼인 그 사람 자체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교회를 통해서 삶의 필요는 채워졌는지 모르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즉 감사한다고 그것이 구원 받은 증거는 아니다. 구원받은 증거는 감사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며 예수님 앞에 엎드려 그분이 자신의 삶에 주인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분만을 예배하며 그 은혜가 커서 누군가에게 그 은혜를 주기 위해서 고난과 희생의 일을 자원하는 것이다.

혼동
한 가지 혼동하지 말자. 병 고침을 받은 9명의 나병환자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 일반 은총은 받았지만 구원 받은 특별 은총은 받지 못한 것이다. 즉 처음부터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영적 리더가 9명과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고 방탕하고 타락한 삶을 살아도 한번 받은 구원이 영원하다고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한번 받은 구원도 이후의 삶에 따라 다시 상실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은 결과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만약에 경고와 두려움으로 삶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하자. 그것은 두 가지 결과가 생긴다. 첫째는 구원 받았기 때문에 주님을 섬기는 못하고 구원받기 위해서 섬기게 된다. 둘째는 사랑 받았기 때문에 우러나는 헌신이 아니라 사랑 받기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된다.

감사의 능력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천국을 경험해도 내면에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인가? 라고 질문할 수 있다. 요일 4장 18절에 보면 구원을 받았어도 두려움 속에 살수 있다. 하지만 두려움에는 형벌과 고통이 있다 그래서 사랑하며 살라고 하신다. 그 두려움의 뿌리는 잘못된 추측을 통해서 우리들의 생각 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그 뿌리를 제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온전한 사랑이다. 그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감사해야 한다. 사단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는 인생을 허비했고 아무것도 아닌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잘못된 추측들을 심어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잘못된 추측을 분별하고 감사해야 한다. 감사는 사람의 마음을 사랑으로 채운다. 빌립보서 4장 7절에 보면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올 때 감사함으로 기도해라. 그러면 원수는 떠나갈 것이다. 감사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 감사하라. 기도로 감사하고 삶으로 감사하라. 둘째는 사람에게 감사하라. 말로 편지로 행위로 감사를 표하라.

깊음과 얕음

누가복음 6:12-19
12 그 무렵에 예수께서 기도하려고 산으로 떠나가서, 밤을 새우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13 날이 밝을 때에,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는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열둘은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열심당원이라고도 하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배반자가 된 가룟 유다이다.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셨다. 거기에 그의 제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고, 또 온 유대와 예루살렘과 두로 및 시돈 해안 지방에서 모여든 많은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었다. 
18 그들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또 자기들의 병도 고치고자 하여 몰려온 사람들이다. 악한 귀신에게 고통을 당하던 사람들은 고침을 받았다. 
19 온 무리가 예수에게 손이라도 대보려고 애를 썼다. 예수에게서 능력이 나와서 그들을 모두 낫게 하였기 때문이다.

보여주고 싶은 천국

요한복음 3:1-8/16
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설교 요약>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저녁에 예수님에게 나왔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당시 최상류층 사람이었다. 니고데모는 은밀히 아무도 모르게 저녁에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수 없음이니이다'(요3:2) 그의 말속에서 예수님을 높이고 칭찬하는 것을 엿볼수 있다. 그러나 이런 칭찬의 말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요3:3)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칭찬에도 전혀 기뻐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에게 두가지를 간접적으로 말씀하셨다. 첫째. 너는 거듭나지 못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거듭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셨는가를 알게 해준다.

거듭나야 하는 이유 -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당신은 당신이 본 어떤 아름다운 나라나 장소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꼭 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질것이다. 나는 하와이 이야기 열방대학 이야기를 종종한다. 그곳을 생각하면 열정이 타오른다.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고 큰 기쁨과 은혜와 치유가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느끼고 만져 본 곳이기에 표현이 생생하다. 그곳에는 두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아름다운 자연이다. 잉크빛 바다와 열대아 나무와 완벽한 날씨이다. 둘째는 보이지 않는 기쁨과 치유와 은혜와 평안이 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두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으로 알고있다. 둘째. 니고데모를 많이 사랑하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오늘 크로스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맛본 '천국'에 당신도 들어오길 바라는 소망때문이다. 그럼 그 천국을 어떻게 들어갈수 있을까? 그 천국은 바람같은 성령을 통해 들어간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했다. 요한복음 3장8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바람의 실체는 눈으로 볼수없다. 그러나 결과는 볼수있다. 따라서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다고 해서 바람이 존재하지 않는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성령을 바람으로 비유하셨다. 하나님의 존재가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심을 보여주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세상에 정말 중요한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바람처럼 존재하신다. 성령을 바람으로 비유한 것은 진리다. 성령은 하나님의 또 다른 인격이시다. 성령은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을 보게 하신다. 요한복음 3장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피를 통해 우리 죄를 회개케 하신다. 그 바람같은 성령은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오로라 처럼 아름답게 승화 시키신다.성령은 예수믿는 후에 짖는 죄를 찔리게 하시고 새롭게 바꾸신다. 성령은 지구의 자전 공전 속도 보다 더 빠르게 하나님의 임재안으로 우릴 데리고 들어가신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에 아무소리 안들려도 하나님의 임재를 영혼으로 보고 느끼게 해주신다.

내가 존경하는 미국의 선교사 한분이 있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브레이 너드 다. 그는 1718년 커네디컷 에서 태어났다. 그는 9세때 아버지를 잃고 14살때 어머니를 잃은 외로운 소년이었다. 방황끝에 21살에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일에서 공부하던 중 자신의 생애를 인디언의 영혼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1743년 그의 나이 24살에 인디언 선교사가 되었지만 그는 움막의 짚푸라기에서 자야했다. 옥수수 죽을 먹고 길을 잃어 온 밤을 늑대가 우글거리는 숲에서 자야만 하는 날들을 보냈다. 결국 피를 토하는 폐결핵에 걸려 몸이 쇠약해 져갔다. 그러나 29살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갔다. 선교2년동안 인디언들은 그를 조롱하는것 처럼 전혀 변하지 않았고 죄악가운데 살고 있었다. 그런중 그가 절망중에 복음을 전하던 어느날 놀라운 성령의 부흥이 그 마을에 일기 시작했다. 그때의 한 상황을 이렇게 일기에 적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회중위에 강하고 급한 바람처럼 내리는 것 같았고 모든 사람이 그 앞에서 놀라 엎드러지고 말았다. 나는 그 영향에 놀라 그저 서있었는데 모든 사람이 다 사로잡힌 것 같았고 마치 앞에 무엇이 있든지 다 쓰러뜨리고 휩쓸어 버리는 강한 폭풍과 엄청난 대 홍수의 저항할수 없는 큰 힘과 비교할 만했다.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서로 관심을 가지고 구부리고 앉았고 그 놀라운 사실의 충격에 견딜 사람이 없었다. 중년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여러해 동안 술꾼으로 지내던 나이 많은 사람들과 6-7세 밖에 안된 조그만 아이들 까지도 자기 영혼에 대한 깊은 고뇌를 느끼고 있었다. 이제 가장 고집이 센 사람이 수그러지고 있었다. 그 전만 해도 스스로 의롭고 안전하다고 자랑하며 어떤 인디언들 보다도 아는 것이 많고 자기도 과거에는 10여년간 그리스도인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고 자신 만만하게 말하며 자기의 상태는 양호하다고 호언 장담하던 인디언 추장이 이제 와서 자기 영혼의 상태를 보고 심각하게 염려하며 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또 한 사람도 나이가 든 사람인데 살인자요 마술사에다가 악명 높은 술 주정뱅이 였는데 그가 눈물을 펑펑 쏱으면서 용서를 구하며 자신이 처한 위태한 사실을 볼때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수 있겠느냐며 오히려 투덜거렸다. 집 구석구석에서 사람이 모두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고 문 밖에서도 또 여러 사람이 가지도 못하고 서 있지도 못할 정도였다. 사람들 마다 자기 영혼에 대해 심각한염려를 하게 되었고 자기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저마다 자신을 위해 기도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이것이 바람같은 성령이시다. 당신은 거듭났는가? 천국을 맛보고 있는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거듭나고 천국안으로 들어온다.

선교는 누가 왜 하는가?

고린도전서 12:12-26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설교 요약>
* 1995년부터 아마존 선교를 시작하신 강광수 선교사님의 말씀입니다.

선교는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그 사명에 미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체인 우리가 하는 것이 선교이다.

브라질 아마존은 어떤 곳인가?
아마존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다. 브라질의 아마존 우림은 7 million km2 로 미국의 본토 지역과 맞먹는 사이즈이다. 이곳은 지구의 열대우림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 지 구 산소의 20% 이상을 생성한다. 그래서 지구의 허파라고도 불린다. 날씨는 6월에서 8월이 겨울, 12월에서 2월이 여름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아마존은 대체로 덥고 습하며 평균 온도는 23에서 29도이다. 안데스 산맥에 인접한 아마존 숲은 연간 4,000 mm로 엄청난 양의 비가 내 린다. 우기 (1월-4월)에 내리는 비는 상대적으로 기간은 짧지만 양이 많고 종종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다. 남미의 아마존 강은 나일강 다음으로 지구에서 두번째로 큰 강이다. 아마존 사람들 은 이 강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는다. 거주하기도 하며, 먹을 것을 강으로부터 얻고, 생활의 모 든 공급원이 이 아마존 강이다. 아마존 사람들은 소규모의 집단을 이루며 생활하고 다산으로 인해 계속적으로 인구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의 유아들이 유아기에 사망하기 때문에 일 정하게 그 수가 유지되고 있다.

아마존에서는 브라질, 콜롬비아, 페루 이 세 나라가 만나는 곳에서 ‘삼국경 신학교’를 운영 하고 있다. 180 acre (21만 6천평)의 땅을 사서 4년제 현지 지도자 양성을 위해 학교를 설립 하였다. IeFaM (Igr ej a Evangél ica Tr ês Fr ont eir as Amazonas) 라는 교단을 세우고 이 것을 협력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재정적으로 독립된 기관 PSI 를 세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 하도록 하였다.

2030년까지 이 신학교를 통해 150명의 현지 지도자를 양성한다라는 미션으로 현재 사역에 임 하고 있다. 그들이 100개의 교회를 세우고 1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농장 사역을 통해서 경 제적으로 자립하는 단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삼국경 신학교는 2005년 6명의 현지 학생을 데리고 시작하여 현재 3명의 풀타임 목사님이 교육하고 있으며 작년에 40명의 학생들 을 졸업시켰고, 올해는15명의 소수의 학생들을 데리고 운영하고 있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 니라 어떤 학생들을 어떻게 키워내는가가 더 중요하다.

기도제목:
1) 여자 신학교와 도서실 건축을 위해
2) 후방교회와 연관해서 새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3) 팀 사역을 위한 헌신적인 젊은 청년들이 많이 모일 수 있도록
4) 아마존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때까지 사역이 이어질 수 있도록

떡과 칼

누가복음 6:1-11
1 한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었다. 
2 그러자 몇몇 바리새파 사람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3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4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시는데, 거기에는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지 엿보고 있었다.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운데 서라.” 그래서 그는 일어나서 섰다. 
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물어 보겠다.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건지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10 예수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서, 그 사람에게 명하셨다. “네 손을 내밀어라.” 그 사람이 그렇게 하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11 그들은 화가 잔뜩 나서,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였다.

<설교 요약>
안식은 하나님이 지치고 피곤해서 쉬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창조한 것을 즐기고 그것들로 찬양받으시고 예배받으시기 위함이다. 안식일의 2가지 축복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체험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오른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쳐 주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께 바짝붙어 안식일에 일하는가 고발하기 위해 엿보고 있었다.예수님이 손마른자의 손을 고쳐 주시고 누가복음 6:9 처럼 이렇게 말씀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누가복음 6:11처럼 반응했다. 예수님과 이 사람들의 안식일이 대조적이다.이 치유를 통해서 창세기에 하나님이 제 7일에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예배하도록 복주신 그 원래 목적이 회복되지 않았는가? 오늘도 이 복된 날에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기대하며 나올때 그분은 치료의 하나님으로 만나주신다.

둘째. 떡과 칼이 주어지는 날이다
구약에 다윗이 사울에게 시기를 받아 억울하게 쫒기고 있었다. 다윗을 따르는 부하들과 동료들은 배가 고파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놉이라는 작은 마을로 숨어들어 갔다.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모두 배가고파 기진맥진에 있으니 먹을것좀 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아히멜렉은 하나님의 성전에 매주 안식일에 드리는 진설병이라는 떡을 다윗과 그의 일행에게 주었다. 그러나 성전에 하나님께 드려진 고기나 진설병 떡은 제사장 들만 먹을수 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먹으면 죽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다윗은 사울에게 쫓기고 있다고 말하지도 못했다.그러나 하나님은 억울하게 쫓기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 법을 어겼음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윗은 진설병을 먹고 창이나 칼은 없냐고 아히멜렉에게 물었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전에 골리앗을 죽인 칼이 보자기에 싸여 제사장이 입는 예복 에봇 뒤에 있다고 했다. 사무엘상 21:9 말씀처럼 다윗은 그것이 최고의 무기라고 말한뒤 그것을 가지고 떠났다. 골리앗을 죽인 칼을 다시 찾은 말씀도 큰 영적 의미가 있다. 다윗은 전에 하나님만 의지했다. 그 믿음이 자신보다 거대한 도저히 무너뜨릴수 없는 골리앗을 무너뜨렸다. 사울에게 쫓기는 상황속에서 두려움과 공포가 그의 영혼을 점점 약하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에서 떡과 칼을 다시 돌려 받은후 다윗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이 무엇일까? 떡과 칼이 주어진 이후

첫째. 강한군대를 이루었다
사무엘상 21장에 보면 다윗은 떡과 칼을 받은 직후 사울이 두려워 자신이 죽인 골리앗의 나라로 피신해서 가드왕에게 나갔다. 신하 몇명이 다윗을 알아보자 다윗이 미친척을 했고 다행히 그곳에서 탈출했다. 다윗은 아둘람 굴로 도망했다. 거기에서 환난당한 자 마음이 원통한자 빚진자들이 그에게 몰려와400명의 큰 군대를 이루게 되었다. 사무엘상 22:2을 보면 이것이 다윗이 다양하고 다루기 힘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하나님 나라의 용사로 세우는 지도자가 되어감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의 날에 떡과 칼을 받아 세상에 나가도 우왕좌왕 흔들릴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칼을 휘두르기 시작하고 점점 그리스도인으로서 강함을 갖게된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어도 세상에서 안된다고 쉽게 칼과 떡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둘째. 고난의 상황속에서 고난의 사람들을 풀어주었다
사무엘상 23:2-3을 보면 다윗은 즉시 하나님께 순종했다. 사무엘상 23:5말씀에 따르면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다. 다윗은 지금 사울의 대군에 쫓기는 상황이다. 자신의 군대는 갓 조직된 400명의 오합지졸 뿐이었다.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동족들 그일라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을 보고서 자신의 위험보다 그들의 생명을 더 먼저 생각했다. 대군을 이끌고 자신의 백성을 블레셋으로 부터 구원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다윗만을 쫓는 사울과 대조적이다. 다윗은 상황을 주님 음성으로 동일화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상황을 신뢰하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주의 날에 떡과 칼이 회복되면 자신의 상황이 고통스럽고 어려워도 주변의 고통스럽고 어려운 영혼들을 풀어줄수 있는 힘이 생긴다.

셋째. 자신이 사랑을 준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했다
사무엘상 23:13에 따르면 한가지 놀라운 것은 자신이 구해준 그일라 사람들은 다윗에게 은혜를 악으로 갚았다. 그러나 고난가운데서 고통스런 사람들을 도와주는 시간동안 400명에서 600명의 군대로 더 늘어나 있는 것을 보여준다. 기대할 만한 사람들은 도움이 아니라 해를 주고 기대치 않은 사람들로 채워졌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기대치 않은 시간에 우리를 도우시고 채우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떡과 칼로 사는 자들에게 어떤 보상을 하실까?
(시편 57:2)하나님은 다윗에게 소망과 확신을 주셨다. (시편 57:5)하나님은 다윗의 영혼에 온 열방에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거룩한 열정을 부어주셨다. (시편 57:7)흔들리지 않는 반석같은 믿음과 찬양의 마음을 주셨다. 시편 57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소망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최고의 보상중에 하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망' 으로 채워지는 마음이다. 소망은 기쁨을 낳고, 기쁨은 감사를 낳고, 감사는 성취를 낳는다.

주의 날은 떡과 칼을 받는 날이다. 떡과 칼은 ? 
1) 강한 하나님의 군대를 일으킨다.
2) 고난속에서 고난받는 자를 풀어준다.
3) 자신이 구해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준다.
4) 소망의 보상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