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에베소서 1:20-23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설교 요약>
교회는 십자가가 달린 건물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성경에 등장하는 교회들은 따로 건물을 갖고 있지 않았다. 대부분 집들을 옮겨 다니며 함께 떡을 떼고 삶을 나누며 예배를 드렸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몸의 의미 #1 
에베소서 1:22~23절에 의하면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일컬어진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라는 말은 교회를 대표하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가장이고 대표인 분이 예수님이기에 교회는 예수님이 양육하시고 보호하신다. 한마디로 주님이 책임을 지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그의 몸’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교회가 그 분에게 속한, 연결된 ‘그 분의 일부분’이란 뜻이다. 그래서 우리와함께 기쁨도 느끼고, 아픔도 느끼는 존재라는 말이다. 내 삶의 고통의 이유를 당장 다 알 수는 없지만, 주님도함께 느끼시며 결코 우리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심을 기억하라.

그리스도의 몸의 의미 #2 : 나타내는 몸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에 또다른 의미는 ‘보여지는 존재’다. 즉,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간은 보이지 않는 영역의 영과 혼, 보이는 영역인 육,인 몸으로 나뉜다. 때문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란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존재란 뜻이다.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 너무 멋지고 감동적인 이 표현은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은근슬쩍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충만하고 분명하게 나타내는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죽음이 마지막이라면 모든 인생은 그 자체가 비극이다. 오늘 본문은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살리셨다’라고 증거한다. 그것을 믿는가? 영원한 소망! 놀라운 기쁨이 지상에서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도 그 소망을 잃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다! 하지만 이런 소망으로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내 주변에 아직 그 약속과 소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극적 결말을 향해 매일 다가가고 있다. 예수님은 '그 분의 몸에 일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그 곳에서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라고 했다. 주님과 가까워지면질수록, 주님이 느끼시는 그들을 향한 고통스런 긍휼함도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곳 뉴욕, 우리 주변에 그 비극적 결말을 보지 못하고 절망의 비탈길을 내달리는 사람들이 있지않은가? 그들의 운명을 더 분명히 바라보라. 생명이 달리고 영원한 운명이 걸린 문제다. 교회로 바로 인도하기어려운 분들은 순모임으로 먼저 인도하라. 그냥 우리의 모임 속에 흐르는 소망이, 그 생명수가 그 영혼을 적시게 하라. 우리가 모일 때 감싸고 있고, 그 사이를 운행하시는 성령님이 역사하실 것이다. 그 영혼을 잊지 않고기다리신 예수님을 기대하며 초대하라! 우리는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고 하나되어야 한다. 그것이 교회다. 그러나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세상에 그리스도를 충만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그리스도는 그분의 몸을 이 땅에 남겨두셨다. 복의 근원이 되어, 생명의 근원이 되어 그 생명을 흘려보내기 위해 복음을 들고 그 분의 눈길이 향하는 곳으로 나아가고, 우리의 모임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일상에서 진실된소망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할 것이다. 

세 번째 사람으로

누가복음 10:25-37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설교요약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다. 3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에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사람들은 여분의 옷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불로도 사용했기에 귀중품 중에 하나였다. 강도만난 사람은 지금 도움이 절실요 요구되는 상황에 있는 사람이다. 그냥 놔두면 생명이 위독했다. 이때 마침 한 제사장이 그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해 지나갔다. 한 레위인도 그를 보았지만 피해서 지나갔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알고 있었고 이 사람들을 도와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도 알고 있었다. 조금전에 율법사가 대답한 신명기와 레위기 말씀 '마음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제사장은 특히 시체로 인해 부정해 지는 것을 피해야 했다. 시체와 접촉하면 성전에서 의무를 수행하지 못할수 있었다. 그러나 7일 정도의 정결의식을 통해 다시 깨끗케 될수 있었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제사를 드리러 간다고 볼수없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은 위선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 사랑을 알지만 그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피하고 있다. 두 사람이 피해 간 이유중에 하나는 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 이라고도 볼수있다. 도적떼는 주로 외지고 인적이 드문곳에서 강도짓을 한다. 따라서 강도만난 사람은 외진곳에 방치되어 있었을 것이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사람을 피해 지나갔다. 자신의 선행과 경건에 대해 스스로 자만심에 빠져있던 율법사는 이 두 사람의 모습속에서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자신을 옳게 보이려 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누가 볼때와 보지 않을때의 모습이 많이 다를수 있다. 그러나 겸손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늘 의식하기에 아무도 보지 않아도 아름다운 구제와 선행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하는 중에 죽어가는 사람을 보았다. 여행은 자신의 삶을 누리는 시간이기에 누군가에게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강도만나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까이 갔다. 그리고 긍휼이 여겼다.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게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다음날 주막 주인에게 2데나리온을 주고 돌보아 주게했다. 비용이 더 들면 자신이 돌아올때 갚아줄것이라고 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인을 격멸하고 무시했다. 사마리안인은 자신의 동족이 아닌 강도만난 유대인을 돌보아 주었다. 예수님은 이 세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는가 물었다.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사람이라고 했고 예수님은 가서너도 이와같이 하라고 하셨다. 율법사는 이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세번째 사마리아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베푼사람 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자만심에 빠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예수님이 이 율법사에게 이런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었다면 이런 이야기 조차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가 세번째 사람처럼 변화되길 원하셨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진실하게 마음으로 고통당하는 한 사람을 돌보아 주는 그런 삶을 보여주셨다.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율법사에게는 쉬운 삶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망적인 것은 그가 이 비유의 세번째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베푼 사람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깊이 깨달았다.이 세번째 사람은 예수님을 닮았다.강도당한 자는 주님 만나기 전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사단에게 강도당해 몸도 마음도 모두 찢기고 버려진 삶을 살았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삶이었다. 그때 주님이 홀로 우리에게 먼저 찾아와 주셨다. 그리고 아픈 상처에그 분의 보혈의 포도주로 소독해 주시므로 모든 고통을 주는 악한 균들을 죽이시고 치료해 주셨다. 다시 그 상처에 성령의 기름을 붓고 그분의 사랑의 손길로 우리의 상처를 싸매어 주셨다. 그리고 그분의 어깨에 태워 주막인 교회로 우릴 이끌어 주셨다. 우린 예수님에 의해 새 생명을 얻고 치유되고 회복되어 또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고 살리는 천국을 살고 있다. 율법사가 봐야 했던 것은 인간의 사랑의 한계다. 그는 세번째 분 예수님이 필요했다. 그 자신이 강도만난 사람임을 보아야 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사랑하고 착하다고 살고 있는데 그는 죄인이었다. 사람의 사랑은 일시적이고 쉽게 변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지속적이다. 예수님은 다시 돌아 올때까지 우릴 성령의 집인 교회에 맡기셨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계속 지불하시고 있다. 당신의 이웃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강도만난 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은 당신을 이런 사람들에게 보내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셔서 강도만난 당신을 살려주셨다. 

몇주전 수요예배에서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한 형제의 간증을 들었고 감사함의 표현과 존경의 표현을 하며 우느라 말을 잊지 못했다' 크게 격려가 되었다. 다음날 나는 이런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인가? 생각이 되었다. 또한 주님 품에 안기는 순간까지 거룩하고 순결하고 흠없는 신실한 선교사로 목사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뉴욕에서 선교사로서의 5-6년의 세월과 맨하탄 선교교회 담임 목사로서의 12년의 세월 동안 나의 인생의 노른자 같은 시간을 뉴욕에서 사역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으로 생각한다. 나의 성도들과 함께 뉴욕의거리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함께 울고, 웃고, 고난을 통과했고 먹고 굶었다. 찬양했고 예배했다. 열방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함께 아픈 영혼들을 안았고 기도해 줬고 세례를 주었다. 열방 가운데서 함께 아침에도 찬양했고 저녁에도 주를 예배했다. 함께 잤고 기차를 탔고 비행기를 탔고 차가운 마룻바닥에 자면서도 기쁘고 기뻤다. 함께 바닷가를 찾았으며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우리가 어찌 우리 형제 자매들을 잊겠는가? 우리가 어찌 뉴욕을 잊겠는가? 맨하탄 선교 교회를 잊겠는가? 죄송함도 있다. 좀더 사랑해 주지 못한것, 좀더 안아주고 좀더 함께 하고 좀더 긍휼이 여기지 못한것이다. 그러나 감히 바울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빌립보서 1:8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세번째 사람으로 살자. 예수님 처럼 살자. 주님 다시 오실때 까지 그렇게 살자. 

양의 권세

누가복음 10:1-24
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살아 있는 사람인가?

누가복음 9:57-62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설교요약

유익을 추구하는 사람

57절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고백하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하나님의 일을 할때 외로움과 고난이 있음을 알수있다. 예수님의 대답속에 질문한 사람의 마음이 드러난다. 예수님을 따르면 많은 물리적인 유익을 누릴수 있을것 같아 따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위험한 것은 예수님을 따르다가 어려움이 오고 물리적인 유익이 보이지 않으면 언제든 떠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예수님이 이 사람에게 즉시 예수님을 따를때 오는 어려움과 고난을 말해준 것을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의 이런 반응은 이 사람이 잘못된 기초위에 자신의 믿음과 헌신을 쌓아올렸다가 훗날 크게 무너지는 것을 피하게 하기 위한 은혜였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과정속에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경험할때, 여러 어려운 상황들을 마주하게 될때 두가지 반응을 할 수있다. 첫째,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신 여우와 새는 거철할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둘곳 없다는 말씀을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이 내면에 숨어있던 잘못된 동기의 헌신과 욕망들을 고백하고 회개한다. 그리고 새롭게 품어야할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 둘째, 가치가 어려움과 외로움을 능가하게 한다.

도피하는 사람
59절 두번째 사람은예수님으로 부터 벗어날 핑계를 궁리한것 같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죽은자로 죽은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다. 믿지 않음은 영혼이 죽어있는 상태임을 알려 주셨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산자와 죽은자를 물리적인 것으로만 본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자와 죽은자를 영적으로 구분했다. 영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살았지만 죽어있는 상태다. 영혼이 죽어있는 상태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 내면에서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사랑과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죄의 유혹을 이길수가 없어 죄의 노예로 살아간다. 육신의 본능으로 살아간다. 당신은 이런 예수님의 시각이 있는가? 이 시각을 가질때 삶의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바울이 옥에 갖혀 골로새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을때,바울의 기도부탁은 육체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죽은 사람들로 보는 예수님의 시각과 같음을 본다. 바울은 순교를당했지만하나님은 바울이 감옥에서 쓴 서신들을 성경이 되게 하셔서 바울의 시대로 부터 2천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의 글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읽게 하시고 있다. 서신을 읽는 사람들의 영혼이 살아나고 믿음의 사람들에게 계속 생명을 주고있다.

살아있는 사람
영이 살아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한다. 죄의 유혹을 받지만 그 유혹을 말씀과 성령으로 이긴다. 내면에 두려움과 슬픔을 이길수 있는 평안과 기쁨이 있다. 더 이상 사단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지배와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간다. 특히 5 가지를 추구하며 산다. 
첫째,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늘 인식하며 산다.
둘째, 악한 것을 피한다.
셋째, 추적하며 산다. '의,경건,믿음, 사랑, 인내, 온유를 추적 'pursue' 하며 살게 된다. 이런 것들은 예수님의 성품이다.
넷째.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다. 하나님을 따르다 보면 아주가까운 가족들에게도 오해를 살때도있다. 쟁기를잡고 뒤를 돌아보게하는 것들은 먼관계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인 경우가 많다. 이때 믿음의 싸움을 하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우리의 내면에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Divine Appointment'를 따라가야 한다. 당신은 주님이 인도하시는 사람과 장소로 갈려고 매순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다섯번째, 영생을 붙든다. 

당신은 이 5가지를 추구하며 사는가? 
이런 영적인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하는 중요한 방해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 하는 사람의 이성과 감정이다. 당신의 이성과 감정은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는가? 당신의 이성과 감정에 의해 인도를 받고 있는가? 매순간 말씀이 당신을 읽게하고 기도가 당신을 읽게 하고 성령이 당신을 읽게 하라.

마음

누가복음 9:37-56
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설교요약

사랑하는 아버지가 악한 영에 고통 당하는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려오지만 제자들은 그 악한 영을 내쫓지 못한다. 누가복음 9장 1-2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지만 41절에 보면 그 주신 능력을 모두 상실한 상태였다. 그럼 제자들은 무엇 때문에 그 능력이 상실했을까?
마음의 부재
"믿음이 없는”의 원어적 의미는 "믿을 수 없는" 의미를 갖는다. 며칠 전만 해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놀라운 일들을 해냈다. 하지만 그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 믿음은 매 순간 마다 달라진다. 로마서 10장 10절에 보면 믿음은 마음에서 이루어 진다. 제자들의 마음이 세상의 정욕으로 기울어 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왜곡하다" 라는 의미가 있는 "패역한 세대" 라는 말을 같이 하셨다. 마음을 은혜와 진리로 새롭게 하지 않으면 그 결과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선물은 그 안에서 약화된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다. 즉 그리스도인은 믿음이 약해지고 세속적으로 될 때 그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스스로 분별해야 한다.
예수님의 마음
첫째는 넓은 마음이다. 12제자들이 누가 제일 큰 자인지 논쟁하기 시작했다. 그때 예수님이 어린 아이 하나를 자기 곁으로 세우신다. 그리고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 안에 주목 받고 사랑 받고 싶어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본 것이다. 또한 제자가 아닌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지 못함을 듣고 예수님이 하는 일에 반대하지 않는 자가 함께 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했던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망시키라고 했지만 그들의 혈기를 누르시는 예수님의 넓은 마음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넓은 마음은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정욕의 마음들을 스스로 보게 해 주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지 않아도 누군가를 통해 그 분의 일을 이루실 때 기뻐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길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훼방해도 혈기와 폭력으로 반응하지 않고 평화와 긍휼로 반응하는 마음이다.
둘째는 사랑의 마음이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엄을 보았고 모든 사람이 기뻐할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다. 악한 영으로 고침 받은 아이는 외아들이었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외아들이셨다. 예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심정을 아셨다. 즉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순전한 마음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실 수 밖에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셨다. 즉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할 때 우리들에게 부어진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차이는 사랑의 차이였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화된다고 마음이 의무적으로 사무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열정은 시간이 흘러도 천국 같은 환경과 은혜 속에 있다 와도 여전히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당신의 사랑은 여전히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