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분노

사도행전 5:33-42
33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쌔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간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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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하다가 두번째 투옥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가 그들을 감옥 밖으로 이끌어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했다. 이튿날 이 사실을 모른채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감옥에서 끌어내오라고 했다. 부하들은 감옥문도 그대로고 지키는 사람들도 그대로되 갇혔던 사람들이 없다고 보고했다. 그 시각 풀려난 사도들은 성전에서 가르치고있었다. 성전 책임자와 제사장들은 이 일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난 것에 개의치 않고 성전에서 사도들을 끌어 오라고 했고 성전 담당자와 부하들은 그들을 잡아왔다. 그리고 유대인의 정치적 공회 앞에 그들을 세웠다. 공회는 사도들에게 왜 예수를 전하는가 심문했다. 그때 그들은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행5:31) 라고 담대히 대답했다.  이때 종교지도자들로 구성된 공회는 사도들을 죽이려 했다.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행:5:33)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가는 것은 왜 종교지도자들이 그토록 사도들에게 분노하고 죽이려 까지 했을까? 이다.

그것에 대해 사도행전 5장 28절이 대답을 주고있다.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고자 함이로다'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셨다고 하심으로 자신들이 죄인이 되는것을 참지못했다. 자신들은 거룩하고 구별되고 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여기는데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예수님을 죽인 그들을 죄인으로 정죄한다.

사람이 분노하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자신이 어떤일을 해야 했는데 그것을 하지 못했을때 스스로에게 분노하고 그 분노는 수치심과 죄의식을 동반한다.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동안  누군가 타인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거나 혹은 우리 자신이 죄책감을 가질때 분노하는 연약한 죄성을 가진 인간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분노는 더 쉽게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주는 겸손한 분노다. 그러나 교만한 분노가 있다.이 둘 중에 하나님께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분노는 두번째 교만한 분노다. 사도들이 종교지도자들에게 한 말을 다시 보자.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행5:31) 하나님은 그들을 정죄하고 파멸시키고 심판하시기 위해 사도들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걸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이었다고 전하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들과 사람들에게 사도들을 보내셨다.

성경에는 첫번째 분노를 가진 사람들이 먼저 천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들은 창녀들, 세리들, 죄인들이라고 만 생각하기 쉽다. 그 당시 사회의 낮은 계층의 천박한 삶을살던 죄인들이니 당연했겠지 라고 치부할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도덕적 명성과 수양을 가진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 백부장, 헤롯왕의 메니저 였던 구사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 로마의 장교 고넬료 같은 사람들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예수님께 나와 죄사함을 받았다.  이들은  자신의 신분이나 가진것에 상관없이 하나님께 나와 자신들의 분노를 인정한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 들은 분노하면서도  그것이 자신들의 위선과 우월감과 교만에 기초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신은 어떤 분노에 머물러 있는가? 겸손한 분노인가? 교만한 분노인가?

당신이 만약 당신의 겸손한 분노를 보았다면 당신에게는 한가지 분명한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맹목적으로 고난 자체를  기뻐하지 않고 고난받는 동기를 기뻐한다

사도들은 다시 매를 맞고 풀려났다. 이 매는 당시 유대법정에서 죄인에게 때렸던 39대의 채찍질 이었다. 그러나 온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채찍을 맞고도 그들은 기뻐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베드로와 사도들이 이런 끔찍한 매를 맞고도 기뻐한 이유는 자신들이 이런 고난을 당할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이 무엇인가 희생을 했다라고 하는데서 오는 자기만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알았다. 그래서 악한 사단이 그것을 싫어해 권세자들을 통해 자신들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거듭난 사람은 무엇이 가치있는 일인가를 본능적으로 안다. 그 내면에서 예수님의영인 성령이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의 문제가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서 가치를 찿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게 된다. 직장 내부의 동료들과 직장밖의 고객들과 관계를 맺고 산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기쁨을 주는 사람도 있고 고통을 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삶을 힘들게 하고 어려움을 주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이때  그리스도인이든 비 그리스도인이든  인내로 그런 사람들을 견디어 낼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어 내는 동기는 완전히 다를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인내의 시간에 로마서의 말씀을 떠올릴수 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이 말씀을 통해 인내는 인격을 만들어 냄을 알수있다. 그 인격이 성숙해 질수록 자신만 생각하며 살던 이기적인 삶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치유하고 소망을 주는 삶으로 사용되어 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인내한다. 자신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이기에 어떤 상황이 되어도 쉽게 태도를 바꾸지 않고 진실하게 행동할수 있다. 그러나 비 그리스도인은 이런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수입을 위해 참을수 있다. 화내면 자신만 손해이니 참을수 있다. 타인에게 넓은 마음의 소유자임으로 인정받고 싶어 참을수 있다. 혹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참을수 있다. 그것은 수입과 연관이 안될때면 언제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할수 있다. 타인이 평가가 자신이 원했던 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태도를 돌변할수 있다. 자신이 자존감이 낮아서 바보처럼 당했다고 생각이 들면 정반대의 모습을 보일수 있다.

다음은 하나님께 겸손히 자신의 분노를 회개하고 매일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삶에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해 가시는지 보자.

종교지도자들인 공회원들이 사도들의 당당한 반응을 보며 그들을 죽이려 했다. 그들은 얼마든지 종교적인 이유로 사도들을 죽일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들중에 가말리엘이라는 공회의원이 침착하게 일어나 사도들을 내보내고 그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사도행전 6장 38-39절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사람으로 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으로 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이 말을 한 가말리엘을 누가는 이렇게 소개한다. 34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행5:34) (행:22:3) 그는 분노에 들끓는 공회의원들을 향해 두 사람의 예를 들며 사도들을 죽이는 것을 만류했다. 하나는 드다로 그는 사람들을 미혹해 요단강을 갈라지게 해 보이겠다던 유대인 마술사 였다. 로마 총독은 군대를 보내어 드다를 참수형시키고 군중을 체포했다. 그리고 주후 6년 갈릴리 유다라는 사람은 세금반란을 주도했다. 그도 후에 도망하고 따르던 사람들도 모두 흩어졌다. 그러나 이 사도들을 죽이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께맡기라고 했다. 하나님께로 부터 온것이면 그것을 막을수 없고 사람에게 온것이면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공회는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따르던 가말리엘의 말을 들었다. 이 일로 사도들은 죽음직전에 극적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성전으로 돌아가 다시 예수는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계속해서 전하고 가르쳤다. 가말리엘은 아직 예수님은 몰랐지만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감옥분이 그대로 있는채로 사도들이 밖으로 나가게 된것을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사도들이 자신들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얼마전에 죽은 한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 살아났다는 것을 전하는 것을 주목했을 것이다. 그리고 셀수없는 무리가 회개하며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변화되는 것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의 내면은 예수님에 의해 흔들리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가말리엘 처럼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무너지지 않는다' 라는 '하나님을 위해 살면 하나님이 쓰시다가 버리지 않으신다' 라는 믿음을 갖기를 원하신다. 또한 급박한 상황에 하나님이 완벽한 타이밍으로 우리에게 사람을 보내신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일수 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를 돕게 하실수 있다. 당신은 이것을 믿는가?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의 생명이 주께 있음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존할수 있도록 계속해서 오늘도 가말리엘을 일으키시는 분이시다. 가말리엘의 뜻은 '하나님이 선하게 보답하신다' 이다. 천사장 가브리엘과 이름이 비슷하다. '하나님의 사람' 가말리엘은 변장한 천사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인내를 연단, 즉 주를 위해 인격으로 성화시키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가말리엘을 보내주신다. 그들의 생존을 보호해 주신다. 겸손히 회개하는 자들에게 가말리엘로 인도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