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순종

사도행전 5:12-32
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21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22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23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24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25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
27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손을 움직여라.

12절을 보자.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사도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의 손을 사용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이 손을 통해 사람들을 축복하며 섬길 때 그들의 손을 통해 표적과 기사를 일어나게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손을 주신 것은 우리의 손을 통해 사람들을 풀어놓고 치유하고 축복해 주는 기적을 행하시기 위함이다. 엘리사가 요아스왕에게 화살을 들어 땅에 쏘게 한 사건이나 여호수아가 그의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복병을 움직이도록 하는 행위가 유치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요아스왕이나 여호수아에게 어린아이처럼 그들의 손을 움직이게 하신 것이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순종했고 요아스왕은 불순종함으로 승리와 패배로 갈라지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손으로 하는 일이 아무리 유치한 일처럼 보여도 성실함과 신중함으로 포기하지 않고 해야 함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그 일이 아무리 작아 보이고 유치하게 보일지라고 성령의 인도를 받기를 갈망하고 묻는 자세로 할 때 생각하지 못한 결과가 일어남을 주목해야 한다.

감동 받는 비 그리스도인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행: 5:13) 에서 그 나머지 분들은 비 그리스도인이지만 사도들과 그리스도인을 칭찬했다. 우리가 유치해 보이는 일에도 성령의 인도를 의지하며 진실과 성실로 우리의 손을 드릴 때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 믿지는 않아도 우리를 칭찬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누구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부담감이 없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보이며 살기에 자유 함이 있다. 그러려면 내면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을 의식하기 전에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즉 하나님을 의식하면 할수록 더욱 자유게 된다.

베드로의 그림자까지도 사용하심

15-16절을 보자.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느니라' 이 말씀에서 마음에 감동을 주는 대목은 사람들이 병든 사람과 귀신들린 사람을 데리고 거리에 나가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닿을 수 있도록 사모한 것이다. 즉 성령의 역사는 한 사람이 자진해서 누군가를 위해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최상의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까지 포함해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것들을 다 바쳐 희생하는 모습이다.

삶의 감옥을 통해서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게 한다.

하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시기심을 이용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완성하신 것과 같이 이번에도 사도들을 감옥에 가둔 것처럼 보여진다. 사도들을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주의 천사가 찾아와 옥문을 열고 데리고 나와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고 하는 새로운 확인을 해주셨다. 그들은 즉시 순종하며 새벽에 사람들에게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쳤다.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나를 쉽게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분께 맡기고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

요즘 당신이 만난 삶의 쇠고랑은 무엇인가?

쇠고랑은 종종 우리 내면에 보이지 않는 우상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 우상이 드러나면 죄를 회개하고 그것과 반대되는 미래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묵상하고 적어보라.

이것이 바로 유치한 순종에서부터 시작된 축복들이다. 하나님께 당신의 작고 유치한 순종을 드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