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처럼
/누가복음 5:27-35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설교 요약>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죄를 사하러 오신 분이심을 가버나움의 중풍병자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위대한 성자 정도로 본다면 생각과 마음으로부터 갈등이 생기면서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는 자들까지 정죄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그분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게 되면 변화가 시작된다. 우리는 세리 레위를 통해서 예수님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예수님의 관심
첫째는 죄인의 회심- 가버나움에 살던 레위는 이미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을 알고 있었지만 삭개오처럼 예수님께로 갈 용기가 없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경멸의 대상으로 여기는 세금을 부당하게 거두는 세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문 27-28절에 보면 예수님이 그를 부를 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 말씀을 보면 베드로, 나병환자. 중풍병자 그리고 레위도 예수님을 만나 모두 죄 사함을 경험했던 죄인들이었다. 또한 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곳이며 자신들이 죄인 됨을 보고 회개하고 죄 사함을 경험하고 거듭나는 곳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한 영혼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는가에 가장 큰 관심이 있다. 이것이 예수님의 관심이다.
둘째는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것- 29절에 보면 레위가 예수님을 위해서 큰 잔치를 연다. 즉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영혼이 기뻐하게 된다. 누가 복음 15장에 양 백 마리가 있는 목자가 한 마리를 잃고 찾았을 때와 열드라크마 중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그리고 탕자가 아버지의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와 여인 그리고 목자는 가장 먼저 잔치를 벌였다. 이것이 하늘의 천사들의 기쁨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며 예수님의 기쁨인 것이다. 레위의 기쁨과 잔치는 그가 만든 기쁨이 아니고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음 맛보는 기쁨인 것이다.
셋째는 죄인의 회심이 죄인들의 나아옴으로 이어지는 것- 29절에 보면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죄인을 부르시고 사랑을 주셨는데 그 한 사람 레위를 통해서 수 많은 죄인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회심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며 예수님의 관심이다. 그러나 이런 기쁨과 영혼이 성령충만할때 그것을 방해하는 세상의 소리가 있다. 이것을 이길 수 있는 것이 무언인지 예수님의 삶의 원리를 통해서 보자.
내면에서 비방의 소리가 들릴 때
첫째는 죄인들을 병자로 보라- 30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방한다. 이 비방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소리지만 우리의 내면에도 이런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죄인들끼리 서로 이해할 것 같지만 그들 사이에도 죄의 등급을 정하고 서로를 무시한다. 이럴 때 우리의 내면에는 네가 뭐가 부족해서 이런 죄인들과 상대하니 라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인들 같은 병자들을 고치시기 원하셨다. 즉 죄인들을 병자로 보고 그들에게 의사가 필요함을 인정하셨다. 그럼 우리들 마음에 불쌍한 마음, 즉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품을 수 있다.
둘째는 혼인 집 손님으로 보라- 33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금식하지 않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식탁에 몰려온 죄인들을 혼인집 손님들로 보았다. 당시에 혼인잔치는 우울과 슬픔이 아닌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에서 어떤 임금의 혼인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종들이 길가로 나가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왔는데 잔치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어두운 곳으로 쫓아내는 기준이 선한 자나 악한 자가 아닌 예복을 입지 않은 자인 것이다. 바로 이 예복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신 사랑과 은혜의 옷인 것이다. 나는 택함을 받았는가의 기준은 단순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의복을 입는 것이다. 이 의복의 의미는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음을 의미한다. 즉 모두가 죄인인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선인과 악인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로 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처럼 사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