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어야 할 고통
/사도행전 23:14-35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9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25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31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3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설교요약>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계획했던 바울의 암살이 바울의 생질을 통해서 알게 되고 바울은 바로 백부장과 천부장을 통해서 총독이 있던 가이사랴로 안전하게 호송된다. 놀라운 것은 바울을 호송하기 위해서 군인 470명이 호위하게 된다. 하나님은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삶을 오늘도 이렇게 지키신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어려움과 방해가 닥쳐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시편 23장 5절에 보면 주님은 특별히 원수가 우리를 삼키려 하고 공격하려 할때 우리에게 기름 부으시는분 이시다. 즉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시며 기름부음을 통해서 원수를 분별하고 싸울 수 있는 힘을 제공하신다. 다시 말해서 기름부음은 나를 노리는 원수를 보고 두려워하는것이 아니라 내 영혼에 성령을 부어주시고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을 보게 한다.
바울이 높은 위치에 있던 백부장을 부를때 그가 즉시 달려온것으로 추측해 보면 그가 처한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을 존중하고 겸손하게 권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을 보여준다. 또한 사도행전 23 장6절에 바울의 암살계획을 알려준 생질은 본인의 목숨을 걸고 바울에게 이 모든 과정들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주를 위해 살때 그때그때마다 충성되고 신실한 사람들을 일으켜 우리를 돕게 하신다. 그때 우리는 바울처럼 그런 사람들의 도움과 충성스러움을 소중하고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로마서 8장 17절에 share란 단어를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가진 좋은것과 귀한것을 나누는것과 또한 힘들고 무거운 짐도 함께 나누는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나눔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다시 쓸 수 있다. 기쁨도 나눌 수 있고 고통도 나눌 수 있다. 공통점은 사랑이있어야만 가능하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의 고통' 을 나누는 자라고 한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서 2천년 전에 고통을 모두 받으시고 끝내셨다. 바울이 이 글을 쓸때는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25년이 지난 시기인데도 바울은 예수님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그분의 자녀가 그 고통을 나누어져야 한다고 한다. 그럼 이미 십자가에서 고통을 끝낸 예수님의 고통은 무엇일까?
천부장에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암살계획을 알린 청년은 '예수님의 고통'을 나눈 사람이다. 그는 지금도 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영광'을 누리고 있을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수님의 고통'을 나눌 사람을 찾고 계신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영광' 을 나누는데 관심이 있다. 칭찬받고 주목받고 대접하는일은 기꺼히 자신도 끼고 싶어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통을 나누는데는 인기가 없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의 고통을 나누는 눈에 띄지 않는 이 시대의 예수같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들의고통이 나누어 져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기꺼이 나누어 주신다. 당신이 나누어 져야할 예수님의 고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