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
/누가복음 4:38-44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40 해 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히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줄 앎이러라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설교요약>
베드로의 변화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을 때 예수님은 그의 가정에 풀리지 않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필요를 채워주셨다. 우리는 베드로가 그물과 배와 고기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른 사실에 주목하지만, 중요한 점은 예수님을 따르는 베드로와 안드레와 어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회당에 들어간 일이다. 베드로가 아무리 예수님을 위해 모든것을 희생하고 따랐다 하더라도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지 않고 예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계속적인 삶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희생은 베드로의 또 다른 자기 자랑과 자기 의가 되었을 것이다. 베드로의 변화는 그가 주를 위해 무엇을 포기했나에 있지 않고 예수님이 어떻게 그의 내면을 진리의 말씀으로 채우고 영혼을 회복시켰나에 기초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면 삶은 점점 걱정과 근심과 고통의 올무에 얽매이게 되어 불행해 진다. 반복해서 주님의 말씀과 은혜를 받는 것에 집중하라. 그러면 주님을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보일것이다. 우리의 삶의 키를 내려놓지 않으면 하늘에서 채워지는 것이 아닌, 땅에서 오는 것으로 채워진다. 주님은 우리 직장, 가정, 인간관계, 애매한 모든 것을 해결해주시는 그런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짊어 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계속적으로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내어 드리기 위한 예수님의 삶의 원리
첫째. 모든 사람들을 사역의 대상으로 보라.
예수님이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나와 왜 갑자기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사람들이 예수께 시몬의 장모의 병을 고쳐달라고 아주 절박하게 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시몬 베드로의 장모님을 위해 애걸한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해가 지고 있는 시각에도 마을로 들어가서 자신의 일처럼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다. 평생 고통받는 사람들이 치유되어 천국을 누리기 원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로 충만해 질때 우리의 것을 희생하고 넓은 가슴으로 사람들을 품고 사랑하며 산다. 그러나 어떤 때는 반대로 누군가에게 유치해 지고 이기적이고 나의 권리를 요구하며 불평하고 미움을 갖으며 다시 나의 자아가 살아난다. 중요한 이유 한가지는 누군가에게는 주는 것 보다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역의 대상으로 대하셨다. 그들로 부터 무엇을 받으려고 하거나 기대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그냥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든 사람을 우월감 없이 사역하는 마음, 일일이 예수님 처럼 나의 손을 얹어 주어야 할 존재로 생각하고 대하면 우리의 내면이 채워짐을 얻게 될 것이다.
둘째. 거룩한 일의 중심에서 어둠의 존재들에게 높임 받고 인정받는 것을 거부하라.
계속해서 하늘의 신령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둠에 의해 인정받고 높임받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던 마귀(단수)의 졸개들(귀신들-복수)이 자신을 알아보고 소리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을때 그것을 꾸짖고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마귀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많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외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높이는 것으로 혼동할수 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하던 마귀는 예수님을 이기지 못하고 얼마 동안 떠났다고 했다. 사람들의 높임 받고 싶어하는 죄악 된 본성은 때로 그것이 어둠이고 악한것을 안다해도 그런 것과 결탁하고 자신의 삶의 일부를 내어준다. 사람들은 지극히 거룩한 영적인 일을 수행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죄악된 본성이 끓어 오를수 있다. 거룩한 사역의 한 중심부에도 사단은 자신을 드러내고 높아지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꾸짖을 때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는 우리의 삶을 통해 더욱 강렬하게 세상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많은 어둠의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한다.
셋째, 사람들이 원하는 때를 쫓지 않으시고 아버지가 원하시는 때를 따라 사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전날 저녁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데려와서 축복을 받게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마음속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예수님을 조종하려는 미성숙이 함께 존재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과만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수많은 군중을 뒤로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복음으로 풀어주고 축복하기 위해 새로운 장소를 향해 떠나셨다.예수님의 결정의 기준은 자신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사셨다. 세상의 대다수는 자신의 유익을 따라 얼마든지 모든것을 결정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 마져도 기회주의적인 삶을 쫓아가곤 한다. 언제든 사랑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때를 묻지 않고 버리고 자신의 명성과 삶에 물리적인 유익을 주는것은 주저하지 않고 덥석 문다. 그러나 이런 삶의 마지막은 큰 고통으로 자신을 스스로 찌르는 결과를 낳는다.
자신이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사는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3가지 점검
1) 좋은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기다린다. 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것이 오지 않는것을 경험하고 크게 실망하고 낙심하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를 따라사는 사람은 다시 일어나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실것을 기대한다. 당신이 그토록 원했는데 분명하게 눈에 볼수있도록 주지 않는것이 있을것이다. 그때 다시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실것을 기대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살고 있는 것이고 당신 믿음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 때에 맞는 것을 주실것을 믿는다.
때에 맞는 것은 주변 것들과 조화를 이룬다. 주변 사람들과 여건에 자연스럽게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인위적인 창조는 주변 것들과 계속 마찰과 분리와 상처와 불쾌함을 남기게 된다. 따라서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과 주변의 정황과 사람들을 계속 무시하지 않고 살피는 삶을 산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때를 구하며 사는 사람이다.
3) 추수할 열매가 있게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때에 맞게 어떤 것을 주실 때에는 어떤 열매가 드러난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연결되고 그분으로 부터 축복을 받는 열매들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갈수록 더 큰 열매들을 추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