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과 사모함

누가복음 4:14-37
14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31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33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설교요약>
그리스도인이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는 첫째, 승리 후에 더 깊은 빛 가운데로 들어가는 “사적인 영광”을 모르기 때문이고 둘째, 승리한 자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공적인 영광”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적인 영광
저자 요한의 청년 때의 믿음을 가장 성숙한 위치에 두고있다. 청년 믿음은 먼저 싸워서 강해진 믿음이다. 전쟁에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실전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 보다 더 강하고 담대하다. 청년 믿음은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내면에 거하고 있다. 늘 죄사함 받는 것에 머물러 있는 어린아이의 믿음에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하는 아비의 믿음으로 나가야 한다. 또한 하나님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는데 정작 영적인 공격이나 분별력은 점점 떨어져 어둠과 유혹에 잘 속는 노쇠해 지는 아비의 믿음에 머물러 있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흉악한 사단을 분별하고 파괴하며 하나님의 임재와 생명이 어둠의 영혼과 세상 가운데 흘러가게 하는 통로가 되는 청년의 영성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아이의 믿음에서 아비의 믿음으로 아비의 믿음에서 청년의 믿음으로 계속 성숙해 가면 더 큰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청년의 믿음을 가지고 사단의 유혹과 공격을 향해 싸워가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내면 안에서 온전해 진다. 온전 하다는 것은 그 사랑이 더 깊어지고 더 예수님 같은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우리 안에서 사단의 유혹을 대적하고 죄와 싸워 이기면 이길수록 하나님의 사랑의 우리 안에서 더욱 커지고 그 사랑은 두려움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모든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영적 싸움을 그치거나 포기하지 청년의 믿음을 가진 자에게  주어진다. 

공적인 영광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오셨고 가장 먼저 회당에 가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회당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시기에 짐승으로 희생 제사를 드릴 수 없어 성경 봉독과 강해 및 기도, 그리고 축도로 예배를 드리는 데에서 유래했다. 저자 누가는 예수님이 들어간 회당을 두 지역, 나사렛  회당 사람들과 가버나움의 회당 사람들을 비교하며 소개한다. 나사렛 회당의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거절하고 무시하는 강퍅한 마음을 가졌고, 예수님을 말씀을 듣고 은혜 받았으나, 그분의 외적인 출신성분 때문에 거절했다. 그리고 심지어 화가 나서 그 동네 산 낭떠러지로 끌고가 밀쳐 죽이려고 했다. 예수님은 나사렛의 갇히고, 눌리고, 보지 못하고 가난한  영혼들을 살려 주시려고 그곳에 가셨는데 단 한사람도 그런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했다. 반면, 가버나움 회당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모했고, 그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였고, 예수님의 존재를 널리 알렸다. 

 골방의 불은 사방으로 퍼진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혼자였지만 그 광야의 불이 가버나움으로 흘러왔다. 우리의 기도와 예배는 화려하지 않고 소수만이 모일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그 모임이 성령에 붙들렸다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런 모임들은 또 다른 영혼들을 살리고 회복시키고 일으킨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 되리라'(눅10:3) 광야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광야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면 외로운 모임, 작은 모임이라 할지라도 그 불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곳으로 퍼져 나간다. 하나님은 오늘도 가버나움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그들에게 놀라운 축복들을 부어 주시고 또 부어 주신다. 그 불은 또 다른 곳으로,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당신은 거절 하는가? 사모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