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떼어 놓은 은혜

로마서 1: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설교요약>
이번 2018년 몽골 선교팀은 총 15명 이었다. 몽골팀 3명 (오랑거, 오농, 만두호이), 몽골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4명 (김선재, 서성원, 구나미, 홍평안), 한국에 있는 MMC 가족 3명 (박재성, 서가영, 박성진) 그리고 뉴욕에서 온 3명 (김정영, 장복근, 서난경), 3개의 나라에 흩어져 있는 총 15명을 따로 떼어 모으셨다. 몽골 울란바토르와 에데르네트(Erdenet)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울란바토르에서 순교하신 한국 목사님이 세운 한 몽골 교회에서 이틀간 찬양 집회를 했다. 몽골의 청년들과 사람들이 모였고 둘째날은 더 많이 모였다. 매 시간마다 성령을 부어 주셨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따로 떼어 놓은 시간과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후 우리는 하나님의 영에 의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 성령이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영혼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다 성령이 하게 하시는 일이다. 울란바토르의 고아원 아이들은 하나님이 우리 팀이 만나게 하시려 따로 떼어 놓은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찬양 모임에 이틀 동안 참석해 맨 앞자리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며 예배했다. 우리팀들은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우리팀원 중에 MIU 교수로 섬기던 형제가 에르데네트로 향하던 밤 기차에서 은혜스런 나눔을 해주었다. 자신은 아버지의 권유로 중 2때부터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 전도여행을 다녔다. 그러나 팀들은 일을 못하면 정죄를 받았고 긴장감이 있었으며 서로 미워하는 일들 자주 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팀은 일을 실수해도 서로 격려하고 사랑했으며, 일 중심이 아닌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섬기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자신이 그리던 그런 공동체였으며, 이들을 통해 내면에 하나님의 풀어주심과 채워주심으로 감사한다고 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 주시기에 우린 예수님처럼 살게 된다.

2. 하나님이 주신 새 옷을 입게 하심으로
바울은 골로새서 1장에서 골로새 교인들이 이미 열매를 맺고 구원을 받았고 믿음의 소문과 영향력을 흘려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계속 새로운 옷을 입으라고 말씀한다. 새 옷을 입는 것은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자신을 계속 renew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새 옷을 입는 것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려는 그리스도인의 본능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본능의 옷을 선물로 주셨다. 그옷을 입고 안입고는 우리의 의지와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이 주신 옷은 항상 새것이다. 이 옷을 입으면 닳지도 쇠하지도 않고 계속 아름답고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성품으로 유지된다.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과 소망과 순결의 성품은 변질되지 않는다. 그러나 죄성은 이러한 아름다운 성품들을 변질 시키고 하나님의 옷을 멀리하게 한다. 옷을 입을지 않을지는 우리의 의지의 결정이 뒤따른다. 오늘 당신이 생각하고 입어야 할 하나님의 성품의 옷은 무엇일까? 선교여행을 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천국을 경험한다.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하는 은혜와 기쁨을 팀원이 나누어 주었지만, 동시에 우린 이 기간 동안 우리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죄성과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되는 모습을보게된다.마지막날 아침 큐티를 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죄와 약함을 솔직히 나누었다. 이런 깨달음은 우릴 더욱 하나님의 성품의 옷을 입도록 인도해 준다. 하나님이 당신을 깨끗케 하려고 잘라내고 있는 성품과 습관, 관계들은 무엇인가? 만약 이런 일들의 우리의 삶에서 일어 나고 있다면 하나님이 우릴 따로 준비 시키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3. 희망이 아닌 믿음으로 살게 하심으로
사람은 자신의 모든 희망이 사라져 갈 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믿음만이 이 불가능한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만약 자신이 그냥 소망한 일들이 쉽게 이루어 지면 소망이 믿음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냥 소망에서 멈추게 된다. 그러나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믿음이 싹트기 시작한다. 소망은 대상이 필요 없다. 하지만 믿음은 반드시 대상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소망에서 믿음으로 넘어온 것이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각자의 소원을 가지고 소망한다. 그러나 하나님과는 전혀 접촉이 없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과 대화하게 하고 그 대화 속에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한다. 또한 그분의 평안과 기쁨과 사랑이 우리의 영혼에 흘러오게 된다. 사람들은 믿음이 강해지길 원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주목하면 믿음은 자동으로 성장한다. 아무리 믿음을 강하게 하려 해도 하나님의 약속이 없으면 약해지고 불가능 해진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나를 통해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 감사하며 하나님을 추적하라. 그분의 약속을 추적하라.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가복음 8:4-18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9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16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설교요약>
네가지 밭의 비유
오늘 본문의 “네가지 밭의 비유” 중 씨가 뿌려진 첫번째 밭은 길가였다. 사람과 동물의 왕래가 많은 길가의 씨앗은 심기기도 전에 밟히거나 먹혀 사라진다. 첫번째 밭인 길가는 생각이 분주해 들은 말씀이 흩어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두번째 밭은 바위다. 바위 위에 얇은 흙에 있던 탓에 씨앗은 순간 싹은 돋았으나 수분이 없어 금새 말라 죽는다. 이 역시 말씀이 전해진 듯 하나 심기지 못하고 생명 또한 없음을 나타낸다. 세번째는 조금 특이하다. 땅에 잘 심겼으나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 햇빛과 양분을 뺏겨 열매를 못맺게 된 밭이다. 말씀이 안에 있으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세상 향락으로 열매 맺지 못한 사람들을 뜻한다. 마지막 밭은 ‘좋은 밭’, 즉 말씀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예수님이 비유하신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 모두에 등장하는 이 비유가 담긴 본문 10절에서 예수님은 또다른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비유는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단순 명료하지만, 숨겨진 진짜 메세지가 있어 누구나 깨닫는 건 아니라고 하신다. 즉, 본문에서처럼 그 뜻을 알고자 하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그 비유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 듯, 비유로 된 주님의 말씀을 진실로 묻는자들에겐 그 뜻이 가리워지지 않으나, 헛투로 듣는 자에겐 영원한 비밀로 남게 된다는 말이다.  

등경의 비유
‘네가지 밭의 비유’ 뒤로 이어지는 ‘등경의 비유’ 에는 또다른 메세지가 담겨 있다. 본문이 거의 흡사한 마태복음 5장의 ‘동경의 비유’와의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남들에게 본이 될 우리의 적극적 착한 행동을 강조한 마태복음과 달리, 있다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빛의 특징이 누가복음에서는 드러난다. 두 비유를 통해 말씀을 듣는 자들의 태도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 그리고 말씀에 대한 태도로 사람을 네 부류로 나누신 것과, ‘빛이 있어서 빛이 나타나는 자와 빛이 없는 자’. 즉, 빛의 특징을 닮은 것으로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신 것을 알 수 있다. 이 비유들에 담긴 메세지들은 결론적으로  가시밭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면, 이 부류의 사람들은 열매는 없지만, 생명은 있다고 생각했는데…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길 것이라 경고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 삶에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자신의 삶도 바꾸지 못하는 진짜 빛이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진정한 빛이 있느냐? 

비유에 담긴 경고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은 모두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네 가지 밭으로 대변되는 네 부류의 사람들 모두가 있을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우리 중에 없길 바라지만, 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생각들로 가득차서 말씀은 밟혀 버리거나 먹혀버리는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또한, 스스로도 속고 있을 수 있어 가장 위험한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도 교회 안에 있다. 본문의 비유에 따르면, 이 분들은 예배 속에서 찬양할 때 누구보다 큰 감격을 경험하고, 말씀을 들을 때 큰 행복, 기쁨으로 받는, 누구보다 ‘좋은 밭’으로 비춰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배당을 떠나 조금만 지나면 그 싹은 말라버리고, 바로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말씀을 듣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큰 갈등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 나온다는 사실 외에 세상 사람들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 왜 그럴까? 그들은 아직 세상에 속해 있고, 그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세번째 부류에 속한 사람들 역시 교회 안에 있다. 제가 생각할 때 좋은 밭에 속한 분들도 일시적인 기간 동안, 이 세번째 밭과 같은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연인이 생기고, 돈이 생기고 뭔가 바라던 좋은 일들이 일어나서 그 유혹들에 마음을 빼앗겨서 말씀이 삶에서 전혀 열매 맺지 못하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이제 믿기 시작한 분들도 믿음과 삶의 불일치를 한동안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수년 동안, 수개월 동안 그 상태가 지속되면, 과연 그 안에 빛이 있을까? 생명이 있는가? 의심해 봐야 한다. 참 빛은 결코 가려지지 않고, 결국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세가지 밭에 속한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들이 아니다. 다른사람은 물론 우리 스스로를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다. 이 세가지 밭에 속한 사람은 인정하든, 인정 하지 않든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경고 속에 담긴 구원
그러나, 경고는 언제나 구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처럼 오늘 이 네가지 밭의 비유는 주님께서 교회에게 너희가 어디 있는지, 너희의 상태가 어떤지 깨달아라!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해 있는지 영적인 눈을 뜨고 진리를 보아라! 그리고 돌이켜 좋은 밭이 되거라! 그러면 너희에게 안전을.. 그리고 백배의 열매의 선물들까지 줄 것이다라는 메세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이것은 복음이고, 간곡히 “돌아오라!”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외침이다. 네번째 밭의 비유처럼 좋은 밭이 된다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바보 같이 듣는 여러분들을 통해 결국 세상도 감동을 받고, 우리가 뿜어내는 진정한 빛,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죄를 이기게 하는 사랑

예레미야 2:1-13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찌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3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4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7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 
9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0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같은 일의 유무를 자세히 살펴보라 
11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12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찌어다 심히 떨찌어다 두려워할찌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설교요약>
예레미아 2:13 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음을 볼 수 있다.
첫째, 생수의 가치를 버렸다.
이스라엘 백성은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렸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사랑해야 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주고, 보살펴야하는 영혼에게 평가를 내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 주고 있지는 않는지, 또한 내가 예배하고 섬겨야 할 곳에서 하나님의 부재를 원망하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멀리하고 헛된 것을 쫓아 우상에게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가치를 세상의 가치과 비교했다.
하나님을 섬기며 우상을 함께 섬긴다면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하며 세상의 방식을 따르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어떤 가치와도 비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신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려고 고민할 때, 우리 때문에 우리의 직장과 삶에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무감각하게 살았다.
우리가 당장 우리 눈 앞의 웅덩이에 집중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며 살아가다보면 생수이신 하나님이 필요 없어진다. 하나님을 찾는 감각이 무뎌진다. 하나님 말씀 없이 사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 없이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을 의지하게 되고, 세상의 가치만으로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하나님은,
1.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7절에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다’ 말씀처럼 이스라엘을 위해 특별히 공급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날마다 새로운 말씀으로 적셔 주신다
2.  변함 없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 2절 '청년의 때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변함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고,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셨다. 다윗과 엘리야 또한 광야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를 경험하는 특권을 누렸다. 우리 또한 광야와 같은 시간이,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신앙 최고조의 시간이다.

3. 하나님은 온전한 사랑을 주셨다 – 3절에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라고 하셨다. 유다 백성을 첫 열매로 전세계에 선포하시며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첫 열매로 여기셨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다. 이스라엘을 공격을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으로 여기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된 우리는 거룩하게 살도록 해야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림과 동시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거룩하게 구별된 가치를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허망한 것들을 찾게 되는 것이다.

예레미야를 통해 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너와 함께한 신혼의 시간을 여전히 기억한다고 말하신다. 웅덩이를 판 우리가 회개하고 그분께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 할 수 있는 기회이다. 우리가 잊어버린 소중한 첫사랑을 다시 고백하며 하나님보다 더 가치를 두고 살았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오직 그분 앞에 사랑을 고백할 때 우리의 죄악이 떠나갈 것이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다.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세상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첫 열매다. 우리 죄를 숨기고 죄를 만해 하려고 또 다른 웅덩이를 파고 있는 우리에게 회개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신다. 하나님을 향한 봉사와 헌신이 웅덩이가 되지 않게 하자.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시는 그분께 돌아가자. 광야에서 배운 그 첫사랑을, 아무도 알 수 없는 신혼의 사랑을 들고 주님께 나아가자

하나님의 기쁨

시편 147:11
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설교요약>
'주님은 오직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과 당신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을 좋아하신다'(시편 147:11) 하나님은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고 소망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뻐하신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이 변하지 않으시기에,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분은 자신을 바라는 자들을 책임질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
'주님이 이 땅에 명령만 내리시면 그 말씀이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양털 같은 눈을 내리시며 재를 뿌리듯 서리도 내리시며, 빵 부스러기 같이 우박을 쏟으시는데 누가 감히 그 추위 앞에 버티어 설수 있겠느냐? 그러나 주님은 말씀을 보내셔서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시니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어 흐른다'(시편 147:15-18) 보면 하나님의 말씀엔 능력이 있다. 즉 말씀이 온 창조물과 사람의 마음을 얼어 붙게도 하시고 녹이기도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누군가에 게는 더욱 마음을 강퍅하게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물처럼 녹게 해서 죽어가는 영혼에게 생명이 되게 할 수도 있다. 야고보서 1장 6절에 보면 당신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야고보의 의심과 파도의 비유를 통해 묵상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할 때 쓰러질 수 있다. 즉 의심하지 않고 구하고 믿는 기도는 하나님을 누리고 풀어지고 자유를 주고 기쁨을 주고 축복을 가져다 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대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서 광야에서 방황할 때 만난 나발은 악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도움과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악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페르시아의 왕비였던 에스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에 만족하지 않고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까지 나아갔고 그 결과로 고난에 빠진 유대인들을 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고 기다리는 자를 기뻐하신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겸비함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려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찢어진 날개

시편 143:8
8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설교요약>
'내가 주님을 의지하니 아침마다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말씀을 듣게 해 주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께 의지하니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십시오' (시: 143:8) 다윗이 매일 아침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씀을 자신의 마음에 되새겨 달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이 우릴 사랑 하는 것 을 어떻게 보여 주시는가?

날게 하시는 하나님
'날아가거나' 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것은 자유를 의미한다. 하늘에 나는 새도 하나님 의 뜻이 아니면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하늘을 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일임을 알게 해준다. 레위기 1:17에 보면 하나님은 짐승을 불살라 드리는 번제 중에 비둘기를 드릴 때 날개를 찢되 아주 몸에서 분리시키지 못하게 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찢으지고 다시 그분의 사랑으로 꿰매셔서 날개를 펴서 넓은 창공을 날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의 삶에 꿈꾸었던 일들이 찢어질 때 다시 꿰매어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 날개를 펴서 날게 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해야 한다.

찢어진 날개를 다시 꿰매시는 방법
누가복음 2장 34-35절에 예수님에 대한 예언의 말씀 중에는 예수님께서 하시게 될 3가지 사역의 특징이 들어있다. 3가지 사역을 통해 그분의 자녀들의 찢어진 날개를 꿰매어 다시 날개 하시는 놀라운 능력이 들어있다.

첫째. 많은 사람을 파괴 시키고 일어서게도 하시는 사역이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아버지의 소유가 그리워서 였다.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서 죄를 회개하려고 한것은 그분의 소유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배고픈 처지때문임을 알게 해준다. 그렇기에 그가 집에 돌아와서 잘못을 뉘우치고 겸손하게 아버지에게 굴복한다해도 내면의 거짓의 벽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아들의 내면의 거짓된 벽을 허물었다. 우리는 우리의 이기적이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주님을 따르는 것을 알 면서도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도와주시고 다시 죄의 냄새로 쩔은 나를 안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야 한다. 이때 찢어진 날개는 다시 창공을 향해 펼쳐지며 그분이 인도하신 길로 날아갈 것이다.

둘째. 많은 사람의 비방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비방과 대적들도 많았다. 예수님은 우리의 찢어진 날개를 다시 꿰매 다시 날게 하기 위해 주님을 위해 '비방 받는' 경험을 하게 하신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이유가 예수님의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때마다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미움 받음을 생각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미움을 받거나 혹은 그와 유사한 미움을 받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미움 속에서 넓고 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숙하게 된다. 이때가 찢어진 날개가 꿰매어 지는 시간이다.

셋째. 마리아의 심장(마음) 이 예수님 때문에 슬픔의 칼에 찔릴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면 사람들의 내면 안에 있는 칼을 만난다. 슬픔의 칼, 분노의 칼, 미움의 칼, 시기의 칼, 증오의 칼, 정욕과 탐욕의 칼, 교만의 칼...... 우리는 예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사역 을 할 때 많은 칼에 찔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와 열매의 기쁨에 비교하면 그것은 모래 사장에 가끔 밟히는 조개 껍질 정도 밖에 안 된다. 이 조개 껍질 때문에 해변의 모래사장을 걷고 누리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칼에 한번씩 찔릴 때 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날개를 더욱 크게 확장 시키신다. 더 높이 더 넓게 날게 하신다. 더 많은 열방의 영혼들을 품고 치유하고 사랑하게 하신다.

예수님의 두 팔은 비둘기 날개처럼 찢어져 십자가에 달렸다. 그러나 그 두 날개 안에서 많은 열방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옥의 삶이 천국이 되고 있다. 누구도 치료할 수 없는 상처가 치유되고 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용서받고 있다. 하나님은 이 세가지 예수님의 사역의 특성을 기꺼이 행할 사람을 찾고 있다. 그들의 찢어질 날개를 이 세가지 일을 통해 다시 꿰매 날게 하시고 싶어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