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어야 할 고통

사도행전 23:14-35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9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25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31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3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설교요약>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계획했던 바울의 암살이 바울의 생질을 통해서 알게 되고 바울은 바로 백부장과 천부장을 통해서 총독이 있던 가이사랴로 안전하게 호송된다. 놀라운 것은 바울을 호송하기 위해서 군인 470명이 호위하게 된다. 하나님은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삶을 오늘도 이렇게 지키신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어려움과 방해가 닥쳐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시편 23장 5절에 보면 주님은 특별히 원수가 우리를 삼키려 하고 공격하려 할때 우리에게 기름 부으시는분 이시다. 즉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시며 기름부음을 통해서 원수를 분별하고 싸울 수 있는 힘을 제공하신다. 다시 말해서 기름부음은 나를 노리는 원수를 보고 두려워하는것이 아니라 내 영혼에 성령을 부어주시고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을 보게 한다.

바울이 높은 위치에 있던 백부장을 부를때 그가 즉시 달려온것으로 추측해 보면 그가 처한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을 존중하고 겸손하게 권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을 보여준다. 또한 사도행전 23 장6절에 바울의 암살계획을 알려준 생질은 본인의 목숨을 걸고 바울에게 이 모든 과정들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주를 위해 살때 그때그때마다 충성되고 신실한 사람들을 일으켜 우리를 돕게 하신다. 그때 우리는 바울처럼 그런 사람들의 도움과 충성스러움을 소중하고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로마서 8장 17절에 share란 단어를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가진 좋은것과 귀한것을 나누는것과 또한 힘들고 무거운 짐도 함께 나누는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나눔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다시 쓸 수 있다. 기쁨도 나눌 수 있고 고통도 나눌 수 있다. 공통점은 사랑이있어야만 가능하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의 고통' 을 나누는 자라고 한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서 2천년 전에 고통을 모두 받으시고 끝내셨다. 바울이 이 글을 쓸때는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25년이 지난 시기인데도 바울은 예수님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그분의 자녀가 그 고통을 나누어져야 한다고 한다. 그럼 이미 십자가에서 고통을 끝낸 예수님의 고통은 무엇일까?

천부장에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암살계획을 알린 청년은 '예수님의 고통'을 나눈 사람이다. 그는 지금도 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영광'을 누리고 있을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수님의 고통'을 나눌 사람을 찾고 계신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영광' 을 나누는데 관심이 있다. 칭찬받고 주목받고 대접하는일은 기꺼히 자신도 끼고 싶어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통을 나누는데는 인기가 없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의 고통을 나누는 눈에 띄지 않는 이 시대의 예수같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들의고통이 나누어 져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기꺼이 나누어 주신다. 당신이 나누어 져야할 예수님의 고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을 채우는 사람들

시편 1:1-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설교요약>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우리는 현재 상황들이 복인지 화인지 구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들이 미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예로 요셉이 형제들의 시기와 미움으로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로 되지만 그는 후에 이집트에 총리가 되는 대 반전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복으로 여겨지는 일들이 화가 되고, 화로 여겨지는 일들이 복이 된다면 과연 무엇이 진정한 복 일 수 있을까? 

진정한 복은 시간과 상황에 상관 없이 항상 이루어 지는 복이다. 즉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과 영생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진정한 복은 예수님 이시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즉 선으로 이뤄진 다라고 믿는 것이 바로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다 복이 있는 자들인데 왜 그 복을 누리지 못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삶들이 아름다운 결론 임을 담대히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좋은 감정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결코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죄성을 나타내는 악한 감정들을 거부하기 위해서 좋은 감정까지 없애 버리는 속임에 빠지면 안된다.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은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한 감정의 회복 없이는 복된 삶을 누리지 못한다. 

1절에 보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시냇가에 나무처럼 살지 못하는 이유는 악인들의 삶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먼저, 오만한 자들은 바로 교만한 사람을 의미한다. 겉으로 겸손해 보이고 말투가 겸손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들에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는 자가 교만한 사람이다. 그리고 죄인들의 길에 서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 두가지 속성은 쉽게 분별할 수 있지만 악인의 꾀를 따르는 사람은 구별하기 힘들다. 꾀를 부리는 것이 세상적으로 볼 때 지혜로운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꾀를 부리는 영역이 많아질수록 본인의 유익과 기쁨이지 하나님의 빛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3장 20절에 보면 악인들은 그의 행위가 드러날 까봐 빛을 미워한다고 한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었지만 율법에서 벗어나지 않은 부분에서 꾀를 부리며 이윤들을 챙겼던 위선자들이었다. 혹시 우리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악인의 꾀를 따르는 삶이 아닌 것인지 확인 볼 필요가 있다. 

2절에 보면 ‘묵상하다” 라는 단어에는 선포하다, 주장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한 단어에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는데 묵상은 혼자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선포는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소리 내는 것이다. 또한 ‘주야로” 는 하루 종일을 의미하는데 하루 종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면을 채우고 그것이 내 말과 행동으로 삶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이 바로 복이 있는 사람이다. 

복이 있는 사람은 단지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나무 잎이 마르지 않고 늘 푸른 사람이다. 또한 복을 꽃 피우고 그 향기를 뿜어내고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이 시대에 예수님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령의 생각

 

사도행전 22:24-23:13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대 
25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29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30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
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3 바울이 가로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5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6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9 크게 훤화가 일어날쌔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 여명이더라

 

<설교 요약>

• 고난의 한 복판에서 다른 계획을 말씀하시는 하나님
바울은 유대인의 공회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하고 다시 감금되었다. 그날 밤에 하나님이 바울에게 너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들을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리라는 말씀을 하신다. 이 말씀 안에 하나님의 성품들이 나온다. 첫째는 하나님은 그분을 거부하고 받아 드리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종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둘째는 하나님은 바울의 미래를 계획해 놓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을 결정하는 상황이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우리들의 삶을 보면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의 연속 임을 알 수 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첫째는 하나님이 당신의 미래를 준비하심을 믿어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의 사명에 순종하면 의, 식, 주 를 해결해 주심을 믿어야 한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한가지 분명한 증거가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 결과를 주께 맡기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사랑으로 한다
바울은 공회에서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지만 그 결과 누군가 믿었다는 사람은 없고 반대로 본인을 죽이겠다고 하는 40명의 무리와 그 당시 부활과 천사를 믿지 못한 사두개인들과 그것을 믿었던 바리새인과의 분쟁만 보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울에게 너가 오늘 했던 증언을 로마에서도 할거라는 말씀만 하셨다. 바울은 단지 한 사람의 영혼을 사랑했기에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한 것이다. 또한 주님은 결과를 주께 맡기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사용 하신다. 당신은 성실하게 주님이 주신 사명에 순종하는가? 우리는 요셉과 게하시의 이야기를 통해서 주위 상황도 중요하게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지만 우리 각자의 마음이 더욱 중요한 것을 증명해 준다. 두가지 마음의 싸움이 치열하게 우리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죄의 생각들이다.

• 두 마음의 싸움
바울은 자신의 내면에서 두가지 싸움을 발견했다. 선을 행하려는 마음과 자신이 원치 않는 악을 행하려는 마음이다. 로마서 7장 18-19절에 보면 마음의 법, 즉 하나님이 주신 계명인데 죄는 사랑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먼저 “생각” 부터 공격한다. 이 죄의 법이 나의 몸을 결박하여 죄수로 만들기 원한다. 그럼 이런 두 마음의 싸움에서 어떻게 이길수 있는가? 바울은 이 두 마음의 싸움 속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 이기는 열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법을 섬길 수 있는 마음도 주신다. 따라서 영적 전쟁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마서 7장 25절에 보면 예수님을 믿고 자유케 되었어도 다시 죄의 법의 공격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믿은 후에는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법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분의 선한 일 을 하고자 하는 갈망을 없애려는 공격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 싸움에 이길수 있는 방법을 로마서 8장에서 가르쳐 주고 있다.

• 성령을 따라 살아라
로마서 8장 1-2절에 보면 성령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고 말씀한다. 즉 성령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은 사단의 정죄로 부터 자유하다. 하지만 사단은 그리스도인의 내면에 계속해서 정죄감을 심어 주고 결국에 죄에 넘어지게 한다. 하지만 성령충만함으로 이런 음성을 듣게 되면 “너는 존귀하다. 너는 이미 죄의용서함을받았다” 라는 음성으로 듣게된다. 여기서 누군가는 죄를 짖고 정죄감이 없으면 어떻게 회개하겠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 성경말씀 밖에 없다
육신의 생각은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하지만 이길수 있는 것은 성령의 생각 뿐이다. 성령의 생각을 위해서는 불을 붙이는 기름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성경 말씀이다. 
시편 103장 4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과 권세는 사랑과 긍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내면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상급이고 하나님이 주신 권세이다. 이러한 말씀의 기름을 통해 부어진 생각들은 더욱 성령께 붙들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줄 것이고 그 결과는 더 풍성한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해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사도행전 21:37-22:23
37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2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22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설교요약>

하나님은 그분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생명을 철저히 그 분의 임재로 감싸고 있으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고나 병이나 어떤 일로인해 일찍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이때 그들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지 않으신 것인가? 라고 질문할수 있다. 그래서 '그분의 임재로' 감싸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요점은 육체적인 생명이 살았는가? 죽었는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고 있는가? 혹은 그 임재안에서 죽어갔는가? 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죽든 살든, 고난을 격든 형통의 일을 경험하든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그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고난의 마지막 목적지는 소망이다. 이 소망은 하나님이 마 음에 주시는 어떤 희망이고 꿈이다. 환란에서 이 희망까지 오는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 그래서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감싸시고 있는 사랑의 임재를 경험한다. 그럼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인지를 어떻게 알수 있는가?

바울이 예수님을 전하려 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 23년동안 세월이 그가 예수님을 모르던 세월 과 너무나도 다른것을 직접체험 했기 때문이다. 예수 이름을 전해 주었을때 그 이름의 권세가 귀신들린  종을 자유케 했음을 보았다. 빌립보 감옥의 자신들을 때리던 간수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어떻게 기뻐하고 자유했는지를 보았다. 루디아가 어떻게 헌신하게 되었고 루스드라의 나면서 걷지 못한 사람이 걷게 된 것을 보았고 어떻게 고린도와 에베소의 죄인들이 회개하고 그곳에 천국이 임했는지를 보았다.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사람은 바울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기쁨과 평안의 폭포같은 은혜로 인해 감옥속에서도 천국을 살았다. 이 안에 '기쁨, 관용(gentleness), 평안, 기도, 감사' 가 모두 들어있다. 특히 그가 누린 '평안' 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은 NIV 에서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평안' 이라고 번역했다.

우리는 사고와 이해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사물과 상황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생각지 못한 시각과 이해로 불안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안이 임하면 무엇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의 변화가 있다. 많은 경우 이 관점 때문에 미움, 거절, 관계끊음, 불안, 걱정 등의 감정이 증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가 기도할때 이런 관점들을 부수고 교정하고 분별케 해준다. 우리의 둔하고 어리석은 죄된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 기쁨, 소망 잠잠히 기다림, 낮은 마음등으로 채우신다. 이런 평안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기도와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필요와 감정들을 기도로 맡기며 아뢸때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좁은 이해와 생각을 초월하는 능력을 부어주신다. 잘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나의 갖혀있고 왜곡된 생 각들을 알게 해줌으로 넓은 시야 하나님의 초월적인 관점으로 인도하신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평안이다.

자신이 죽어도 천국에 갈수있다고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을 굳게 믿는 사람들은 이땅에서도 그 예수님을 굳게 믿기에 어떤 고통속에서도 천국을 누리고 경험하며 산다. 그러나 다음 세상에서의 천국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땅에서도 확신이 없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분이 나를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열쇠가 된다는 확신이 없기에 이땅에서도 내 삶의 모든 문제의 열쇠가 된다고 믿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 가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조그마한 미묘한 우리 내면의 불안과 근심에도 세심하게 신경쓰시고 안심 시키시고 평안을 주신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모든것이 되어 야 한다고 그의 간증속에서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환란의 목적지가 하나님의 소망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수있다. 첫째는 이미 이루어진 소망. 둘째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소망. 예수님 만나기 전의 우리가 가졌던 소망과 예수님을 만난후에 가졌던 소망을 비교해 보라.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날것이다. 세번째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형 소망이 있다. 미래의 소망에 대해 자신이 없어질때가 있을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소망에는 모두 사랑이 필수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씀은 이미 그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다고 한다. 예수님 안에 이 모든 축복들이 있다. 이해를 뛰어넘는 평안이 있 다.고난이하늘의소망이된다.그하나님이 주신 소망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묵고있던 지옥의 권세가 풀어지고 자유케 되며 이땅에서 천국의 평안을 누리며 살게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며 사는 사람들은 그 임재를 담고있는 예수님을 주고 싶어한다.

그럼 어떻게 이 천국을 담고있는 임재가 더욱 우리삶에 깊어질까? 사랑을 사용할때 그분의 임재가 더욱 깊어진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주셨기 때문입니다'(롬:5:5/새번역) 이 말씀에 의하면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랑이 없다고 두려워한다. 중요한것은 그 사랑을 사용하는것 이다. 그 사랑을 사용하면 할수록 그 사랑은 성령을 통해 계속 우리의 마음에 부어진다.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길 원하는가? 그럼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행동으로 나누어 주라. 그 사랑을 다 나눠주어 기진맥진해 갈때 성령은 다시 그 사랑을 우리의 영혼속에 더 크게 부어 주실것이다. 

따로 떼어 놓은 은혜

로마서 1: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설교요약>
이번 2018년 몽골 선교팀은 총 15명 이었다. 몽골팀 3명 (오랑거, 오농, 만두호이), 몽골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4명 (김선재, 서성원, 구나미, 홍평안), 한국에 있는 MMC 가족 3명 (박재성, 서가영, 박성진) 그리고 뉴욕에서 온 3명 (김정영, 장복근, 서난경), 3개의 나라에 흩어져 있는 총 15명을 따로 떼어 모으셨다. 몽골 울란바토르와 에데르네트(Erdenet)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울란바토르에서 순교하신 한국 목사님이 세운 한 몽골 교회에서 이틀간 찬양 집회를 했다. 몽골의 청년들과 사람들이 모였고 둘째날은 더 많이 모였다. 매 시간마다 성령을 부어 주셨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따로 떼어 놓은 시간과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후 우리는 하나님의 영에 의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 성령이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영혼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다 성령이 하게 하시는 일이다. 울란바토르의 고아원 아이들은 하나님이 우리 팀이 만나게 하시려 따로 떼어 놓은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찬양 모임에 이틀 동안 참석해 맨 앞자리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며 예배했다. 우리팀들은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우리팀원 중에 MIU 교수로 섬기던 형제가 에르데네트로 향하던 밤 기차에서 은혜스런 나눔을 해주었다. 자신은 아버지의 권유로 중 2때부터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 전도여행을 다녔다. 그러나 팀들은 일을 못하면 정죄를 받았고 긴장감이 있었으며 서로 미워하는 일들 자주 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팀은 일을 실수해도 서로 격려하고 사랑했으며, 일 중심이 아닌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섬기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자신이 그리던 그런 공동체였으며, 이들을 통해 내면에 하나님의 풀어주심과 채워주심으로 감사한다고 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 주시기에 우린 예수님처럼 살게 된다.

2. 하나님이 주신 새 옷을 입게 하심으로
바울은 골로새서 1장에서 골로새 교인들이 이미 열매를 맺고 구원을 받았고 믿음의 소문과 영향력을 흘려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계속 새로운 옷을 입으라고 말씀한다. 새 옷을 입는 것은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자신을 계속 renew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새 옷을 입는 것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려는 그리스도인의 본능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본능의 옷을 선물로 주셨다. 그옷을 입고 안입고는 우리의 의지와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이 주신 옷은 항상 새것이다. 이 옷을 입으면 닳지도 쇠하지도 않고 계속 아름답고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성품으로 유지된다.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과 소망과 순결의 성품은 변질되지 않는다. 그러나 죄성은 이러한 아름다운 성품들을 변질 시키고 하나님의 옷을 멀리하게 한다. 옷을 입을지 않을지는 우리의 의지의 결정이 뒤따른다. 오늘 당신이 생각하고 입어야 할 하나님의 성품의 옷은 무엇일까? 선교여행을 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천국을 경험한다.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하는 은혜와 기쁨을 팀원이 나누어 주었지만, 동시에 우린 이 기간 동안 우리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죄성과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되는 모습을보게된다.마지막날 아침 큐티를 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죄와 약함을 솔직히 나누었다. 이런 깨달음은 우릴 더욱 하나님의 성품의 옷을 입도록 인도해 준다. 하나님이 당신을 깨끗케 하려고 잘라내고 있는 성품과 습관, 관계들은 무엇인가? 만약 이런 일들의 우리의 삶에서 일어 나고 있다면 하나님이 우릴 따로 준비 시키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3. 희망이 아닌 믿음으로 살게 하심으로
사람은 자신의 모든 희망이 사라져 갈 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믿음만이 이 불가능한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만약 자신이 그냥 소망한 일들이 쉽게 이루어 지면 소망이 믿음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냥 소망에서 멈추게 된다. 그러나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믿음이 싹트기 시작한다. 소망은 대상이 필요 없다. 하지만 믿음은 반드시 대상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소망에서 믿음으로 넘어온 것이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각자의 소원을 가지고 소망한다. 그러나 하나님과는 전혀 접촉이 없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과 대화하게 하고 그 대화 속에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한다. 또한 그분의 평안과 기쁨과 사랑이 우리의 영혼에 흘러오게 된다. 사람들은 믿음이 강해지길 원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주목하면 믿음은 자동으로 성장한다. 아무리 믿음을 강하게 하려 해도 하나님의 약속이 없으면 약해지고 불가능 해진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나를 통해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 감사하며 하나님을 추적하라. 그분의 약속을 추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