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거들과 목적

누가복음 24:1-12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 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설교요약>
예수님 부활의 네 가지 증거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였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24시간 안에 장사를 지냈으며 주로 여자들이 시신에 향유 바르는 일을 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금요일에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지 못하고 안치했고, 다음날은 안식일이어서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에 여인들은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 예수님 부활 사건에 대한 이런 성경의 구체적 기록은 그 당시 유대 문화 및 장례 풍습들과 일치하며,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한다.

두 번째 증거는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무덤 문이 굴려져 나간 것을 보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냥 ‘무덤 문을 열었다’ 가 아니라 ‘굴려져 열려 있었다’라는 증언 또한 그 당시 무덤 형태와 일치하며 역사성을 지닌다. 예수님 현존 당시 유대인들의 무덤은 바위를 파서 입구를 무거운 돌로 막고 시멘트로 바르는 풍습이 있었고, 성경은 이 장례 풍습과 일치하는 구체적 기록을 남겨 놓았다. 마가는 이 여인들이 인봉되어 있는 무거운 무덤 문을 누가 열어줄까 걱정하며 무덤을 찾아왔다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덤문은 굴려져 열려 있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일할 때 때로 무덤 문처럼 막혀 있을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그 막힌 문들을 열어주시는 분이다.
부활이 실제였다는 세번째 증거는 무덤을 찾은 여인들 앞에 나타난 천사의 모습과 성품에 있다. 흰옷 입은 두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너무 눈부셔서 여인들은 얼굴을 숙였다고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성경의 다른 구절에 나타난 천사의 모습들과 일치한다. 눈부신 광채를 내는 천사들은 자신들의 모습에 집중하지 않게 하고 갈릴리 에서 부활을 예언하셨던 생전의 예수님의 말씀을 여인들에게 생각나게 했다.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목시킨 천사들의 겸손한 성품은 성경 곳곳에 기록된 천사들의 성품과도 일치한다. 이 시대의 천사는 자신이 아닌 예수님을 주목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당신은 누구를 주목시키며 살고 있는가?
네번째 증거는 예수님 부활 사건에 대한 가감 없는 구체적 기록에 있다. 여인들은 무덤에서 돌아와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인 사람들에게 이 모든 일을 알렸다.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를 뺀 남은 제자들의 수, 실존 인물임을 나타내는 여인들의 이름 에 대한 구체적 언급, 그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까지 찾게 된 이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과 베드로의 반응 등 꾸미거나 가공한 흔적 없이 기록된 점들이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 일어난 사건임을 입증한다. 여기에 예수님과 사도들이 현존 했던 동시대 가장 저명한 유대 정치가이자 역사가였으며, 예루살렘 태생의 비기독교인인 흘라비우스 죠세프스의 책 유대 고대사(Antiquities)에도 선하고 지혜롭고 뛰어난 학식을 지녔다고 소개된 예수님의 현존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 및 그리스도인들의 부흥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이 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왜 중요한가? 부활은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실제했던 분임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네 가지 변화
첫째, 영혼을 뜨겁게 한다. 여자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사도 외에 두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30리 떨어진 엠마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들 앞에 나타난 예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던 두 제자에게 성경 전체가 자신에 대해 증언함을 풀어 해석해 주셨다. 예수님이 사라지고 났을 때 그들은 예수님 생전에 말씀을 들을 때처럼 마음이 다시 뜨거워졌음을 서로 나누면서 그 분이 예수님이신걸 알아챘다. 둘째, 엠마오 제자들은 그 길로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열 한 제자와 모인 무리에게 그 일을 알렸다. 부활을 믿으면 그 소식을 나누며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한다. 세째, 엠마오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빵을 떼어주실 때 자신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증거했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슬픈 일이나 답답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잘 보지 못할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를 보게 하신다. 마지막 변화는 꿈같은 현실을 종종 선물로 받는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너무 기뻐 놀라워하고 있었다. 당신은 너무 기뻐 믿을 수 없는 꿈같은 현실을 계속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가? 그렇다면 부활을 믿는 사람이다. 부활은 꿈같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부활을 보여 주신 목적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라 하였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너희는 이 일에 증인이다’(눅 24:47-48) 복음서에 나약한 제자들과 달리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하며 순교했다. 예수님 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했기에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믿으면 우리의 가장 큰 두려움의 뿌리인 죽음이 두렵지 않고 내게 주신 오늘의 하루 하루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은 실존하셨고, 부활로 우리의 생애를 천국으로 주셨고, 부활의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길 원하신다.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을 고민하고 있다면 당신은 부활을 믿는 사람이다.

영혼의 시신경

사도행전 28:1-10
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7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8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9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10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설교요약>

예비된 섬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그레데 섬 미항에서 항해가 위험할 것이라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리한 항해를 했고 결국 배는 표류했지만, 기적같이 멜리데 섬에 도착했고 원주민들은 특별한 동정으로 이들을 대접했다. 우리는 살면서 무리하게 우리의 욕심으로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다. 그리하여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셔도 아무런 말도 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찾는 원초적인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롬:1:19). '창세로 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1:19-20) 하지만 하나님을 알아볼수있는 마음이 죄로 인해 어두워 지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주시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1:21) 하나님은 전도를 미련한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보면서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렇기에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밝은 곳으로 가면 일시에 동공을 통해서 필요한 양을 초과하는 빛이 눈의 망막으로 쏟아져 들어온다고 한다. 이때 필요 이상의 빛을 시신경이 처리할수 없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시신경이 마비 된다고 한다. 이처럼 어두움 가운데 오랜시간 살다보면 마음이 어둠에 익숙해 져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 주어도 그것을 받아 들이지 못한다. 시신경이 마비된것 처럼 영혼이 마비되어 죽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영혼의 신경을 살려 다시 하나님의 빛을 받아드릴 수 있게 하는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죽었던 영혼의 시신경이 살아난다. 당신은 삶에서 하나님을 보고 있는가? 하나님을 느끼고 있는가? 당신의 영혼의 시신경은 깨어났는가?

살아난 영혼들의 특징 두 가지
첫째, 빛을 잘 흡수한다.
우리가 살면서 잘못된 선택을 해서 어려움을 겪을때 빛을 흡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대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회개한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이 그런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섬으로 인도하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본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을 잘 따라가기 위해 계속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계속 기도해야 한다.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집중해서 따라가야 한다.하나님이 인도하신 섬에는 사람들의 도움과 긍휼이 있었다. 또 전혀 뜻하지 않을 일이 일어났을지라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로 보호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 사도행전 28장 4-5절을 보자.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둘째, 어려움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민감하다.
다음에 주목해야 할 것은 바울이 뱀에 물린 이 아무 의미없는 우연같은 일을 통해 하나님이 그 멜리데 섬에서 놀라운 일을 일으키신 것이다. 바울이 뱀에 물리는 일로 인하여 섬의 추장같은 보블리오라는 사람이 그를 자신집에 초대했고 바울은 그의 열병과 이질에 걸린 부친을 위해 믿음으로 기도해 주었고 기도를 통해 나았다. 미신적인 풍습이 가득했던 그 섬 전체에 예수님의 복음이 빠르게 전해졌다. 마비된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도한 섬인데 왜 다시 이렇게 독에 감염되고 물리고 덫에 걸리는 일이 일어났는가? 라며 절망과 낙담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 우연 같은 의미 없는 일을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이런 두 가지 특징이 있다면 당신 영혼의 시신경은 살아있고 왕성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빛으로 나와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 빛을 흡수해야 한다.

파도 속에서 들려온 음성

사도행전 27:1-44
1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쌔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음을 허락하더니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성에 이르러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성에서 가깝더라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14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23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27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 저리 쫓겨 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와지는 줄을 짐작하고 
28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주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더니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사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33 날이 새어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 나흘인즉 
34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 칠십 륙인이러라 
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39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가니 
42 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저희를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설교요약>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이탈리아로 가는 배에 오르게 되었고, 후송 책임자인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이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배에서 동역자와 함께 할 수 있게 자유를 허락해 준다. 가이사랴를 출발한 배는 무라에 정착을 하고, 탑승자들은 무역선인 알렉산드리아 배로 환승을 한 후, 그 배는 다시 니도를 거쳐 그레데 섬 남쪽에 있는 미항에 도착하게 된다. 당시 심한 기상 상황으로 인해 바울은 항해를 중단할 것을 권면했지만,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은 백부장은 항해를 강행한다. 물론 전문가의 견해에 더욱 신뢰를 가진 것도 있겠지만, 배에 실은 곡물을 조속히 운송해야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이유도 백부장의 결정에 기여를 하지 않았나는 해석도 나온다. 결국 허리케인의 여파로 배의 짐을 모두 바다에 던져 버리고, 모든 이들이 삶을 포기하는 시점에까지 이르게 된다. 바로 그 때 바울은 하나님께 들은 네 가지를 담대하게 선포하는데, 첫 째는 배만 잃게 될 것이고, 둘 째는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는다는 것, 셋 째는 모든 사람의 안전을 바울에게 맡겨주셨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이들이 한 섬에 무사히 도착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주목할 점은 바울을 제외한 배 안에 모든 사람이 살기를 포기한 그 날 밤 바로 그 때 바울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것을 담대히 선포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바울과 그렇지 못했던 나머지는 어떻게 달리 반응했는 지 그 차이를 비교해 보자.

첫 번째, 배가 풍랑에 표류하자 선원들은 자신들만 살려고 구명 보트를 띄워 도주하려는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모든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워 질 수 있기에 바울은 이를 백부장에게 알려 그들의 도피를 막았다. 이렇듯 우리 삶 속에 파도와 고난이 우릴 연단시키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릴 더 탐욕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만들 수 있다. 즉, 삶의 파도가 우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파도 속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이 우리를 바꾸는 것이다.

두 번째, 14일 이라는 기간 동안 함께 동고동락하며 나름 정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수들이 도망을 쳐 본인들이 난처하게 될 상황을 두려워한 병사들은 죄수들을 살륙하고자 하는 무정함과 냉정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반면에, 바울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목격하며 마음이 녹아져 내린 백부장은 병사들을 저지하고 모든 이들이 다 살 수 있도록 진두지휘한다. 즉, 관계를 맺는데 있어 함께한 세월보다 그 관계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성품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어떻게 끝까지 사랑하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수님의 능력 아래에 두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 능력 아래 두신 것이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폭풍 속에서도 내 마음이 잔잔해지고 평안해진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것과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아셨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공급하심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내가 속한 곳은 유한하기에 지금 속한 곳에서 더 사랑하고 더 주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우리는 삶의 파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한 주 동안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음성에 순종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묵상하고, 적용해보자.

불의한 사람들에 둘러싸였을 때

사도행전 25:1-12, 26:32
1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4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6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설교요약>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집요한 영적 공격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 더 헌신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향력이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삶에서 불의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불의한 사람들은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며, 약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우리의 앞길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불의한 상사나 동료나 무리들을 만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그리스도인의 성경적 반응
첫째. 하나님의 빛과 진리가 앞서 가도록 기도하며 살아라
시편 43장 기자는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의 결정보다 주님의 빛과 진리를 먼저 보내달라 간구한다. 그는 하나님께 먼저 간구하면 주님께서 자신의 상황을 억울하게 하는 거짓과 어둠이 드러날 빛과 진리를 보내주시리라 믿었다. 하나님께서 빛과 진리를 보내주시면, 그 안에서 치유가 일어나고, 슬픔과 절망은 기쁨과 평안으로 바뀐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으로 빛과 진리를 보내실 이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바울도 빛과 진리에 권세와 힘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항상 정직하며, 거짓 없이 빛 가운데서 말하고 행동했다. 빛과 소금 같은 삶은 언어와 연결되어 있다. 진실과 거룩, 정직의 말들은 우리를 그런 사람으로 바꾸어 간다. 말과 소금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은혜의 대화를 위해 ‘seasoned with salt’ 를 하라고 한다. 그 이유는 첫째, 고기를 맛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시즌닝은 먹는 사람의 기쁨을 위해서 한다. 즉 대화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할 때 시즌닝이 된다. 그런 시즌닝이 있는 대화는 지치고 피곤하고 기진맥진한 사람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
둘째는, 말에는 균형과 절제가 있어야 한다. 서로 너무 좋다고, 너무 많이 말을 하거나, 혹은 경계하면서 너무 적게 하면 대화의 진실을 잃을 수 있다. 셋째는 균형 잡힌 시즌닝은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는 영감과 지혜를 준다. 그래서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라고 말씀했다. 시즌닝 대화는 계속해서 대화 중에 성령의 기름 부음과 인도를 받게 한다. 우리가 불의한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도 또한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시즌닝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빛과 진리가 어둠을 몰아내고 영혼들을 풀어주는 소금과 빛의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자기 자신과도 시즌닝 대화를 해야 한다. 정직하게 빛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께 마음을 고백하는 기도를 할 때 어둠과 거짓은 힘을 잃는다. 내면은 고요하고 평안해 진다. 소금으로 빛으로 살수 있는 능력을 준다. 당신의 삶에서 빛과 진리가 당신보다 앞서가도록 기도하고 있는가?

둘째. 불의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응답할 수 있음을 기대하라
베스도는 가이사로 보내달라는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로마를 간다는 것은 그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2년이 지난 후에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 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행: 23:11). 바울이 법정에 서서 재판 받는 모습이 계속 반복되는 23-26장은 사도행전에서 가장 재미없는 부분 같지만 이것은 바울을 위해 하나님이 만들어준 무대였다. 구금된 상태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유대인 지도자와 로마의 최고 권력자들이 보는 앞에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주셨다. 때때로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신 상황들을 불평하고 그 의미를 모르고 답답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당하는 어려운 일들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볼 수 있는 상황들이 종종 있다. 또한 그 동안 함께했던 동료들과 삶을 나눌 때에도 어려움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무엇을 믿고 어떤 삶들을 살았는지 나눌 기회도 주신다. 또한 때가 되면 하나님은 힘들게 하는 권력자들이나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을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이끄시고 옮기신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현실이 되게 하신다. 길을 여시고 그분의 빛과 진리가 앞서가게 하신다.

이사야 41장 17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다.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은 목이 마르고 혀가 마르는 자들에게 응답하신다. 당신은 하나님을 이렇게 목말라 하는가? 바울은 하나님이 2년1개월 전에 하신 말씀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재치 있게 가이사에게 재판 받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에 대해 사모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약속하신 것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사모함이 있는가?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모함이다.

 

믿음과 공감의 차이

사도행전 24:1-27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송사하여 가로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하옵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6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7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8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하나이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지 열 이틀 밖에 못되었고 12 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저희가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저희가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송사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고로 연기하여 가로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 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을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니라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설교요약>

오늘도 하나님께 나가긴 하지만 마음 문을 두드리는 주님께 삶을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때론 스스로 자원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긴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을 깊숙이 만지시려 할때 벨릭스처럼 '그만하면 되었으니 가시오' 라며 발을 빼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 자원하며 나오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 하실때 마음을 여는 것이다. 윌리암 홀맨 헌트(1827~1910) 라는 영국화가가 1853년에 완성한 ' 세상의 빛' 이란 작품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예수님의 표정이 어둡고 예수님이 들고 계신 등불에서만 빛이 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왜 문에 손잡이가 없는가 물었다고 한다. 이 질문에 화가는 '마음의 문은 그 자신이 안에서 열어야만 한다는 걸 표현한 것이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잘 보면 문 앞에 엉겅퀴가 잔뜩 자라나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연상하며 그림을 그렸다.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영혼은 냉냉해졌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해졌다.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뜨겁든지 차든지 열정을 다시 회복하라고 하셨다. 그렇치 않으면 그들을 토해 버리시겠다고 하셨
다. 작가 윌리엄 홀맨 헌트는 이 그림을 통하여 믿는 사람의 영혼도 다시 닫힐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마음에 엉겅퀴가 자라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또한 밖에서 열수 있는 손잡이를 그리지 않음으로 안에서만 그 문을 열 수 있음을 표현했다.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30) 라고 말씀하셨다.

열린 마음문의 특징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열고 받아 들인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원해서 들으면서도 벨릭스나 드루실라처럼 터치는 되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믿지 못하는 것이다. 공감은 하는데 믿지는 못하는 것이다. 종종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공감' 과 '믿음'을 혼동할 때가 있다. 믿음은 말씀을 받을때 이성과 감정의 동의 속에서 행동으로 옮겨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믿음은 물리적이고 감성적인 것을 초월해 어떤 불가능한 것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도 하나님을 믿기에 아멘하며 마음문을 열게 된다. 믿음은 사물이 아니라 인격이신 하나님을 믿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어떤 불가능하고 막막한 상황을 만나도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잃지 않는다. 공감과 이성을 뛰어넘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둘째. 감정을 넘어 사실을 신뢰한다. 우리는 사실을 의지하지 않고 감정을 신뢰할 때 요동함이 있다. 당신이 예민해 하는 감정은 무
엇인가?
돈, 명예, 좋은 직장, 성공, 보여주는 것, 원수들의 엿봄, 이성, 결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집착, 외모, 신발, 자동차, 옷, 보석, 지식, 비교 받는 것, 당신의 어떤 재능, 취미생활..등 이 중에 특별히 예민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냥 놔둘때 하나님과 당신의 교제는 점점 멀어지고 당신은 더 곤고해 질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사실로 돌아가야 한다. 다윗은 감정의 고백과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하나님의 사랑의 사실을 알았다. 다윗의 시는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글을 쓴 증거다. 감정을 하나님 앞에서 적어 보는것이 중요하다. 사실을 신뢰하라. 주님의 당신을 향한 사랑은 영원하며, 구원은 변함없고, 그분의 선하심은 영원하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감정의 상자에 갇혀 실제를 보지 못하고 슬픔과 근심 속에 살아가는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래서 예수님을 데려가시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보내신 그의 최고의 선물이고 실제인 비둘기는 '성경과 성령' 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감하는데 그치는가? 아니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가? 만약 믿어지면 당신은 감정과 이성의 상자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