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은 은혜를 위하여

누가복음 1:24-56
24 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가로되
25 주께서 나를 돌아 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42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설교요약>
엘리사벳은 세례 요한을 잉태하고 5개월 동안 그 사실을 숨기며 은밀하게 살았다(눅1: 24) 그녀 평생의 치욕을 없애 주시기 위해, 늙은 나이임에도 주님께서 아이를 잉태하게 해주셨다 그녀는 고백했다(25) 엘리사벳은 누구 보다 경건한 여인이었고 평생을 하나님을 섬기고 따랐음에도 그녀 내면은 수치심으로 가득차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치욕이 아니라, 엘리사벳이 결핍 속에서 자신의 생각으로 그린, 잘못된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온 수치심이었다.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고 사람들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이런 잘못된 수치심으로 마음이 슬프고, 심하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닫게 하는 감정들이 있을 수 있다. 이 것이 주님을 따른지 오래 되어도 치유는 계속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삶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주어질 때 사단의 속임을 주의해야 한다. 사단은 크고 작은, 많은 고통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수치심을 갖게 해 우릴 묶어두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상처를 없애주시고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붙들어야 한다. 이 확신이 중요한 것은 당신이 대단한 일을 했거나, 대단한 것을 소유했을 때에도 계속 그 분의 은혜를 붙들며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사벳 임신 6개월째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28) 라고 하고 다시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30) 라며 그녀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말했다. 그녀에 대해 특출난 그 어떤 것도 기술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가 평범한 시골 아가씨였음을 보여준다. 마리아가 선택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엘리사벳도 마리아도 공통점은 은혜로 선택을 받은 것이다.

그럼 이렇게 중요한 하나님의 은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가?

아들 예수를 잉태하여 낳는 것이다. 마리아는 약혼을 마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평생을 살고 싶어 결혼을 기다리는 지극히 평범한 젊은 처녀였다. 그분의 이런 계획은 마리아의 삶을 힘들게 할 것이 뻔했다. 사람들에게 오해, 멸시, 거절, 미움 받을 것을 각오해야 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주시면서 은혜라고 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은혜와 다를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을 우리를 통해 하실 때 어떻게 그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가? 다음 네 가지를 생각해 보자.
1) 계시 (Revelation)-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을 미리 보내셔서,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할 것과 다니엘의 환상의 의미를 계시로 알려주셨다. 하나님은 오늘도 성경과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우릴 향한 그분의 비전을 알려주신다. 비전이 없는가? 성경과 성령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비전이 우리 영혼에 향기처럼 스며들 것이다.

2) 동의(Consent)- 예수님은 자신이 베풀어 주신 초자연적인 기적 자체가 사람들의 믿음의 대상이 되길 원치 않으셨다. 그 능력을 베푸신 하나님 자신을 주목하고 믿기를 원하셨다. 어떤 일에 동의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다. 그 일에 대해 적극 행동 하겠다는 의지의 결단이다. 그것이 없으면 그분과 교제도 없다. 교제가 없으면 기쁨도 없고 사랑과 행복도 없다. 믿음은 일이 아닌 하나님 자체 그분의 인격을 그리워하고 주목하는 것이다. 우린 일 때문에 힘든 것 보다 사랑하고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어 삶이 힘들어 질 때가 많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에 마음에 넣어 주신 본능이다.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

3)확인 (Confirmation)- 세번째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 방법은 확인이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성령의 감동으로 가브리엘과 마리아가 대화한 것을 옆에서 들은 사람처럼 모두 알고 아이를 잉태한 사실을 말했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분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계획을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을 성령의 사람을 통해 확인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어떤 비전이나 사명을 이미 동의했다고 할지라도 다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다시 컨펌해 주신다.

4) 확신 (Assurance)- 아무리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하나님께 받은 것을 알려주어도 내게 확신이 없다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자주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에게 하나님이 나를 통해 어떤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비전이 흐려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확신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강권 적인 기름부음으로만 확신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받은 순간부터 이루어 지기까지 계속해서 우리의 묶여 있는 영혼을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 풀어놓는 권세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 때 가장 먼저 우리의 영혼이 더욱 자유케 되고 담대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자유케 되는 것,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을 세상에서 죄에 매여 살던 영혼들에게만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미 주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아직도 내면에 더 터져 나와야 할 생수들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분의 비전을 사모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그들에게 더 깊이 있는 은혜를 주시기 원하신다. 당신은 그분의 비전을 사모하는가? 

더 큰 믿음을 위하여

누가복음 1:1-23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쌔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1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19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20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 
21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의 성소 안에서 지체함을 기이히 여기더니
22 그가 나와서 저희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줄 알았더라 그가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더니
23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설교요약>
바울에 동역자였던 누가는 데오빌로다라는 로마의 고위직으로 추정되는 수신자에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헌정한다. 하지만 누가는 데오빌로와 유사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전 세계의 이방인들에게 이 책들을 기록했을 것으로 본다. 누가는 8번째 반열에 속한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으로 누가복음을 시작한다.

결핍 속에서도 주님 말씀대로 사는 자들을 향한 보상
6절에 보면 사가랴만 의로운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인 엘리사벳도 의로운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런 삶의 결핍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님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묵묵히 주님을 사랑했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갔다. 사가랴가 성전에서 분향할 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이가 많아 잉태할 수 없는 엘리사벳에게 잉태할 것 라는 메시지를 준다. 왜 하나님께서는 가능한 시절이 다 지나간 다음에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어떤 일들이 진행되지 않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늘 하나님이 앞에 계심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의인인 것이다.

번거로운 과정을 선택하신 이유

13절에 보면 ‘네 간구를 주님께서 듣고 계신다’ 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가랴가 아이를 갖게 해 달라는 기도를 어느 시점부터 계속해서 듣고 계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마 사가랴는 현실적인 상황으로 가브리엘의 말을 믿지 못하며 그 이유로 10달동안 말을 못하게 된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가랴가 성전에서 분향하고 사람들이 중보기도를 할 때 이 같은 일을 하셨을까? 그 이유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더 큰 믿음으로 살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더 큰 믿음은 무엇일까?

첫째, 우리의 기도가 응답 되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계속 듣고 계심을 믿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시간 때에 아무리 나의 처지가 불가능한 상태라도 이루실수 있는 분이시다. 따라서 어떤 것을 구할 때 그것이 오지 않았다고 중단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다른 것으로 변형해서 주실 때에는 그것을 중단하고 다른 것을 구해야 한다.

둘째, 큰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어떤 것들이 주어지기 까지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하고 믿음으로 반응해야 만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매사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려고 그분의 음성을 먼저 들으려 한다. 이것이 큰 믿음이다. 그래서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광야의 학교를 통과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은혜이다.

셋째,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장애를 가능케 하시는 말씀을 믿으라. 20절에 보면 사가랴는 세가지 숙제를 천사로부터 받았다. 첫째는 지금부터 말을 못하게 된다. 둘째는 10개월 후에 다시 말을 하게 된다. 셋째는 아이가 10개월 후에 탄생한다. 사가랴는 기도하면서도 자신이 기도해 왔던 것을 믿지 못했다. 그러나 이 일이 이루어 지면 그는 자신의 이성적인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신뢰하는 사람으로 바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숙제를 주신다. 숙제는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이 해야 한다. 숙제를 통해 지식을 알아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숙제는 현실이 한계에 부딪칠 때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듣는 것이다. 그리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를 계속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을 맛볼 때 우리는 현실의 벽에 부딪칠 때도 평안히 담대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더 큰 믿음으로 변해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준 숙제 현실의 벽은 무엇인가?

사도행전 29장을 쓰는 사람들

사도행전 28:11-31
11 석달 후에 그 섬에서 과동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그 배 기호는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난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15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20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노라 
21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29(없음)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설교요약

첫째, 만남을 통해 일으키는 성령의 불꽃
바울은 처음 와 본 로마에서 풍랑을 만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그를 로마에 도착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이 원하는 땅에 바울이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여러가지의 방법으로 길을 열어 주셨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에는 하나님이 일으키는 위로와 도움의 사람들이 있다. 최종 목적지인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그곳에 있는 형제들이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나왔다. 이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바울을 만나기 위해 각기 다른 지역으로 부터 먼길을 달려온 것을 의미한다. 이 사람들은 약 30년 전에 (AD33년경/60-62년) 예루살렘에 왔다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제자들이 각국의 언어로 방언을 하는 것과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자들일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은지 25년이 흘렀는데도 그 사랑은 뜨거웠고 순수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인간적으로 볼때 바울은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로마에 온 것이 아니라 죄수의 몸으로 도착했음에도 그들은 그가 복음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바울은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했고 큰 위로를 받았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람에 대해 냉소적이던 사람들이 따뜻한 사람들로 변한다. 인종과 언어와 피부색과 빈부귀천으로 사람을 나누던 사람들이 그런 모든 것을 중단하고 모두를 존귀하게 대한다. 그 사람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감동으로 정과 사랑을 주기 때문에 그 만남들을 통해 서로가 재충전되고 채워지고 회복되는 성령의 불꽃(Spark)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너희는 성령의 약속하신 성령으로 표, 도장이 찍힌 사람' 이라고 말씀 하신다. 한번 찍힌 표는
지워지지 않는다. 누구도 그 소유권을 바꿀수 없고 빼앗아 갈수 없다. 표는 소유권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며 누구의 소유인가를 분명하게 가늠하게 해준다. 성령은 우리가 많은 것을 해줄순 없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작고 소박한 일들을 기쁨으로 하게 하신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하게 하신다. 죄를 회개케 하시고 마음이 완악해 지려고 할때 은혜로 녹이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고 그분의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낼수 없다. 사단은 아무리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떼어놓으려 해도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축복하신다.


둘째, 하나님이 인도 하시는 땅에는 제한적인 상황을 통해 이루시는 무제한의 일들이 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로마정부를 통해 바울이 셋집을 얻어 민간인과 섞여 살수 있도록 그 삶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바울은 여기에서 유대인들을 초청해 복음을 전했고 이방인들도 초청해 복음을 전했다. 더욱이 바울은 이 2년의 투옥생활을 하면서 지4권의 서신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들을 써서 교회로 보냈다. 이 서신서들은 지금 이순간도 어둠에 묵인 영혼들을 영혼들을 자유케 해주며 천국을 누리며 살게 해주고 있다. 2000천년 동안 셀수없는 사람들을 살리고 자유케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는 이 최고의 성경이 바울이 가장 제한적이고 육체적인 출입이 제한되어 있을 때 탄생했다. 우리는 주변의 화려하고 큰 일을 이루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가 작아지고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심하면 하나님에게도 거절감을 느끼게 되고 상대적인 열등감에 젖어들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작기 때문에 제한적이기 때문에 타인이 할수없는 일들을 이루어 가는 것들이 많이 있다. 바울은 자신의 묶임을 본것이 아니라 자신의 묶임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무제한의 능력을 보았다. 하나님은 약하고 힘없는 자들 이라도 그분을 의지할 때 아무도 해하지 않도록 자유롭게 왕궁을 드나들듯 많은 곳들을 왕래하게 하시는 것을 보여주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 분을 의지할때 부지런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개미처럼 준비하고 예비하고 포기하지 않는 인내를 주시는 분임을 알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심을 알게 하시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이 사도행전 29장을 써 나가길 원하신다. 그러려면 내 안에 사는 분이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령이심을 날마다 의지하고 인정해야 한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만이 하실수 있는 일들을 주목하며 귀하게 여기며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부활의 증거들과 목적

누가복음 24:1-12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 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설교요약>
예수님 부활의 네 가지 증거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였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24시간 안에 장사를 지냈으며 주로 여자들이 시신에 향유 바르는 일을 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금요일에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지 못하고 안치했고, 다음날은 안식일이어서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에 여인들은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 예수님 부활 사건에 대한 이런 성경의 구체적 기록은 그 당시 유대 문화 및 장례 풍습들과 일치하며,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한다.

두 번째 증거는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무덤 문이 굴려져 나간 것을 보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냥 ‘무덤 문을 열었다’ 가 아니라 ‘굴려져 열려 있었다’라는 증언 또한 그 당시 무덤 형태와 일치하며 역사성을 지닌다. 예수님 현존 당시 유대인들의 무덤은 바위를 파서 입구를 무거운 돌로 막고 시멘트로 바르는 풍습이 있었고, 성경은 이 장례 풍습과 일치하는 구체적 기록을 남겨 놓았다. 마가는 이 여인들이 인봉되어 있는 무거운 무덤 문을 누가 열어줄까 걱정하며 무덤을 찾아왔다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덤문은 굴려져 열려 있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일할 때 때로 무덤 문처럼 막혀 있을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그 막힌 문들을 열어주시는 분이다.
부활이 실제였다는 세번째 증거는 무덤을 찾은 여인들 앞에 나타난 천사의 모습과 성품에 있다. 흰옷 입은 두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너무 눈부셔서 여인들은 얼굴을 숙였다고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성경의 다른 구절에 나타난 천사의 모습들과 일치한다. 눈부신 광채를 내는 천사들은 자신들의 모습에 집중하지 않게 하고 갈릴리 에서 부활을 예언하셨던 생전의 예수님의 말씀을 여인들에게 생각나게 했다.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목시킨 천사들의 겸손한 성품은 성경 곳곳에 기록된 천사들의 성품과도 일치한다. 이 시대의 천사는 자신이 아닌 예수님을 주목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당신은 누구를 주목시키며 살고 있는가?
네번째 증거는 예수님 부활 사건에 대한 가감 없는 구체적 기록에 있다. 여인들은 무덤에서 돌아와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인 사람들에게 이 모든 일을 알렸다.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를 뺀 남은 제자들의 수, 실존 인물임을 나타내는 여인들의 이름 에 대한 구체적 언급, 그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까지 찾게 된 이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과 베드로의 반응 등 꾸미거나 가공한 흔적 없이 기록된 점들이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 일어난 사건임을 입증한다. 여기에 예수님과 사도들이 현존 했던 동시대 가장 저명한 유대 정치가이자 역사가였으며, 예루살렘 태생의 비기독교인인 흘라비우스 죠세프스의 책 유대 고대사(Antiquities)에도 선하고 지혜롭고 뛰어난 학식을 지녔다고 소개된 예수님의 현존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 및 그리스도인들의 부흥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이 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왜 중요한가? 부활은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실제했던 분임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네 가지 변화
첫째, 영혼을 뜨겁게 한다. 여자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사도 외에 두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30리 떨어진 엠마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들 앞에 나타난 예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던 두 제자에게 성경 전체가 자신에 대해 증언함을 풀어 해석해 주셨다. 예수님이 사라지고 났을 때 그들은 예수님 생전에 말씀을 들을 때처럼 마음이 다시 뜨거워졌음을 서로 나누면서 그 분이 예수님이신걸 알아챘다. 둘째, 엠마오 제자들은 그 길로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열 한 제자와 모인 무리에게 그 일을 알렸다. 부활을 믿으면 그 소식을 나누며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한다. 세째, 엠마오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빵을 떼어주실 때 자신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증거했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슬픈 일이나 답답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잘 보지 못할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를 보게 하신다. 마지막 변화는 꿈같은 현실을 종종 선물로 받는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너무 기뻐 놀라워하고 있었다. 당신은 너무 기뻐 믿을 수 없는 꿈같은 현실을 계속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가? 그렇다면 부활을 믿는 사람이다. 부활은 꿈같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부활을 보여 주신 목적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라 하였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너희는 이 일에 증인이다’(눅 24:47-48) 복음서에 나약한 제자들과 달리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하며 순교했다. 예수님 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했기에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믿으면 우리의 가장 큰 두려움의 뿌리인 죽음이 두렵지 않고 내게 주신 오늘의 하루 하루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은 실존하셨고, 부활로 우리의 생애를 천국으로 주셨고, 부활의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길 원하신다.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을 고민하고 있다면 당신은 부활을 믿는 사람이다.

영혼의 시신경

사도행전 28:1-10
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7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8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9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10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설교요약>

예비된 섬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그레데 섬 미항에서 항해가 위험할 것이라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리한 항해를 했고 결국 배는 표류했지만, 기적같이 멜리데 섬에 도착했고 원주민들은 특별한 동정으로 이들을 대접했다. 우리는 살면서 무리하게 우리의 욕심으로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다. 그리하여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셔도 아무런 말도 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찾는 원초적인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롬:1:19). '창세로 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1:19-20) 하지만 하나님을 알아볼수있는 마음이 죄로 인해 어두워 지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주시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1:21) 하나님은 전도를 미련한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보면서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렇기에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밝은 곳으로 가면 일시에 동공을 통해서 필요한 양을 초과하는 빛이 눈의 망막으로 쏟아져 들어온다고 한다. 이때 필요 이상의 빛을 시신경이 처리할수 없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시신경이 마비 된다고 한다. 이처럼 어두움 가운데 오랜시간 살다보면 마음이 어둠에 익숙해 져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 주어도 그것을 받아 들이지 못한다. 시신경이 마비된것 처럼 영혼이 마비되어 죽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영혼의 신경을 살려 다시 하나님의 빛을 받아드릴 수 있게 하는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죽었던 영혼의 시신경이 살아난다. 당신은 삶에서 하나님을 보고 있는가? 하나님을 느끼고 있는가? 당신의 영혼의 시신경은 깨어났는가?

살아난 영혼들의 특징 두 가지
첫째, 빛을 잘 흡수한다.
우리가 살면서 잘못된 선택을 해서 어려움을 겪을때 빛을 흡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대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회개한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이 그런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섬으로 인도하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본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을 잘 따라가기 위해 계속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계속 기도해야 한다.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집중해서 따라가야 한다.하나님이 인도하신 섬에는 사람들의 도움과 긍휼이 있었다. 또 전혀 뜻하지 않을 일이 일어났을지라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로 보호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 사도행전 28장 4-5절을 보자.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둘째, 어려움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민감하다.
다음에 주목해야 할 것은 바울이 뱀에 물린 이 아무 의미없는 우연같은 일을 통해 하나님이 그 멜리데 섬에서 놀라운 일을 일으키신 것이다. 바울이 뱀에 물리는 일로 인하여 섬의 추장같은 보블리오라는 사람이 그를 자신집에 초대했고 바울은 그의 열병과 이질에 걸린 부친을 위해 믿음으로 기도해 주었고 기도를 통해 나았다. 미신적인 풍습이 가득했던 그 섬 전체에 예수님의 복음이 빠르게 전해졌다. 마비된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도한 섬인데 왜 다시 이렇게 독에 감염되고 물리고 덫에 걸리는 일이 일어났는가? 라며 절망과 낙담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 우연 같은 의미 없는 일을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이런 두 가지 특징이 있다면 당신 영혼의 시신경은 살아있고 왕성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빛으로 나와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 빛을 흡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