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고 싶은 천국

요한복음 3:1-8/16
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설교 요약>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저녁에 예수님에게 나왔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당시 최상류층 사람이었다. 니고데모는 은밀히 아무도 모르게 저녁에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수 없음이니이다'(요3:2) 그의 말속에서 예수님을 높이고 칭찬하는 것을 엿볼수 있다. 그러나 이런 칭찬의 말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요3:3)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칭찬에도 전혀 기뻐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에게 두가지를 간접적으로 말씀하셨다. 첫째. 너는 거듭나지 못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거듭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셨는가를 알게 해준다.

거듭나야 하는 이유 -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당신은 당신이 본 어떤 아름다운 나라나 장소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꼭 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질것이다. 나는 하와이 이야기 열방대학 이야기를 종종한다. 그곳을 생각하면 열정이 타오른다.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고 큰 기쁨과 은혜와 치유가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느끼고 만져 본 곳이기에 표현이 생생하다. 그곳에는 두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아름다운 자연이다. 잉크빛 바다와 열대아 나무와 완벽한 날씨이다. 둘째는 보이지 않는 기쁨과 치유와 은혜와 평안이 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두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으로 알고있다. 둘째. 니고데모를 많이 사랑하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오늘 크로스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맛본 '천국'에 당신도 들어오길 바라는 소망때문이다. 그럼 그 천국을 어떻게 들어갈수 있을까? 그 천국은 바람같은 성령을 통해 들어간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했다. 요한복음 3장8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바람의 실체는 눈으로 볼수없다. 그러나 결과는 볼수있다. 따라서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다고 해서 바람이 존재하지 않는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성령을 바람으로 비유하셨다. 하나님의 존재가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심을 보여주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세상에 정말 중요한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바람처럼 존재하신다. 성령을 바람으로 비유한 것은 진리다. 성령은 하나님의 또 다른 인격이시다. 성령은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을 보게 하신다. 요한복음 3장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피를 통해 우리 죄를 회개케 하신다. 그 바람같은 성령은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오로라 처럼 아름답게 승화 시키신다.성령은 예수믿는 후에 짖는 죄를 찔리게 하시고 새롭게 바꾸신다. 성령은 지구의 자전 공전 속도 보다 더 빠르게 하나님의 임재안으로 우릴 데리고 들어가신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에 아무소리 안들려도 하나님의 임재를 영혼으로 보고 느끼게 해주신다.

내가 존경하는 미국의 선교사 한분이 있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브레이 너드 다. 그는 1718년 커네디컷 에서 태어났다. 그는 9세때 아버지를 잃고 14살때 어머니를 잃은 외로운 소년이었다. 방황끝에 21살에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일에서 공부하던 중 자신의 생애를 인디언의 영혼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1743년 그의 나이 24살에 인디언 선교사가 되었지만 그는 움막의 짚푸라기에서 자야했다. 옥수수 죽을 먹고 길을 잃어 온 밤을 늑대가 우글거리는 숲에서 자야만 하는 날들을 보냈다. 결국 피를 토하는 폐결핵에 걸려 몸이 쇠약해 져갔다. 그러나 29살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갔다. 선교2년동안 인디언들은 그를 조롱하는것 처럼 전혀 변하지 않았고 죄악가운데 살고 있었다. 그런중 그가 절망중에 복음을 전하던 어느날 놀라운 성령의 부흥이 그 마을에 일기 시작했다. 그때의 한 상황을 이렇게 일기에 적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회중위에 강하고 급한 바람처럼 내리는 것 같았고 모든 사람이 그 앞에서 놀라 엎드러지고 말았다. 나는 그 영향에 놀라 그저 서있었는데 모든 사람이 다 사로잡힌 것 같았고 마치 앞에 무엇이 있든지 다 쓰러뜨리고 휩쓸어 버리는 강한 폭풍과 엄청난 대 홍수의 저항할수 없는 큰 힘과 비교할 만했다.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서로 관심을 가지고 구부리고 앉았고 그 놀라운 사실의 충격에 견딜 사람이 없었다. 중년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여러해 동안 술꾼으로 지내던 나이 많은 사람들과 6-7세 밖에 안된 조그만 아이들 까지도 자기 영혼에 대한 깊은 고뇌를 느끼고 있었다. 이제 가장 고집이 센 사람이 수그러지고 있었다. 그 전만 해도 스스로 의롭고 안전하다고 자랑하며 어떤 인디언들 보다도 아는 것이 많고 자기도 과거에는 10여년간 그리스도인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고 자신 만만하게 말하며 자기의 상태는 양호하다고 호언 장담하던 인디언 추장이 이제 와서 자기 영혼의 상태를 보고 심각하게 염려하며 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또 한 사람도 나이가 든 사람인데 살인자요 마술사에다가 악명 높은 술 주정뱅이 였는데 그가 눈물을 펑펑 쏱으면서 용서를 구하며 자신이 처한 위태한 사실을 볼때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수 있겠느냐며 오히려 투덜거렸다. 집 구석구석에서 사람이 모두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고 문 밖에서도 또 여러 사람이 가지도 못하고 서 있지도 못할 정도였다. 사람들 마다 자기 영혼에 대해 심각한염려를 하게 되었고 자기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저마다 자신을 위해 기도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이것이 바람같은 성령이시다. 당신은 거듭났는가? 천국을 맛보고 있는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거듭나고 천국안으로 들어온다.

선교는 누가 왜 하는가?

고린도전서 12:12-26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설교 요약>
* 1995년부터 아마존 선교를 시작하신 강광수 선교사님의 말씀입니다.

선교는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그 사명에 미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체인 우리가 하는 것이 선교이다.

브라질 아마존은 어떤 곳인가?
아마존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다. 브라질의 아마존 우림은 7 million km2 로 미국의 본토 지역과 맞먹는 사이즈이다. 이곳은 지구의 열대우림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 지 구 산소의 20% 이상을 생성한다. 그래서 지구의 허파라고도 불린다. 날씨는 6월에서 8월이 겨울, 12월에서 2월이 여름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아마존은 대체로 덥고 습하며 평균 온도는 23에서 29도이다. 안데스 산맥에 인접한 아마존 숲은 연간 4,000 mm로 엄청난 양의 비가 내 린다. 우기 (1월-4월)에 내리는 비는 상대적으로 기간은 짧지만 양이 많고 종종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다. 남미의 아마존 강은 나일강 다음으로 지구에서 두번째로 큰 강이다. 아마존 사람들 은 이 강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는다. 거주하기도 하며, 먹을 것을 강으로부터 얻고, 생활의 모 든 공급원이 이 아마존 강이다. 아마존 사람들은 소규모의 집단을 이루며 생활하고 다산으로 인해 계속적으로 인구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의 유아들이 유아기에 사망하기 때문에 일 정하게 그 수가 유지되고 있다.

아마존에서는 브라질, 콜롬비아, 페루 이 세 나라가 만나는 곳에서 ‘삼국경 신학교’를 운영 하고 있다. 180 acre (21만 6천평)의 땅을 사서 4년제 현지 지도자 양성을 위해 학교를 설립 하였다. IeFaM (Igr ej a Evangél ica Tr ês Fr ont eir as Amazonas) 라는 교단을 세우고 이 것을 협력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재정적으로 독립된 기관 PSI 를 세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 하도록 하였다.

2030년까지 이 신학교를 통해 150명의 현지 지도자를 양성한다라는 미션으로 현재 사역에 임 하고 있다. 그들이 100개의 교회를 세우고 1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농장 사역을 통해서 경 제적으로 자립하는 단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삼국경 신학교는 2005년 6명의 현지 학생을 데리고 시작하여 현재 3명의 풀타임 목사님이 교육하고 있으며 작년에 40명의 학생들 을 졸업시켰고, 올해는15명의 소수의 학생들을 데리고 운영하고 있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 니라 어떤 학생들을 어떻게 키워내는가가 더 중요하다.

기도제목:
1) 여자 신학교와 도서실 건축을 위해
2) 후방교회와 연관해서 새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3) 팀 사역을 위한 헌신적인 젊은 청년들이 많이 모일 수 있도록
4) 아마존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때까지 사역이 이어질 수 있도록

떡과 칼

누가복음 6:1-11
1 한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었다. 
2 그러자 몇몇 바리새파 사람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3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4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시는데, 거기에는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지 엿보고 있었다.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운데 서라.” 그래서 그는 일어나서 섰다. 
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물어 보겠다.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건지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10 예수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서, 그 사람에게 명하셨다. “네 손을 내밀어라.” 그 사람이 그렇게 하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11 그들은 화가 잔뜩 나서,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였다.

<설교 요약>
안식은 하나님이 지치고 피곤해서 쉬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창조한 것을 즐기고 그것들로 찬양받으시고 예배받으시기 위함이다. 안식일의 2가지 축복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체험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오른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쳐 주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께 바짝붙어 안식일에 일하는가 고발하기 위해 엿보고 있었다.예수님이 손마른자의 손을 고쳐 주시고 누가복음 6:9 처럼 이렇게 말씀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누가복음 6:11처럼 반응했다. 예수님과 이 사람들의 안식일이 대조적이다.이 치유를 통해서 창세기에 하나님이 제 7일에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예배하도록 복주신 그 원래 목적이 회복되지 않았는가? 오늘도 이 복된 날에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기대하며 나올때 그분은 치료의 하나님으로 만나주신다.

둘째. 떡과 칼이 주어지는 날이다
구약에 다윗이 사울에게 시기를 받아 억울하게 쫒기고 있었다. 다윗을 따르는 부하들과 동료들은 배가 고파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놉이라는 작은 마을로 숨어들어 갔다.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모두 배가고파 기진맥진에 있으니 먹을것좀 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아히멜렉은 하나님의 성전에 매주 안식일에 드리는 진설병이라는 떡을 다윗과 그의 일행에게 주었다. 그러나 성전에 하나님께 드려진 고기나 진설병 떡은 제사장 들만 먹을수 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먹으면 죽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다윗은 사울에게 쫓기고 있다고 말하지도 못했다.그러나 하나님은 억울하게 쫓기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 법을 어겼음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윗은 진설병을 먹고 창이나 칼은 없냐고 아히멜렉에게 물었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전에 골리앗을 죽인 칼이 보자기에 싸여 제사장이 입는 예복 에봇 뒤에 있다고 했다. 사무엘상 21:9 말씀처럼 다윗은 그것이 최고의 무기라고 말한뒤 그것을 가지고 떠났다. 골리앗을 죽인 칼을 다시 찾은 말씀도 큰 영적 의미가 있다. 다윗은 전에 하나님만 의지했다. 그 믿음이 자신보다 거대한 도저히 무너뜨릴수 없는 골리앗을 무너뜨렸다. 사울에게 쫓기는 상황속에서 두려움과 공포가 그의 영혼을 점점 약하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에서 떡과 칼을 다시 돌려 받은후 다윗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이 무엇일까? 떡과 칼이 주어진 이후

첫째. 강한군대를 이루었다
사무엘상 21장에 보면 다윗은 떡과 칼을 받은 직후 사울이 두려워 자신이 죽인 골리앗의 나라로 피신해서 가드왕에게 나갔다. 신하 몇명이 다윗을 알아보자 다윗이 미친척을 했고 다행히 그곳에서 탈출했다. 다윗은 아둘람 굴로 도망했다. 거기에서 환난당한 자 마음이 원통한자 빚진자들이 그에게 몰려와400명의 큰 군대를 이루게 되었다. 사무엘상 22:2을 보면 이것이 다윗이 다양하고 다루기 힘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하나님 나라의 용사로 세우는 지도자가 되어감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의 날에 떡과 칼을 받아 세상에 나가도 우왕좌왕 흔들릴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칼을 휘두르기 시작하고 점점 그리스도인으로서 강함을 갖게된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어도 세상에서 안된다고 쉽게 칼과 떡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둘째. 고난의 상황속에서 고난의 사람들을 풀어주었다
사무엘상 23:2-3을 보면 다윗은 즉시 하나님께 순종했다. 사무엘상 23:5말씀에 따르면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다. 다윗은 지금 사울의 대군에 쫓기는 상황이다. 자신의 군대는 갓 조직된 400명의 오합지졸 뿐이었다.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동족들 그일라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을 보고서 자신의 위험보다 그들의 생명을 더 먼저 생각했다. 대군을 이끌고 자신의 백성을 블레셋으로 부터 구원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다윗만을 쫓는 사울과 대조적이다. 다윗은 상황을 주님 음성으로 동일화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상황을 신뢰하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주의 날에 떡과 칼이 회복되면 자신의 상황이 고통스럽고 어려워도 주변의 고통스럽고 어려운 영혼들을 풀어줄수 있는 힘이 생긴다.

셋째. 자신이 사랑을 준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했다
사무엘상 23:13에 따르면 한가지 놀라운 것은 자신이 구해준 그일라 사람들은 다윗에게 은혜를 악으로 갚았다. 그러나 고난가운데서 고통스런 사람들을 도와주는 시간동안 400명에서 600명의 군대로 더 늘어나 있는 것을 보여준다. 기대할 만한 사람들은 도움이 아니라 해를 주고 기대치 않은 사람들로 채워졌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기대치 않은 시간에 우리를 도우시고 채우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떡과 칼로 사는 자들에게 어떤 보상을 하실까?
(시편 57:2)하나님은 다윗에게 소망과 확신을 주셨다. (시편 57:5)하나님은 다윗의 영혼에 온 열방에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거룩한 열정을 부어주셨다. (시편 57:7)흔들리지 않는 반석같은 믿음과 찬양의 마음을 주셨다. 시편 57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소망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최고의 보상중에 하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망' 으로 채워지는 마음이다. 소망은 기쁨을 낳고, 기쁨은 감사를 낳고, 감사는 성취를 낳는다.

주의 날은 떡과 칼을 받는 날이다. 떡과 칼은 ? 
1) 강한 하나님의 군대를 일으킨다.
2) 고난속에서 고난받는 자를 풀어준다.
3) 자신이 구해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준다.
4) 소망의 보상을 받는다. 

새 부대

누가복음 5:35-39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설교 요약>
새 옷과 새 포도주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헌 옷과 헌 부대가 구약의 율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진정한 의미와 정신인 사랑을 놓치고 자신들의 잘못된 해석으로 만든 인간의 전통임을 알려 주신다. 따라서 새 옷과 새 포도주는 율법을 완성케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셨고 그것은 한마디로 사랑이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하고 낙심한 베드로와 외로운 삶을 살던 나병환자, 평생 누어서 삶을 연명했던 중병병자에게 예수님은 다가갔고 그들에게 사랑을 보여주셨다. 이것이 바로 조건없은 사랑, 거룩한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신 아가페의 사랑이다. 빌보드 차트 hot100 중에 10위에 오른 BTS의 Fake Love를 통해서 세계의 젊은이들이 진실된 사랑에 대한 갈망이 그들의 내면 속에 있음을 증명한다. 진실된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이며 육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다. 그럼 인간은 자신을 사랑하고 거짓 없는 진실한 사랑을 하려면 아가페의 사랑을 만나야 하며 그 속에서 성화되어야 한다.

새 부대
첫째는 거듭남이다

새 옷과 새 포도주의 비유를 통해서 이것이 사랑의 율법인 것을 안다. 그럼 새 부대는 무엇인가? 새 부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통은 양을 죽여서 그 가죽으로 만든다. 즉 새 부대와 같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려면 먼저 죽었다가 살아나야 한다. 니고데모와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베드로, 백부장도 모두 예수님을 믿을 때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새 부대가 되었다. 새 부대 안에 거하시는 분은 성령님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거부한다면 그 안에 있는 영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새 부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아래에 있는 5가지 특징을 보이는 거듭난 사람들이다.
1- 죄를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아드린다.
2- 형제, 자매들을 사랑한다.
3- 예수님이 신성을 가지고 육체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믿는다.
4- 세상을 이긴다.
5-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둘째는 가치 있는 말과 삶에 집중한다
새 포도주는 성령님으로 비유된다. 오순절 성령사건 이후로 계속해서 사도들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 받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교제하고 서로의 것을 나누고 기도와 복음을 전하는 과정 속에서 오신 것이다. 요점은 부어주신 새 포도주는 누군가를 위해서 가치 있게 사용됨으로 새 부대가 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도 새 부대가 메말라 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것을 여름철의 시냇물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것은 속이는 시냇물이다.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지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아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너무 힘들거나 속이는 시냇물이 지속될 때 그 화살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다. 당신의 삶에 속이는 시냇물은 무엇인가? 재정, 가족, 직장, 친구, 하나님의 사람들 아니면 자기 자신인가?

예레미야 15장 19절의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말씀하신다.
첫째는 가치 없는 말이 아니라 가치 있는 말씀을 전하라
즉 하나님은 속이는 시냇물 같은 사람이나 상황들을 만날 때에도 가치 있는 말씀을 전하며 살라고 하신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 삶의 거짓과 속임의 언어, 행동들을 골라내고 스스로 더 깊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속이는 시냇물 같은 시기에 더욱 가치 있는 금과 다이아몬드로 바꾸고 계신다.

둘째는 사람들을 쫓지 말고 그들을 돌아오게 하라
가치 있는 말씀을 전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면 진리가 새 부대에 가득 채워진다. 진리로 내면에 채워지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면 우리의 내면에 진리로 채우는 일에 더 많은 마음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우리의 내면에 진리가 아닌 거짓으로 채워질 때 우리는 사람들을 연연하며 쫓아가게 된다. 우리의 영혼이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지면 그 진리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입으로 삶으로 전달하게 된다.

그때에 하나님은 당신의 삶을 하나님의 입이 되게 할 것이다. 당신은 새 부대가 되어가고 있는가?

예수님처럼

누가복음 5:27-35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설교 요약>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죄를 사하러 오신 분이심을 가버나움의 중풍병자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위대한 성자 정도로 본다면 생각과 마음으로부터 갈등이 생기면서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는 자들까지 정죄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그분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게 되면 변화가 시작된다. 우리는 세리 레위를 통해서 예수님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예수님의 관심
첫째는 죄인의 회심- 가버나움에 살던 레위는 이미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을 알고 있었지만 삭개오처럼 예수님께로 갈 용기가 없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경멸의 대상으로 여기는 세금을 부당하게 거두는 세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문 27-28절에 보면 예수님이 그를 부를 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 말씀을 보면 베드로, 나병환자. 중풍병자 그리고 레위도 예수님을 만나 모두 죄 사함을 경험했던 죄인들이었다. 또한 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곳이며 자신들이 죄인 됨을 보고 회개하고 죄 사함을 경험하고 거듭나는 곳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한 영혼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는가에 가장 큰 관심이 있다. 이것이 예수님의 관심이다.

둘째는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것- 29절에 보면 레위가 예수님을 위해서 큰 잔치를 연다. 즉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영혼이 기뻐하게 된다. 누가 복음 15장에 양 백 마리가 있는 목자가 한 마리를 잃고 찾았을 때와 열드라크마 중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그리고 탕자가 아버지의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와 여인 그리고 목자는 가장 먼저 잔치를 벌였다. 이것이 하늘의 천사들의 기쁨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며 예수님의 기쁨인 것이다. 레위의 기쁨과 잔치는 그가 만든 기쁨이 아니고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음 맛보는 기쁨인 것이다.

셋째는 죄인의 회심이 죄인들의 나아옴으로 이어지는 것- 29절에 보면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죄인을 부르시고 사랑을 주셨는데 그 한 사람 레위를 통해서 수 많은 죄인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회심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며 예수님의 관심이다. 그러나 이런 기쁨과 영혼이 성령충만할때 그것을 방해하는 세상의 소리가 있다. 이것을 이길 수 있는 것이 무언인지 예수님의 삶의 원리를 통해서 보자.

내면에서 비방의 소리가 들릴 때
첫째는 죄인들을 병자로 보라- 30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방한다. 이 비방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소리지만 우리의 내면에도 이런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죄인들끼리 서로 이해할 것 같지만 그들 사이에도 죄의 등급을 정하고 서로를 무시한다. 이럴 때 우리의 내면에는 네가 뭐가 부족해서 이런 죄인들과 상대하니 라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인들 같은 병자들을 고치시기 원하셨다. 즉 죄인들을 병자로 보고 그들에게 의사가 필요함을 인정하셨다. 그럼 우리들 마음에 불쌍한 마음, 즉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품을 수 있다.

둘째는 혼인 집 손님으로 보라- 33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금식하지 않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식탁에 몰려온 죄인들을 혼인집 손님들로 보았다. 당시에 혼인잔치는 우울과 슬픔이 아닌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에서 어떤 임금의 혼인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종들이 길가로 나가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왔는데 잔치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어두운 곳으로 쫓아내는 기준이 선한 자나 악한 자가 아닌 예복을 입지 않은 자인 것이다. 바로 이 예복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신 사랑과 은혜의 옷인 것이다. 나는 택함을 받았는가의 기준은 단순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의복을 입는 것이다. 이 의복의 의미는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음을 의미한다. 즉 모두가 죄인인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선인과 악인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로 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처럼 사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