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권세

누가복음 10:1-24
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살아 있는 사람인가?

누가복음 9:57-62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설교요약

유익을 추구하는 사람

57절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고백하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하나님의 일을 할때 외로움과 고난이 있음을 알수있다. 예수님의 대답속에 질문한 사람의 마음이 드러난다. 예수님을 따르면 많은 물리적인 유익을 누릴수 있을것 같아 따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위험한 것은 예수님을 따르다가 어려움이 오고 물리적인 유익이 보이지 않으면 언제든 떠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예수님이 이 사람에게 즉시 예수님을 따를때 오는 어려움과 고난을 말해준 것을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의 이런 반응은 이 사람이 잘못된 기초위에 자신의 믿음과 헌신을 쌓아올렸다가 훗날 크게 무너지는 것을 피하게 하기 위한 은혜였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과정속에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경험할때, 여러 어려운 상황들을 마주하게 될때 두가지 반응을 할 수있다. 첫째,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신 여우와 새는 거철할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둘곳 없다는 말씀을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이 내면에 숨어있던 잘못된 동기의 헌신과 욕망들을 고백하고 회개한다. 그리고 새롭게 품어야할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 둘째, 가치가 어려움과 외로움을 능가하게 한다.

도피하는 사람
59절 두번째 사람은예수님으로 부터 벗어날 핑계를 궁리한것 같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죽은자로 죽은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다. 믿지 않음은 영혼이 죽어있는 상태임을 알려 주셨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산자와 죽은자를 물리적인 것으로만 본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자와 죽은자를 영적으로 구분했다. 영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살았지만 죽어있는 상태다. 영혼이 죽어있는 상태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 내면에서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사랑과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죄의 유혹을 이길수가 없어 죄의 노예로 살아간다. 육신의 본능으로 살아간다. 당신은 이런 예수님의 시각이 있는가? 이 시각을 가질때 삶의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바울이 옥에 갖혀 골로새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을때,바울의 기도부탁은 육체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죽은 사람들로 보는 예수님의 시각과 같음을 본다. 바울은 순교를당했지만하나님은 바울이 감옥에서 쓴 서신들을 성경이 되게 하셔서 바울의 시대로 부터 2천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의 글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읽게 하시고 있다. 서신을 읽는 사람들의 영혼이 살아나고 믿음의 사람들에게 계속 생명을 주고있다.

살아있는 사람
영이 살아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한다. 죄의 유혹을 받지만 그 유혹을 말씀과 성령으로 이긴다. 내면에 두려움과 슬픔을 이길수 있는 평안과 기쁨이 있다. 더 이상 사단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지배와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간다. 특히 5 가지를 추구하며 산다. 
첫째,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늘 인식하며 산다.
둘째, 악한 것을 피한다.
셋째, 추적하며 산다. '의,경건,믿음, 사랑, 인내, 온유를 추적 'pursue' 하며 살게 된다. 이런 것들은 예수님의 성품이다.
넷째.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다. 하나님을 따르다 보면 아주가까운 가족들에게도 오해를 살때도있다. 쟁기를잡고 뒤를 돌아보게하는 것들은 먼관계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인 경우가 많다. 이때 믿음의 싸움을 하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우리의 내면에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Divine Appointment'를 따라가야 한다. 당신은 주님이 인도하시는 사람과 장소로 갈려고 매순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다섯번째, 영생을 붙든다. 

당신은 이 5가지를 추구하며 사는가? 
이런 영적인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하는 중요한 방해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 하는 사람의 이성과 감정이다. 당신의 이성과 감정은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는가? 당신의 이성과 감정에 의해 인도를 받고 있는가? 매순간 말씀이 당신을 읽게하고 기도가 당신을 읽게 하고 성령이 당신을 읽게 하라.

마음

누가복음 9:37-56
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설교요약

사랑하는 아버지가 악한 영에 고통 당하는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려오지만 제자들은 그 악한 영을 내쫓지 못한다. 누가복음 9장 1-2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지만 41절에 보면 그 주신 능력을 모두 상실한 상태였다. 그럼 제자들은 무엇 때문에 그 능력이 상실했을까?
마음의 부재
"믿음이 없는”의 원어적 의미는 "믿을 수 없는" 의미를 갖는다. 며칠 전만 해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놀라운 일들을 해냈다. 하지만 그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 믿음은 매 순간 마다 달라진다. 로마서 10장 10절에 보면 믿음은 마음에서 이루어 진다. 제자들의 마음이 세상의 정욕으로 기울어 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왜곡하다" 라는 의미가 있는 "패역한 세대" 라는 말을 같이 하셨다. 마음을 은혜와 진리로 새롭게 하지 않으면 그 결과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선물은 그 안에서 약화된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다. 즉 그리스도인은 믿음이 약해지고 세속적으로 될 때 그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스스로 분별해야 한다.
예수님의 마음
첫째는 넓은 마음이다. 12제자들이 누가 제일 큰 자인지 논쟁하기 시작했다. 그때 예수님이 어린 아이 하나를 자기 곁으로 세우신다. 그리고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 안에 주목 받고 사랑 받고 싶어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본 것이다. 또한 제자가 아닌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지 못함을 듣고 예수님이 하는 일에 반대하지 않는 자가 함께 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했던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망시키라고 했지만 그들의 혈기를 누르시는 예수님의 넓은 마음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넓은 마음은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정욕의 마음들을 스스로 보게 해 주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지 않아도 누군가를 통해 그 분의 일을 이루실 때 기뻐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길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훼방해도 혈기와 폭력으로 반응하지 않고 평화와 긍휼로 반응하는 마음이다.
둘째는 사랑의 마음이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엄을 보았고 모든 사람이 기뻐할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다. 악한 영으로 고침 받은 아이는 외아들이었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외아들이셨다. 예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심정을 아셨다. 즉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순전한 마음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실 수 밖에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셨다. 즉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할 때 우리들에게 부어진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차이는 사랑의 차이였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화된다고 마음이 의무적으로 사무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열정은 시간이 흘러도 천국 같은 환경과 은혜 속에 있다 와도 여전히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당신의 사랑은 여전히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아름다운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드린 헌신

고린도후서 8:1-5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설교요약>
저는 몽골에서 16년동안 사역을 한 임병철 선교사님입니다. 뉴욕은 저에게 아주 친숙한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대학을 나왔고 가정도 이루었던 곳입니다.  전에 있던 쌍둥이 빌딩에서 아이들하고 같이 사진도 찍고 선교 사역의 사무실도 있던 곳이 바로 엠엠씨가 있는 다운타운 맨하튼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곳에 차로 오면서 길을 헤매고 어려움을 겪어 지만하나님께서 주차 공간을 허락하셔서 쉽게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가 엠엠씨에서 설교할 때 교회의 형제, 자매님들을 만나게 되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몽골을 섬기려 오던 선교 팀의 고마움이 교차되면서 선교 팀이 전에 몽골 사역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가는 장면이 생각이 납니다. 이 척박한 몽골 땅과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갔던 선교팀원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전에 쌍둥이 빌딩에서 근무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기적으로 살아남에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 친구가 쌍둥이 빌딩 안에 있던 선교사무실에서 아프리카 선교를 준비하다가 그 친구가 아들이 킹더가든까지 바라다 달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그 친구가 목숨을 구했습니다. 내가 몽골에서 사역하고 선교 팀들을 매번 보내주신 엠엠씨 교회에서 설교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선교사들이 가장 힘든 부분들이 바로 가족들과 친구들과의 단절입니다. 몽골선교 때 자식들과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었지만 못 볼때가 정말 힘듭니다.

몽골에서 마지막 파송 예배때에 실버로 만든 그릇을 몽골 성도들에게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은 그릇은 두 달치 월급에 해당되는 값비싼 선물이며 블루 스카프에 위에 이 은 그릇을준다는 것은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몽골 성도들이 이 은 그릇을 저에게 선물한 이유가 바로 우리들이 당신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해서 주는 선물입니다. 몽골 교회에 수새라는 자매가 있는데 암 말기 환자였는데 하나님이 극적으로 치료해 주셔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수새자매는 가난한 분이었지만 그의 자녀 중에 3명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지금세 명의 자녀들이 러시아와 신장,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사가 파송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들에게 아름다운 헌신에 대해서 설교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결혼도 헌신에 속합니다. 헌신 없이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와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같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역한 몽골은 타국이고 문화, 환경이 다른 곳입니다. 제가 2010년에 안식년을 마치고 몽골에서 한 것이 바로 쵸카자매의 장례식입니다. 몽골의 장례식은 저희와는 다릅니다. 그들은 죽은 자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죽은 자들이 있는 무덤에 다시 찾아가지 않습니다. 쵸카자매는 예수님을 믿고 그녀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한 분입니다. 가장 가난했던 성도였고 본인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쳤던 자매였습니다. 매 순간마다 극심한 고통 속에 있던 자매였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심으로 행복했던 자매였습니다. 간암으로 투병했던쵸카자매가 교회 기간 연장을 위해서 병원을 탈출해서 몽골정부에게 3년을 연장해 줄 것을 요구했고 하나님이 몽골 정부 관계자들을 통해서 연장해 주셨습니다. 이 자매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헌금기도를 했을 때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린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주님 한데 자신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선교사로 간다는 것도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누군가에 헌신이 필요합니다. 선교는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너 자신을먼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해 주신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먼저 여러분, 자신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기 바랍니다.

영광스런 복음 _부활절

골로새서 1:4-5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설교요약>
구약과 신약의 공통된 주제 예수님

구약성경은 대략 32명의 저자들이 1100여년에 걸쳐 완성되었고 신약은 약 500여년에 거쳐 완성되었다. 구약은 주전 1500년에 기록을 시작하여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주전 400년 경, 신약으로 넘어오는 시기인 400년을 포함해서 구, 신약은 대략 1500~1600년의 시간이 소요되어 완성되었다. 구약은 1100년 동안 32명의 저자들에 의해 한가지 공통된 주제를 계속 기록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것이고 그분이 어떤 일을 할 것인가의 기록이다.

누가복음 4장 17-19절과 이샤야 61장 1-3절을 비교해 보면 이사야서의 '여호와의 영'은 누가복음에서는 '주의 셩령' 으로 표현되었고, 이사야서의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은 누가복음에 '복음'으로 표현 되었고, 이사야서의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은 누가복음과 같고, 이사야서에 '갇힌 자에게 놓임을'은 누가복음에 '눌린자를 자유롭게 하고'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여기에서 하신 말씀은 예수님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할것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음과 영혼과 육체가 사단과 어둠에 묶이고 병에 의해 고통받는 자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고, 슬픔대신 기쁨을 주어주시는 일을 하실것 임을 의미한다. 이사야 61장과 누가복음 4장에 기록된 동일한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과 복음'이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우리의 영혼에 부어질때 우리는 복음, 말씀을 가지고 한 영혼에게 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을 받아야함 이해되고 깨달아지고 믿어진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가난한자, 마음이 상한자, 포로된자, 갇힌자, 슬픈자들에게 나의 가난과, 상한 마음과, 어둠에 묵임과, 슬픈 영혼을 풀어주고 기쁨을 준 그 복음을 전해주고 싶은 열정을 갖게된다.

유월절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과 예수님의 체포는 같은 날짜인 목요일 저녁부터 시작된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 노예생활을 하다가 모세를 통해 극적으로 구원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1년 된 어린 수양이나 염소를 4일 전에 택하여 4일 동안 그 희생 짐승을 보면서 유월절을 깊이 생각하게 하고 14일 저녁 (목요일)에 짐승을 잡고 그 피로 자신의 집 문설주에 바르고, 그 밤에 고기를 불에 굽고 서서,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하게 먹으라고 명령 하셔다. 유월절 고기를 저녁에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었다. 유월절 저녁에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사람과 짐승의 장자를 천사를 통해 죽으셨다. 그러나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사람들의 집은 넘어가게 하셨다. 그래서 유월절은 양의 피로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형벌로 붜 은혜로 넘어가는 날이 되었다. 예수님이 유월절 시작되는 저녁에 로무군병에 의해 체포되었고 고난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결국 유월절 어린양으로 그 피를 흘리며 죽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사단의 속박에서 그의 피로 자유케 되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셨고 우리는 그 피의 은혜로 심판과 저주에서 자유케 되었다. 집 문설주에 바른 피는 예수님의 피를 마음에 받아드려 바르라는 의미이다. 특히 유월절 양의 뼈를 부러뜨리지 못하게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당시 로마군인들은 삽자가 죄수의 발을 망치로 부러뜨려 발을 받치고 숨을 쉬지 못하게 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게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그 다리를 꺽지 않았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 이심을 증가하기 위함이었음을 요한은 말하고 있다.

유월절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예표한다면 죽으신지 3일 만에 부활한 예수님의 일은 구역 출애굽기 14장 28-30절에서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3일만에 홍해 바다를 건너 죽음 직전에서 구원을 받았다. 이것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 말하고 있다. 세례는 물속에서 옛사람이 죽고 물 밖으로 나올때 새로운 생명을 얻는 부활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 한지 3일 만에 홍해 가운데서 옛사람은 죽고 3일 만에 새생명을 얻었다. 홍해의 붉은 물은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한다. 예수님도 죽은지 3일 만에 부활하셨다. 부활의 증거들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었다.

복음안에 있는 축복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소문을 들었다. 그 믿음과 사랑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하늘에 쌓아두신 소망에서 왔다. 그 소망은 진리의 말씀이 있는 복음을 들을 때 그들에게 왔다.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에 소망이 생긴다. 그 소망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쌓아두신 것으로 믿을때 그 사람에게 주어진다. 복음은 슬픔을 치료한다. 고통을 기쁨으로 바꾼다. 우리의 마음은 주님을 알기 전에는 절망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들으면서 소망이 생겼다. 그 소망에서 믿음과 사랑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이것이 복음의 영광이다. 그래서 복음을 받으면 목숨을 걸고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 복음은 이 세상 어떤 협박과 고난과 유혹과 핍박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게한다. 그 이유는 이미 이 복음이 죽은 우리를 살려 주셨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피 흘리시며 죽으신 그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에게 찾아오셔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알려 주셨고 지금도 그 사랑을 부어 주시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를 바꾸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