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보이지 않는 전쟁

여호수아 1:1-6
1 여호와의종모세가죽은후에여호와께서모세의수종자눈의아들여호수아에게말씀하여이르시되
2 내종모세가죽었으니이제너는이모든백성과더불어일어나이요단을건너내가그들곧이스라엘 자손에게주는그땅으로가라
3 내가모세에게말한바와같이너희발바닥으로밟는곳은모두내가너희에게주었노니
4 곧광야와이레바논에서부터큰강곧유브라데강까지헷족속의온땅과또해지는쪽대해까지너 희의 영토가 되리라
5 네평생에너를능히대적할자가없으리니내가모세와함께있었던것같이너와함께있을것임 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담대하라너는내가그들의조상에게맹세하여그들에게주리라한땅을이백성에게차지 하게 하리라

<설교요약>
음식의 재료나 장식도 중요하지만 입맛이 없으면 모든 것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눈에 띄게 보이는 영역보다는 보이지 않는 영역이 실제로는 더 중요합니다.  즉 음식에는 입맛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근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신명기 3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더 자주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 하라고 하십니다. 여호수아는12명의 정탐꾼 중에 가장 용감한 사람이며 40년동안 모세와 함께한 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여호수아에게 계속해서 강하고 담대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 땅의 정복은 보이는 육적인 전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전쟁 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7:10-13에 보면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이스라엘이 용감해서가 아니라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겼기 때문입니다. 선교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수아와 같이 믿음이 강하고 담대할 때 아름다운 사역을 완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후에 3가지 단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방법들을 보여주십니다.

 첫째는 법궤가 먼저 요단강을 건넌 것입니다.  여호수아 3장 3,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지키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적군을 이기기 위해서 특공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궤를 먼저 건너게 하는 무모한 작전을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이해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는 겁니다. 이 순종에는 반드시 믿음의 강함과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적들이 있는 길갈에서 이스라엘 남자에게 할례를 요구한 것입니다. 할례를 받으면 대항할 수도 없고 적이공격하면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전투의 승리를 위한 군사적 준비보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를 확실히 지니는데순종합니다. 여호수아는 바로 앞에 적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그의 믿음을 보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먼저 크리스천으로서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셋째는 여리고 성의 점령입니다. 하나님은 상식에 맞지 않는 명령으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를 점령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지만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과 이 땅을 주실 것을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그 결과로 적과의 싸움 없이 완벽한 승리를합니다. 실상은 그들이 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강하신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강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의 순종은 강하고 담대한 믿음 없이는 순종하기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 하라”

마지막 소원

요한복음 17:1-11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에베소서 2:10-18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설교 요약>
요나와 하나님
하나님이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셨지만 그는 도망갔다. 이스라엘의 숙적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를 회개시키려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피할 수 없었던 요나는 니느웨로 향하지만 말씀을 대충 전하며 전속력으로 성읍을 통과한다. 그러나 그의 바램과는 달리 니느웨 전체가 회개하고 요나는 하나님께 자기를 죽여달라고까지하며 그들의 구원을 견딜 수 없음을 표출한다. 니느웨가 다시 죄 짓고 멸망하기를 바랬던 요나는 성읍이 내려다 보이는 뜨거운 햇볕 아래 거처를 마련하고, 기진맥진한 요나에게 박넝쿨의 교훈을 통해 니느웨, 즉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다. 선택되고 구원 받음에 기뻐했으나 이방 족속들의 멸망까지 바랬던 이스라엘을 대변한 요나는 하나님이 제사장으로 부르신 자로서 이방 땅과 하나님을 이어주는 통로의 역할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

하나님과 이방인, 제사장이 된 이스라엘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방 땅을 이스라엘과 구분하시고 때로는 진멸하시기까지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이 더 특별하거나 숫자가 많거나 하나님이 더 사랑하셔서가 아니었다. 이방 땅에 마치 영적 전염병처럼 급속하게 퍼져나가던 우상 숭배와 타락한 문화 때문이었다. 오히려 가장 미약한 민족인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인류 구원의 계획을 실천하심으로 하나님의 강하심을 드러내셨다. 그 구원의 역사 속에 이스라엘은 특별한 위치를 갖게된 것이다. 요나서에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과 이스라엘을 제사장으로 택하신 역할이 분명히 나타난다.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대신해 제사를 드리는 특별한 임무. 즉, 하나님 말씀을 보존하고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게하는 영광스러운 통로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미완의 교회, 예수로 허문 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할 때부터 그를 통해 열방을 축복하려 하셨지만, 예수님이 오셨을 때까지도 축복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자손으로 오신 나사렛 예수를 통해
 시작된 ‘교회’는 모든 민족들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퍼져나가고 있다.  창세기 12장의 약속은 지금도 우리 눈 앞에서 진행 중이다. 그 약속을 성취하는 일에 주님 손 잡고 함께하는 것이 교회다. 그래서 우리가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할 때 복의 근원이 된다는 영광스런 약속과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리니'라는 말씀이 성취된다. 
이런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를 축복할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받게될 것이다. 본문 속에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된 새로운 사람은 바로 ‘교회’다. 본문 14절과 16절에서 두번이나 ‘원수’를 허물고 소멸했다 말한다. 그리스도 교회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원수로 삼는 대상이 남아있는 일이다. 주님께서 육신으로 그 원수 되는 담을 허무셨고 십자가로 원수를 소멸하셨기 때문이다.

용서와 화해하지 못하는 저주
때문에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본인 선택에 달린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용서하지 않으시겠다고 분명히 경고하셨기 때문이다. 용서 없이 화해하고, 화해 없이 사랑할 수 있겠는가? 용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옵션이 아닌 필수 요소로 신앙 생활의 시작이다. 용서는 화해와 차이가 있다. 화해는 관계를 되돌리는 것이지만, 용서는 예수님과 함께 미움과 원망, 분노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용서의 완성인 화해까지는 못가더라도 
일차적 용서는 반드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용서해야 용서 받고 해방된다.
 용서는 용서 받을 자격이 조금도 없는 사람한테 주는 사랑이다. 특히나 죽을 죄에서 용서 받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핏줄된 형제를 용서하고 화목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이었으나 그 아들의 죽음으로 하나님께 용서 받고 샬롬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증오와 죽음, 어둠으로 가득찬 이 세상이 본 적 없는 새로운 인류, 하나된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한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과 진정으로 화목하게 되고 지금까지 누리지 못한 더 깊은 용서와 사랑, 자유함을 만끽하며, 묶여있던 축복들이 부어지며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4-9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 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 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눈부신 세상의 빛

에베소서 2:1-5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 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