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의 사랑과 영광

누가복음 9:7-17
7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8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9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설교 요약>
예수님께서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5천명을 먹이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의 생각은 예수님과 달랐다. 제자들은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자고 했다.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밖에 없음을 알고 불가능 할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타당한 이유들을 대며 현명한 제안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다. 예수님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만 있다는 것을 아셨고 알아보게 하신것도 예수님이시다.
제자들은 큰 무리가 부담스러워 빨리 돌려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으로 긍휼히 여기셨고, 이렇게 하신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 여러가지를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결국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오병이어의 기적은 소유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내면의 긍휼과 사랑이 많고 적음의 문제 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제자들의 근본적인 요소는 소유의 문제였고 예수님은 가진 소유가 없어도 사랑으로 그들에게 배푸셨다. 

벼랑끝에 서게하신 예수님 그리고 그 이유
제자들은 예수님없이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 위대한 일을 했다. 그리고 얼마나 영향력이 컸던지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왕의 귀에 까지 이 위대한 일들이 전해졌다. 이런 놀라운 일들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현실의 문제에 봉착했다. 예수님이 만든 상황에 제자들은 현실적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을 하심으로 불가능한 상황 앞에 서게 하셨다.

예수님은 왜 제자들을 벼랑끝에 세우셨을까? 첫째. 예수님은 제자들의 사역보다 사랑이 더 커져 나가길 원하셨다. 제자들은 마을들을 다니며 헤롯왕까지 반응할 정도의 영향력을 끼쳤다. 유명해졌고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오병이어의 상황 앞에서 그들은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긍휼이 적음을 알려주셨다. 사랑보다 사역이 더 커지면 하나님이 어떤 일의 결정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가진 소유의 크기로 하나님을 잘라낸다. 예수님은 전도여행을 마친 제자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 마을로 떠나셨다. 그러나 무리가 예수님이심을 알고 따라갔고 예수님은 그들을 영접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 하시며 병 고침이 필요한 사람들을 고치셨다. 예수님은 조용한 시간을 깨뜨린 사람들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영접'해 주셨다. 예수님을 사람을 좋아하시고 사랑하였고 정도 많으셨다. 예수님은 무리를 돌려 보냈으면 하는 부담감을 가진 제자들의 영혼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고 도전하심으로 그들 자신 안에 있는 무정함과 더 확장 되어야 할 사랑의 필요를 보게 하셨다. 이것은 우리의 사랑이 더 확장되고 커지는 순간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 되는 일이 일어날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 원하신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영광 따윈 관심이 없다. 죄성 때문이다. 자신의 만족과 영광을 추구하며 산다. 오늘날의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생각속에는 부족함이 없고 풍성하고 모든것이 다 채워져 있는 곳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 반대의 상황은 예수님이 없거나 반쪽 밖에 없다. 하지만 말씀은 예수님이 계심에도 벼랑끝에 서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삶의 배가 가라앉으려 해도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예수님이 더이상 너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고 속상해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함께 하기 때문에 벼랑끝에 서게 되었다'고 속삭이신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육지로 들어갈수 있었다. 그러나 홍해 앞에 막다른 벼랑끝에 서게 하신분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 계신대도 사람 숫자에 비해 가진 것인 비교도 되지 않게 작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뿐이었다. 홍해속에 수장된 바로의 군대를 보면서 무사히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아니었다면 볼 수 없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벳새다 광야에서 날이 저물고 5천명이 먹고 잘 곳이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오병이어를 통해 5천명 이상을 먹이시는 예수님을 경험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 고통과 깊은 절망의 삶을 살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살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누군가를 풀어주고 치유하고 자유케 하실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살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신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누군가를 풀어주고 치유하고 자유케 할것이야'라고 기대하라. 이것이 사랑이자 영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