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영성

누가복음 1:80
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설교요약>
심령이 강해져야 할 이유
최초의 아담과 하와의 영은 하나님의 음성을 쉽게 듣고 이끄시는 대로 순종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이 무엇인지 쉽게 분별했으며 마음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은 직후 그들의 영과 마음은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은 벗은 자신들의 몸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당시 에덴 동산에 계시던 하나 님은 그들을 수치스럽게 보시지 않았다. 또한 아직 사람들은 그들 둘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건 강했던 마음이 퇴색되었다. 그들의 마음에 영향을 준것은 그들과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에 있었 다. 한가지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할것은 아담과 하와는 심령이 강해지기 위해 무엇을 한것이 없다.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했을때 범죄하기 이전에 그들의 심령은 강해 있었다. 심령이 강한것은 수치심, 두려움 없는 하나님 앞에서의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함과 자유와 기쁨의 영혼의 생동력으로 드 러났다. 또한 그들 스스로 심령을 약하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불순종 했을때 그들의 영 혼은 두려움과 수치감으로 약해졌다. 강해지는 것도 약해지는 것도 능동적이지 않고 수동적이다.

광야의 영성
요한의 심령이 강해진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강함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되 었다. 그가 그렇게 계속 강해질수 있었던 것은 그의 능동적인 반응에 있었다. 그는 '광야'에서 성장 했다. 광야는 조용하다. 조용하면 생각이 맑아진다. 생각이 맑아지면 어떤것이 하나님의 생각인지 사단의 생각인지 자신의 생각인지 분별하게 되고 하나님의 생각을 붙잡게 된다. 그 결과는 생명과 평안이다. 광야는 볼것이 별로없다. 볼것이 많으면 시선이 분산된다. 시선이 분산되면 마음이 불안 해 진다. 광야는 인위적으로 만든것 보다는 자연 그 자체를 보게 해준다. 상점도 사람도 집도 없다. 오직 자연뿐이다. 하나님이 만든 자연을 바라볼수록 시선이 하나님께로 집중된다. 영이 새로워 지고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한다. 광야는 소유가 없다. 광야는 집이 아니라 텐트를 사용한다. 광야는 적은 가방일 수록 좋다. 옷도 먹는것도 소박하다. 소유가 많아질수록 근심도 많이진다. 소유가 적어질 수 록 탐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넓어진다. 광야는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에 집중할수 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광야가 내면에 평안과 담대함을 주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채우신다. 하나님이 없으면 아 무리 광야에 있어도 무언가로 빈내면을 채우기 위해 불안해 한다.

예수님은 광장의 삶을 즐기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와 생명을 주셨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셨 고 어떤결정을 해야 할지 아셨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아셨다. 그런 명료하고 단순한 삶은 예수님의 광야의 삶에 있었다. 영혼의 광야가 뿌리라면 광장의 삶은 열매다. 광야 없는 광장의 삶은 쉽게 깨 지고 상하고 동화되고 절망케 한다.

광야의 열매들
1)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인 가치를 보는 영혼의 눈을 주셨다.
사람은 자기가 가치를 둔것에 의해 그 행동이 결정된다. 만약 요한이 외적인 옷이나 장식품과 물질 의 양에 가치를 두며 살았다면 그는 이런 엘리트의 사람들의 외모와 가진것 앞에서 눌리거나 움추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전혀 이런 것에 가치를 두지 않았음을 그의 내면을 꿰뚫어 보며 선포 하는 말속에서 알수있다. 이런 진정한 가치를 볼수 있는 눈은 세상의 쾌락과 정욕을 멀리하며 거룩 한 삶과 고독한 삶을 추구한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 보낸 그의 축척된 삶에 있었다.

2) 사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평가하게 한다.
요한이 자신을 대중에게 대단한 선지자로 어필하기 위한 영웅심리도 아니었다. 가진 자들에 대한 반 감과 열등감도 아니었다. 요한은 종교지도자들과 가롯유다가 안정감을 두었던 돈과 사람에게 안정 감을 두지 않았다. 요한은 사람이나 명예나 돈이 아닌 하나님께 자신의 평가를 맡겼고 안정감을 두 었다. 이것에 대한 증거는 그의 고백속에 있다. 요한은 이사야를 통해 700년전에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임을 알았다.

- 요한은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랑했다.
그가 독설을 퍼붓는것 같지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 더 이상 이용과 위선과 두려움으로 살지 않고 자유와 기쁨과 사랑으로 살기를 원하는 진실이 있다.

- 요한은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정직했다.
자신에게 나오는 엘리트를 이용해 권력과 호사와 인기를 누리려는 욕심이나 이용의 마음이 전혀없 다. 이 모든것과는 비교할수 없는 하나님의 크심을 알았고 그분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광 야에서 알았기 때문이다.

- 요한은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원했다.
그래서 진통제가 아니라 예수님께 근본적인 수술을 받게했다. 광야의 시간을 회복하자.

천국의 열쇠

누가복음 1:57-79
57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58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59 팔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60 그 모친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61 저희가 가로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62 그 부친께 형용하여 무엇으로 이름하려 하는가 물으니 
63 저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은 요한이라 쓰매 다 기이히 여기더라 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65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중에 두루 퍼지매 
66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꼬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하심이러라 
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74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설교요약>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사가랴는 성령 충만함을 얻었고 아무나 볼 수 없던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을 통찰할 수 있었다. 과연 그가 깨달은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일까?

원수로부터 구하러 오신 예수님에 대한 통찰
누가복음 1장 71절에 보면 성령의 감동으로 사가랴는  그의 피로서 우리를 마귀의 손아귀로부터 구원하실 예수님을 예언했다. 우리는 죄인이고 그 죄값을 치루기 전에는 마귀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그 모든 빚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자신이 모두 지불하셨고, 그로 인해 우리는 빛 가운데서 두려움 없는 사랑과 기쁨으로 주를 섬기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바울은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2-4) 라고 표현했는데, 여기서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의미한다. 즉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 속한 시민들이기 때문에 천국의 영향력과 축복들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나라가 요구하는 규칙과 원칙들을 순종해야 한다.

사랑 안에서 진실을 행하여 항상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라
에베소서 4장 15절에서 바울이 이미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말이다. 천국의 축복은 사랑과 진리 안에 있으며 진리는 예수님을 나타낸다. 즉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성경 말씀을 전하면 우리 내면에 진리가 가득 찬다. 또한, 'The Truth'는 '진실'로 번역될 수 있는데, 그리스도인은 진실된 말과 행동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면 천국이 열리고 그 안에 있는 자유, 기쁨, 평안,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를 채우게 된다. 또한 이런 진실은 사랑에 기초를 둔다. 구약의 요셉과 그 형들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천국을 누려야 하는지 보여준다.

순수함과 배려심
야곱은 라헬의 몸에서 난 요셉을 다른 자녀들 보다 더 사랑했다. 이로 인해 요셉은 17세 나이 다운 순수함도 있었지만, 다른 이의 감정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모습도 갖게 되었다. 그의 이기적 언행으로 인해 형들에게 미움을 많이 받았지만, 그는 정말로 형들을 좋아해서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주신 꿈을 두번씩이나 형들하게 전하게 된다. 그로 인해 분노한 형들이 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팔아버린다. 그 후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된다.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려 온 형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요셉 안에 있던 사랑을 더욱 더 성장시키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분량까지 만들어 주신다. 이런 인격의 변화 과정에서 천국의 축복이 흘러온다.

형들의 문제
아무리 미워도 형들을 만나기 위해 3일 동안 10시간을 걸어온 요셉을 노예상에게 팔아버린 형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들이 있었다. 첫째, 멀리서 요셉을 먼저 보고 죽이기를 꾀한 것이다. 둘째, 요셉의 말을 마음에 쌓아놓고 증오했다. 셋째, 요셉의 꿈을 축복하지 않고 저주했다. 넷째, 아버지의 고통을 즐겼다. 요셉과 아버지를 향한 섭섭함과 미움이 형들에게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복수는 잔인했고, 악했다. 요셉의 형들이 이런 악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 형들의 세계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닮았다. 우리가 살면서 비슷한 상황을 만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으로 반응해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아야 한다. 요셉의 이야기는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노예로 애굽에 끌려간 것이 다가 아니다. 임금의 신하 보디발의 집에서 누명을 쓰고 옥에 간 것이 끝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두번째로 높은 직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주변국들이 흉년이 들 때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로 인해 온 가족들의 살 길이 열렸다. 하나님의 영광을 그 우상의 땅에 드러냈다.

당신의 삶이 막힐 때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시지 않았다고 쉽게 단정짓지 마라.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가랴가 성령으로 통찰한 예수님을 통해서 온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축복은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자라가야 한다. 

더 깊은 은혜를 위하여

누가복음 1:24-56
24 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가로되
25 주께서 나를 돌아 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42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설교요약>
엘리사벳은 세례 요한을 잉태하고 5개월 동안 그 사실을 숨기며 은밀하게 살았다(눅1: 24) 그녀 평생의 치욕을 없애 주시기 위해, 늙은 나이임에도 주님께서 아이를 잉태하게 해주셨다 그녀는 고백했다(25) 엘리사벳은 누구 보다 경건한 여인이었고 평생을 하나님을 섬기고 따랐음에도 그녀 내면은 수치심으로 가득차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치욕이 아니라, 엘리사벳이 결핍 속에서 자신의 생각으로 그린, 잘못된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온 수치심이었다.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고 사람들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이런 잘못된 수치심으로 마음이 슬프고, 심하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닫게 하는 감정들이 있을 수 있다. 이 것이 주님을 따른지 오래 되어도 치유는 계속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삶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주어질 때 사단의 속임을 주의해야 한다. 사단은 크고 작은, 많은 고통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수치심을 갖게 해 우릴 묶어두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상처를 없애주시고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붙들어야 한다. 이 확신이 중요한 것은 당신이 대단한 일을 했거나, 대단한 것을 소유했을 때에도 계속 그 분의 은혜를 붙들며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사벳 임신 6개월째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28) 라고 하고 다시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30) 라며 그녀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말했다. 그녀에 대해 특출난 그 어떤 것도 기술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가 평범한 시골 아가씨였음을 보여준다. 마리아가 선택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엘리사벳도 마리아도 공통점은 은혜로 선택을 받은 것이다.

그럼 이렇게 중요한 하나님의 은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가?

아들 예수를 잉태하여 낳는 것이다. 마리아는 약혼을 마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평생을 살고 싶어 결혼을 기다리는 지극히 평범한 젊은 처녀였다. 그분의 이런 계획은 마리아의 삶을 힘들게 할 것이 뻔했다. 사람들에게 오해, 멸시, 거절, 미움 받을 것을 각오해야 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주시면서 은혜라고 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은혜와 다를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을 우리를 통해 하실 때 어떻게 그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가? 다음 네 가지를 생각해 보자.
1) 계시 (Revelation)-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을 미리 보내셔서,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할 것과 다니엘의 환상의 의미를 계시로 알려주셨다. 하나님은 오늘도 성경과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우릴 향한 그분의 비전을 알려주신다. 비전이 없는가? 성경과 성령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비전이 우리 영혼에 향기처럼 스며들 것이다.

2) 동의(Consent)- 예수님은 자신이 베풀어 주신 초자연적인 기적 자체가 사람들의 믿음의 대상이 되길 원치 않으셨다. 그 능력을 베푸신 하나님 자신을 주목하고 믿기를 원하셨다. 어떤 일에 동의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다. 그 일에 대해 적극 행동 하겠다는 의지의 결단이다. 그것이 없으면 그분과 교제도 없다. 교제가 없으면 기쁨도 없고 사랑과 행복도 없다. 믿음은 일이 아닌 하나님 자체 그분의 인격을 그리워하고 주목하는 것이다. 우린 일 때문에 힘든 것 보다 사랑하고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어 삶이 힘들어 질 때가 많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에 마음에 넣어 주신 본능이다.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

3)확인 (Confirmation)- 세번째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 방법은 확인이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성령의 감동으로 가브리엘과 마리아가 대화한 것을 옆에서 들은 사람처럼 모두 알고 아이를 잉태한 사실을 말했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분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계획을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을 성령의 사람을 통해 확인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어떤 비전이나 사명을 이미 동의했다고 할지라도 다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다시 컨펌해 주신다.

4) 확신 (Assurance)- 아무리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하나님께 받은 것을 알려주어도 내게 확신이 없다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자주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에게 하나님이 나를 통해 어떤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비전이 흐려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확신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강권 적인 기름부음으로만 확신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받은 순간부터 이루어 지기까지 계속해서 우리의 묶여 있는 영혼을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 풀어놓는 권세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 때 가장 먼저 우리의 영혼이 더욱 자유케 되고 담대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자유케 되는 것,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을 세상에서 죄에 매여 살던 영혼들에게만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미 주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아직도 내면에 더 터져 나와야 할 생수들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분의 비전을 사모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그들에게 더 깊이 있는 은혜를 주시기 원하신다. 당신은 그분의 비전을 사모하는가? 

더 큰 믿음을 위하여

누가복음 1:1-23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쌔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1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19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20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 
21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의 성소 안에서 지체함을 기이히 여기더니
22 그가 나와서 저희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줄 알았더라 그가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더니
23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설교요약>
바울에 동역자였던 누가는 데오빌로다라는 로마의 고위직으로 추정되는 수신자에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헌정한다. 하지만 누가는 데오빌로와 유사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전 세계의 이방인들에게 이 책들을 기록했을 것으로 본다. 누가는 8번째 반열에 속한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으로 누가복음을 시작한다.

결핍 속에서도 주님 말씀대로 사는 자들을 향한 보상
6절에 보면 사가랴만 의로운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인 엘리사벳도 의로운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런 삶의 결핍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님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묵묵히 주님을 사랑했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갔다. 사가랴가 성전에서 분향할 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이가 많아 잉태할 수 없는 엘리사벳에게 잉태할 것 라는 메시지를 준다. 왜 하나님께서는 가능한 시절이 다 지나간 다음에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어떤 일들이 진행되지 않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늘 하나님이 앞에 계심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의인인 것이다.

번거로운 과정을 선택하신 이유

13절에 보면 ‘네 간구를 주님께서 듣고 계신다’ 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가랴가 아이를 갖게 해 달라는 기도를 어느 시점부터 계속해서 듣고 계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마 사가랴는 현실적인 상황으로 가브리엘의 말을 믿지 못하며 그 이유로 10달동안 말을 못하게 된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가랴가 성전에서 분향하고 사람들이 중보기도를 할 때 이 같은 일을 하셨을까? 그 이유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더 큰 믿음으로 살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더 큰 믿음은 무엇일까?

첫째, 우리의 기도가 응답 되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계속 듣고 계심을 믿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시간 때에 아무리 나의 처지가 불가능한 상태라도 이루실수 있는 분이시다. 따라서 어떤 것을 구할 때 그것이 오지 않았다고 중단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다른 것으로 변형해서 주실 때에는 그것을 중단하고 다른 것을 구해야 한다.

둘째, 큰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어떤 것들이 주어지기 까지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하고 믿음으로 반응해야 만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매사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려고 그분의 음성을 먼저 들으려 한다. 이것이 큰 믿음이다. 그래서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광야의 학교를 통과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은혜이다.

셋째,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장애를 가능케 하시는 말씀을 믿으라. 20절에 보면 사가랴는 세가지 숙제를 천사로부터 받았다. 첫째는 지금부터 말을 못하게 된다. 둘째는 10개월 후에 다시 말을 하게 된다. 셋째는 아이가 10개월 후에 탄생한다. 사가랴는 기도하면서도 자신이 기도해 왔던 것을 믿지 못했다. 그러나 이 일이 이루어 지면 그는 자신의 이성적인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신뢰하는 사람으로 바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숙제를 주신다. 숙제는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이 해야 한다. 숙제를 통해 지식을 알아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숙제는 현실이 한계에 부딪칠 때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듣는 것이다. 그리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를 계속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을 맛볼 때 우리는 현실의 벽에 부딪칠 때도 평안히 담대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더 큰 믿음으로 변해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준 숙제 현실의 벽은 무엇인가?

사도행전 29장을 쓰는 사람들

사도행전 28:11-31
11 석달 후에 그 섬에서 과동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그 배 기호는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난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15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20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노라 
21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29(없음)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설교요약

첫째, 만남을 통해 일으키는 성령의 불꽃
바울은 처음 와 본 로마에서 풍랑을 만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그를 로마에 도착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이 원하는 땅에 바울이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여러가지의 방법으로 길을 열어 주셨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에는 하나님이 일으키는 위로와 도움의 사람들이 있다. 최종 목적지인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그곳에 있는 형제들이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나왔다. 이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바울을 만나기 위해 각기 다른 지역으로 부터 먼길을 달려온 것을 의미한다. 이 사람들은 약 30년 전에 (AD33년경/60-62년) 예루살렘에 왔다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제자들이 각국의 언어로 방언을 하는 것과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자들일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은지 25년이 흘렀는데도 그 사랑은 뜨거웠고 순수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인간적으로 볼때 바울은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로마에 온 것이 아니라 죄수의 몸으로 도착했음에도 그들은 그가 복음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바울은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했고 큰 위로를 받았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람에 대해 냉소적이던 사람들이 따뜻한 사람들로 변한다. 인종과 언어와 피부색과 빈부귀천으로 사람을 나누던 사람들이 그런 모든 것을 중단하고 모두를 존귀하게 대한다. 그 사람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감동으로 정과 사랑을 주기 때문에 그 만남들을 통해 서로가 재충전되고 채워지고 회복되는 성령의 불꽃(Spark)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너희는 성령의 약속하신 성령으로 표, 도장이 찍힌 사람' 이라고 말씀 하신다. 한번 찍힌 표는
지워지지 않는다. 누구도 그 소유권을 바꿀수 없고 빼앗아 갈수 없다. 표는 소유권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며 누구의 소유인가를 분명하게 가늠하게 해준다. 성령은 우리가 많은 것을 해줄순 없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작고 소박한 일들을 기쁨으로 하게 하신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하게 하신다. 죄를 회개케 하시고 마음이 완악해 지려고 할때 은혜로 녹이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고 그분의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낼수 없다. 사단은 아무리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떼어놓으려 해도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축복하신다.


둘째, 하나님이 인도 하시는 땅에는 제한적인 상황을 통해 이루시는 무제한의 일들이 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로마정부를 통해 바울이 셋집을 얻어 민간인과 섞여 살수 있도록 그 삶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바울은 여기에서 유대인들을 초청해 복음을 전했고 이방인들도 초청해 복음을 전했다. 더욱이 바울은 이 2년의 투옥생활을 하면서 지4권의 서신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들을 써서 교회로 보냈다. 이 서신서들은 지금 이순간도 어둠에 묵인 영혼들을 영혼들을 자유케 해주며 천국을 누리며 살게 해주고 있다. 2000천년 동안 셀수없는 사람들을 살리고 자유케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는 이 최고의 성경이 바울이 가장 제한적이고 육체적인 출입이 제한되어 있을 때 탄생했다. 우리는 주변의 화려하고 큰 일을 이루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가 작아지고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심하면 하나님에게도 거절감을 느끼게 되고 상대적인 열등감에 젖어들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작기 때문에 제한적이기 때문에 타인이 할수없는 일들을 이루어 가는 것들이 많이 있다. 바울은 자신의 묶임을 본것이 아니라 자신의 묶임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무제한의 능력을 보았다. 하나님은 약하고 힘없는 자들 이라도 그분을 의지할 때 아무도 해하지 않도록 자유롭게 왕궁을 드나들듯 많은 곳들을 왕래하게 하시는 것을 보여주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 분을 의지할때 부지런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개미처럼 준비하고 예비하고 포기하지 않는 인내를 주시는 분임을 알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심을 알게 하시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이 사도행전 29장을 써 나가길 원하신다. 그러려면 내 안에 사는 분이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령이심을 날마다 의지하고 인정해야 한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만이 하실수 있는 일들을 주목하며 귀하게 여기며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