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은혜

나훔 1:1-8
1 이것은 엘고스 사람 나훔이, 니느웨가 형벌을 받을 것을 내다보고 쓴 묵시록이다.
2 주님은 질투하시며 원수를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원수를 갚으시고 진노하시되, 당신을 거스르는 자에게 원수를 갚으시며, 당신을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하신다.
3 주님은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고 권능도 한없이 많으시지만, 주님은 절대로, 죄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는 않으신다. 회오리바람과 폭풍은 당신이 다니시는 길이요, 구름은 발 밑에서 이는 먼지이다. 
4 주님께서는 바다를 꾸짖어 말리시고,모든 강을 말리신다. 바산과 갈멜의 숲이 시들며, 레바논의 꽃이 이운다. 
5 주님 앞에서 산들은 진동하고, 언덕들은 녹아 내린다.그의 앞에서 땅은 뒤집히고,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곤두박질한다.
6 주님께서 진노하실 때에 누가 감히 버틸 수 있으며, 주님께서 분노를 터뜨리실 때에 누가 감히 견딜 수 있으랴? 주님의 진노가 불같이 쏟아지면, 바위가 주님 앞에서 산산조각 난다.
7 주님은 선하시므로, 환난을 당할 때에 피할 피난처가 되신다. 주님께 피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보살펴 주시지만,
8 니느웨는 범람하는 홍수로 쓸어 버리시고, 원수들을 흑암 속으로 던지신다.

<설교 요약>
유대인들은 원래 성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겼지만 포로생활 이후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통해서 회당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한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할 당시에는 5개 정도의 (에세네파, 열심당, 헤롯파, 사두개파, 바리새파) 당파들이 존재했으며 그들은 율법을 정치적, 종교적 유익에 따라 판단하고 해석했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로 인해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성취를 이루는 데 일조하게 된다. 특히 바리새파들은 유다가 멸망한 이유가 바로 율법에 대한 무지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불순종으로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교리화하고 체계화했지만 성경을 잘못 이해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했고 아직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유대인들이 있다. 

오늘의 본문은 엘고스 사람 나훔이 앗수르에게 주는 멸망의 메시지이다. 그의 예언은 니느웨 백성이 요나를 통해서 회개했지만 다시 옛 행위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진노한 메시지이다. 마태복음 12: 38-45에 보면 주님께서 니느웨 백성이 회개한 모습을 회개치 않는 바리새인들과 비교하신다. 요나서와 나훔서는 니느웨의 멸망과 회개를 촉구하는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요나서는 회개로 그 성이 심판에서 구원받았고 나훔서는 다시 타락한 그 성이 회개를 촉구하지만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두 책은 시간적으로 한 세대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성의 운명도 구원과 심판이 별개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우리에게도 요나의 시대와 나훔의 시대가 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고 회개를 통해서 구원의 기쁨을 누렸지만 나훔의 시대와 바리새인과 같이 형식적인 기도와 봉사, 열심으로 살 때도 있다. 하나님은 선하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지 않으면 심판 하신다. 만약에 우리가 죄를 지어도 심판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고아인 것이다. 심판은 두렵지만 심판을 보류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회개할 수 있다. 

나훔 1장에서 2-7절에 하나님의 다섯 가지 성품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은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다. 그 어떤 은혜와 열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던 사람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예수님께 죄를 회개하며 구원의 길을 가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한 모든 진노가 십자가 위로 쏟기 때문이다. 둘째는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다. 셋째는 하나님은 권능이 크신 분이다. 도저히 무너질 수 없던 견고한 니느웨성도 홍수로 인해서 쉽게 무너진다. 우리의 성공과 열심으로 쌓아온 견고한 것도 하나님 앞에서 티끌이다. 넷째는 하나님은 진노하실 때는 무섭게 진노하시는 분이다. 노아시대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처럼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죄악을 싫어한다. 우리의 열심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섬겨도 바리새인과 같이 외식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죄를 범할 수 있다. 다섯째는 하나님은 선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제 2의 요나와 같이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의인의 삶으로 살아갈 때 선하신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임하신다.  그럼 왜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

나훔서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죄가 나온다. 그것은 바로 교만의 죄이다. 이 교만은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전혀 생각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교만의 결과는 패망의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신다. 바울과 스데반 집사 같이 바리새인으로 태어나 자라지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순교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꺼지지 않은 은혜이다.

진리와 사랑을 입으라

에베소서 6:10-14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설교요약>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때 에베소에 교회를 세우고, 3차 선교 여행 때는 에베소의 두란노에서 2년 동안 제자들을 양육하면서 에베소 교회를 영적으로 활기찬 교회로 세우게 된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서신이 바로 에베소서인데, 그 서신은 성도들에게 영적 싸움에 대해 알려준다. 특히 1장에서 에베소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며 믿음으로 산 것에 대해, 바울은 늘 감사했지만 편지에 마지막 부분에서는 성령 충만한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더욱 더 그 분의 힘으로 강해져야 한다는 권면의 말씀을 하게 된다. 그럼 왜 주 안에서 더 강해져야 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11절에 나오는 마귀의 간계(길, 방법)이다. 따라서 성도가 믿음과 사랑이 있고 스스로 선 것 같더라도 더욱 더 주님 안에서 강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마귀는 계속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공격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사시기 전에 광야에서 마귀가 예수님에게 세가지로 유혹한다. 바로 “돌을 떡으로 되게 하라” 그리고 “성전의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하나님의 아들 됨을 증명하라”, “자신에게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 이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 유혹들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신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부 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마: 4:7)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 이때 싸움에서 패배한 마귀는 떠나갔다. 그 영적 싸움 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마태복음 4장 24절에 보면 마귀(루시퍼)의 졸개들인 귀신들도 패배하게 된다. 즉 마귀의 유혹인 세상의 영광, 과시욕 그리고 정욕들을 물리치면 그의 졸개 귀신들도 힘을 잃는다. 영적 전쟁에서 이기면 두 가지 유익이 있는데 그 하나는 그 전쟁을 통해서 더욱 더 성령의 사람으로 강해지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원수 사단이 패배하면서 한 도시에 살고 있는 수 많은 영혼들이 어둠에서 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 전쟁의 중요한 이유이다. 

마귀는 아직도 이 시대의 사람들의 세계관을 통해서 당신이 눈으로 볼 때 위대한 일을 해야만 당신이 사랑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유혹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 무장하라고 명령한다. 그 첫 번째 무기는 진리의 허리띠다. 진리를 취하지 않으면 영이 힘을 쓰지 못한다. 진리의 반대말이 거짓말인데 이것을 분별해 내는 것이 바로 진리인 것이다. 야고보서 2장 2-4절과 디모데전서 2장 9-10절에 보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차별하지 말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내면이 외적으로 그 사람의 인격을 판단한다면 스스로를 먼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음성, 즉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도록 성령님을 곁에 있게 하셨다. 성령님이 없이는 누릴 수도 필요를 얻을 수도 없다. 그런 의미로 성령님은 상속의 담보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을 받기에 충분한 담보가 없다. 그러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담보로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성령님을 담보로 주셨다. 그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신다. 

두 번째 무기는 의의 호심경이다. 사단은 사랑의 능력을 잘 알기에 집중적으로 심장을 향해서 공격한다. 생명의 근원이고 사랑의 시작인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흉패로 보호해야 한다. 이 흉패는 바로 예수님의 심장이다. 조건 없이 계산 없이 무조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을 줄 때 조심하라고 한다. 누가복음 14장 12-14절에 보면 예수님은 다시 받기 위해서 조건적이고 계산적으로 상대방에게 베푸는 것의 위험성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런 초대와 대접은 마지막에 하나님으로부터 상이 없다. 그러나 다시 되돌림 받지 못했거나 혹시 다시 되돌림 받는 베풂을 주었어도 계산 없이 순수하게 했다면 상급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따라서 계산하지 않고 준 것에도 보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이 땅에서 보상 받아도 천국에서 다시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계산적인 사랑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이렇게 할 때 의의 흉패를 우리의 심장에 붙이는 것이다.

우리는 소망이 없어 보이는 겨울나무처럼 도저히 살수 없을 것 같고 변화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곤 한다. 그러나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다시 부활시키고 바꾸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아무리 소망 없고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바꾸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부자 청년

마태복음 19:16-23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설교요약>
몽골에 마더스데이 카드를 보냈는데, 그 카드의 배경 이미지는 바로 몽골이었습니다. 하지만 몽골에서 카드를 받으신 분은 이 카드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미국인 줄 알았습니다. 맨하튼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하지만, 맨하탄에 거주하는 분들이 맨하탄 이미지에 감동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즉 본인들이 사는 지역과 환경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10년 전 미전도 지역이었던 몽골로 파송될 때 런던과 스페인과 같은 유럽이 선교사 필요 지역이 되버렸습니다. 100년 전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했던 유럽이 지금은 미전도 지역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 바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하는 지상 명령이며, 그 말씀 위에 예수님의 교회들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래서 선교는 하나님의 명령이자 축복입니다. 선교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후진국에서 선교할 때 직면하는 문제가 바로 가난입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세례를 받았어도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신앙을 버리고 떠나는 현지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를 믿고 축복을 받았지만 1~2년이 지나도 삶의 변화가 없고 오히려 지속되는 삶의 고통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구호 단체를 통해 천문학적인 돈이 아프리카나 아시아로 보내지고 있는데도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구호 물자는 현지인들에게 일시적 해결책은 되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물질적인 구호는 현지인들이 가난을 극복하게 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가난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고 없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의지가 부족해서 가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난의 원인은 바로 관계의 단절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그리고 이웃들과의 관계 단절로부터 기인합니다.

그럼 왜 이런 관계의 단절이 생기는걸까? 이것은 바로 정직하지도 근면 하지도 않고, 믿음도 없는 성품이 원인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을 스스로 신뢰할 수 있는 성품으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러면 문화 및 사회적 구조와 나아가 나라가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관계로부터 오는 우리의 나눔은 공동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눔과 희생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와 공동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미국의 가장 큰 적은 바로 개인주의 입니다.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그 이유는 희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부자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19장 16-23절에 보면 영생을 얻기 위해 계명을 지킨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너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어라'하신 말씀을 거부합니다. 부자는 재물이 많다는 뜻인데 부자 청년은 아직도 스스로가 가난하다 생각해서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눔을 거부한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사실 예수님의 눈에는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자 입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부자들이 많았습니다. 전 재산의 사분의 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준 삭개오와 예수님의 무덤을 제공한 아리마대 요셉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부자는 나누는 자입니다. 이것은 희생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선교는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후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생이 따르는 행위입니다. 지금도 미국은 전세계에서 제일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국가입니다. 이것이 미국을 지키는 힘이며 하나님이 이 미국을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맨하튼은 가장 복음화가 안된 지역입니다. 이 땅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분들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광야의 영성

누가복음 1:80
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설교요약>
심령이 강해져야 할 이유
최초의 아담과 하와의 영은 하나님의 음성을 쉽게 듣고 이끄시는 대로 순종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이 무엇인지 쉽게 분별했으며 마음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은 직후 그들의 영과 마음은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은 벗은 자신들의 몸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당시 에덴 동산에 계시던 하나 님은 그들을 수치스럽게 보시지 않았다. 또한 아직 사람들은 그들 둘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건 강했던 마음이 퇴색되었다. 그들의 마음에 영향을 준것은 그들과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에 있었 다. 한가지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할것은 아담과 하와는 심령이 강해지기 위해 무엇을 한것이 없다.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했을때 범죄하기 이전에 그들의 심령은 강해 있었다. 심령이 강한것은 수치심, 두려움 없는 하나님 앞에서의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함과 자유와 기쁨의 영혼의 생동력으로 드 러났다. 또한 그들 스스로 심령을 약하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불순종 했을때 그들의 영 혼은 두려움과 수치감으로 약해졌다. 강해지는 것도 약해지는 것도 능동적이지 않고 수동적이다.

광야의 영성
요한의 심령이 강해진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강함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되 었다. 그가 그렇게 계속 강해질수 있었던 것은 그의 능동적인 반응에 있었다. 그는 '광야'에서 성장 했다. 광야는 조용하다. 조용하면 생각이 맑아진다. 생각이 맑아지면 어떤것이 하나님의 생각인지 사단의 생각인지 자신의 생각인지 분별하게 되고 하나님의 생각을 붙잡게 된다. 그 결과는 생명과 평안이다. 광야는 볼것이 별로없다. 볼것이 많으면 시선이 분산된다. 시선이 분산되면 마음이 불안 해 진다. 광야는 인위적으로 만든것 보다는 자연 그 자체를 보게 해준다. 상점도 사람도 집도 없다. 오직 자연뿐이다. 하나님이 만든 자연을 바라볼수록 시선이 하나님께로 집중된다. 영이 새로워 지고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한다. 광야는 소유가 없다. 광야는 집이 아니라 텐트를 사용한다. 광야는 적은 가방일 수록 좋다. 옷도 먹는것도 소박하다. 소유가 많아질수록 근심도 많이진다. 소유가 적어질 수 록 탐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넓어진다. 광야는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에 집중할수 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광야가 내면에 평안과 담대함을 주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채우신다. 하나님이 없으면 아 무리 광야에 있어도 무언가로 빈내면을 채우기 위해 불안해 한다.

예수님은 광장의 삶을 즐기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와 생명을 주셨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셨 고 어떤결정을 해야 할지 아셨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아셨다. 그런 명료하고 단순한 삶은 예수님의 광야의 삶에 있었다. 영혼의 광야가 뿌리라면 광장의 삶은 열매다. 광야 없는 광장의 삶은 쉽게 깨 지고 상하고 동화되고 절망케 한다.

광야의 열매들
1)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인 가치를 보는 영혼의 눈을 주셨다.
사람은 자기가 가치를 둔것에 의해 그 행동이 결정된다. 만약 요한이 외적인 옷이나 장식품과 물질 의 양에 가치를 두며 살았다면 그는 이런 엘리트의 사람들의 외모와 가진것 앞에서 눌리거나 움추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전혀 이런 것에 가치를 두지 않았음을 그의 내면을 꿰뚫어 보며 선포 하는 말속에서 알수있다. 이런 진정한 가치를 볼수 있는 눈은 세상의 쾌락과 정욕을 멀리하며 거룩 한 삶과 고독한 삶을 추구한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 보낸 그의 축척된 삶에 있었다.

2) 사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평가하게 한다.
요한이 자신을 대중에게 대단한 선지자로 어필하기 위한 영웅심리도 아니었다. 가진 자들에 대한 반 감과 열등감도 아니었다. 요한은 종교지도자들과 가롯유다가 안정감을 두었던 돈과 사람에게 안정 감을 두지 않았다. 요한은 사람이나 명예나 돈이 아닌 하나님께 자신의 평가를 맡겼고 안정감을 두 었다. 이것에 대한 증거는 그의 고백속에 있다. 요한은 이사야를 통해 700년전에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임을 알았다.

- 요한은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랑했다.
그가 독설을 퍼붓는것 같지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 더 이상 이용과 위선과 두려움으로 살지 않고 자유와 기쁨과 사랑으로 살기를 원하는 진실이 있다.

- 요한은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정직했다.
자신에게 나오는 엘리트를 이용해 권력과 호사와 인기를 누리려는 욕심이나 이용의 마음이 전혀없 다. 이 모든것과는 비교할수 없는 하나님의 크심을 알았고 그분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광 야에서 알았기 때문이다.

- 요한은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원했다.
그래서 진통제가 아니라 예수님께 근본적인 수술을 받게했다. 광야의 시간을 회복하자.

천국의 열쇠

누가복음 1:57-79
57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58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59 팔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60 그 모친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61 저희가 가로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62 그 부친께 형용하여 무엇으로 이름하려 하는가 물으니 
63 저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은 요한이라 쓰매 다 기이히 여기더라 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65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중에 두루 퍼지매 
66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꼬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하심이러라 
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74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설교요약>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사가랴는 성령 충만함을 얻었고 아무나 볼 수 없던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을 통찰할 수 있었다. 과연 그가 깨달은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일까?

원수로부터 구하러 오신 예수님에 대한 통찰
누가복음 1장 71절에 보면 성령의 감동으로 사가랴는  그의 피로서 우리를 마귀의 손아귀로부터 구원하실 예수님을 예언했다. 우리는 죄인이고 그 죄값을 치루기 전에는 마귀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그 모든 빚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자신이 모두 지불하셨고, 그로 인해 우리는 빛 가운데서 두려움 없는 사랑과 기쁨으로 주를 섬기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바울은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2-4) 라고 표현했는데, 여기서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의미한다. 즉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 속한 시민들이기 때문에 천국의 영향력과 축복들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나라가 요구하는 규칙과 원칙들을 순종해야 한다.

사랑 안에서 진실을 행하여 항상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라
에베소서 4장 15절에서 바울이 이미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말이다. 천국의 축복은 사랑과 진리 안에 있으며 진리는 예수님을 나타낸다. 즉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성경 말씀을 전하면 우리 내면에 진리가 가득 찬다. 또한, 'The Truth'는 '진실'로 번역될 수 있는데, 그리스도인은 진실된 말과 행동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면 천국이 열리고 그 안에 있는 자유, 기쁨, 평안,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를 채우게 된다. 또한 이런 진실은 사랑에 기초를 둔다. 구약의 요셉과 그 형들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천국을 누려야 하는지 보여준다.

순수함과 배려심
야곱은 라헬의 몸에서 난 요셉을 다른 자녀들 보다 더 사랑했다. 이로 인해 요셉은 17세 나이 다운 순수함도 있었지만, 다른 이의 감정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모습도 갖게 되었다. 그의 이기적 언행으로 인해 형들에게 미움을 많이 받았지만, 그는 정말로 형들을 좋아해서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주신 꿈을 두번씩이나 형들하게 전하게 된다. 그로 인해 분노한 형들이 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팔아버린다. 그 후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된다.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려 온 형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요셉 안에 있던 사랑을 더욱 더 성장시키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분량까지 만들어 주신다. 이런 인격의 변화 과정에서 천국의 축복이 흘러온다.

형들의 문제
아무리 미워도 형들을 만나기 위해 3일 동안 10시간을 걸어온 요셉을 노예상에게 팔아버린 형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들이 있었다. 첫째, 멀리서 요셉을 먼저 보고 죽이기를 꾀한 것이다. 둘째, 요셉의 말을 마음에 쌓아놓고 증오했다. 셋째, 요셉의 꿈을 축복하지 않고 저주했다. 넷째, 아버지의 고통을 즐겼다. 요셉과 아버지를 향한 섭섭함과 미움이 형들에게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복수는 잔인했고, 악했다. 요셉의 형들이 이런 악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 형들의 세계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닮았다. 우리가 살면서 비슷한 상황을 만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으로 반응해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아야 한다. 요셉의 이야기는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노예로 애굽에 끌려간 것이 다가 아니다. 임금의 신하 보디발의 집에서 누명을 쓰고 옥에 간 것이 끝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두번째로 높은 직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주변국들이 흉년이 들 때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로 인해 온 가족들의 살 길이 열렸다. 하나님의 영광을 그 우상의 땅에 드러냈다.

당신의 삶이 막힐 때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시지 않았다고 쉽게 단정짓지 마라.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가랴가 성령으로 통찰한 예수님을 통해서 온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축복은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자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