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면서 따르는가?

누가복음 9:18-26
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설교 요약>
사도 바울은 신약 성경 27권 중에 13권을 썼다. 이런 그의 생애는 크게 세 기간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번째 기간은 AD 6~33년으로 탄생과 교육의 시기이다. 바울은 유대인이자 다소의 시민으로 탄생 했다. AD 20~30년은 바리새인 이 되기 위해 가말리엘 밑에서 율법을 공부했다. AD 30~33년에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었다. 두번째 기간은 AD 33~57년으로 다메섹에서 거듭나서 선교사로 살아간 시기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러 가던 중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이 후 광야에서 삼 년간 머물다 다메섹에 돌아와 예수님을 전하며 설교를 시작했다. 하지만 박해를 받게 되어 예루살렘으로 피신, 사도들을 만나 다소와 주변 지역에 말씀을 전하던 중에 바나바에 의해 안디옥 교회에 초대되어 함께 사역 하다 그 교회의 초대 선교사로 함께 파송된다. 

세 차례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후송, 투옥 중에 많은 서신들을 썼다. 세 번째 기간은 AD 57~64년으로 로마에서 체포되어 순교한 시기이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있다가 로마로 후송되어 복음을 전하는 중에 네로 황제 때 목이 잘려 순교했다. 예수님의 생애도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B.C 4 세기에 베들레헴 에서 탄생. A.D 25~27년, 제자를 선택하고 복음을 전하신 공생애의 삶을 사심. A.D 29~30년,십자가에 못박히신 후 부활 하시어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승천. 평범한 30년, 공생애 3년,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3일, 예수님의 생애도 3 이라는 숫자로 순행하셨다. 오늘 말씀인 누가복음 9:23절도 3년 간의 공생애 중 하신 말씀이다. 헌신적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라 하셨다. 이 말씀은 헬라어 '길'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나를 따르라'는 '함께 같은 길에 있다'의 의미다. 즉, 따르는 이들에게 방심하지 말고 예수님을 잘 따르는지 늘 깨어있으라는 말씀이라 볼 수 있다. 그럼 예수님을 잘 따르며 그 분과 같은 길에 서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따르는 자들의 세 가지 증거
첫째, 자기 부인이다. 이 것은 세 영역을 통과해야 한다. 우선 생각이다. 집착, 욕심, 고집, 탐욕, 조급함 등을 내려놓아 야 한다. 내려놓음 자체가 율법이 되거나 기쁨이 없다면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과 음성을 들으면 기쁨으로 계속해서 내려놓고 싶고 기대가 생긴다. 다음 영역은 말이다. 말은 대화와 기도로 나눌 수 있다. 대화와 기도로 주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시인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우리의 죄성으로 인해 부정적인 말들이 입 밖 으로 나온다. 이 때 의지적으로 믿음의 말을 해야하며, 우리가 시인한대로 예수님이 이루어 주신다. 마지막은 의지다. 믿음의 생각과 말이 행동까지 가야한다. 만약 이 세 영역에서 변화되고 있다면 당신은 자기 부인의 삶, 예수님과 같은 길에 서 있다. 둘째, 예수님은 십자가를 날마다 지라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한 때 추억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수님은 매일, 매순간,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십자가를 지라 하신다. 셋째,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 하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천국을 누릴 수 있게 십자가에 죽으셨다. 십자가는 누군가를 치료하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빼내다 격는 고난, 억울함, 박해 받음, 사명, 한 영혼을 위해 흘리는 정신적, 육체적, 영적인 피다. 당신의 십자가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십자가를 지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예수님의 상급
주님은 자신에게 주신 사명으로 희생을 당하며 살게될 것이라 하셨다. 당장에 천국에 가는 것만이 구원이라면 우리는 죽기만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목숨' 은 헬라어로 '푸쉬케'로 마음, 영혼이란 뜻도 있다.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붙들고 희생하며 살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축복을 받는다. '잃어도 산다' 고 말씀하신다. 주님 때문에  찢기고 아프고 소생 불가능한 마음도 다시 살아난다. 어떤 것들이 살아날까? 영혼의 거룩, 하늘의 기쁨이 충만, 담대해짐, 더욱 주님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 두려움 없는 평안, 주님의 음성을 쉽게 듣게 됨, 예수님처럼 살게 됨, 하나님이 모든 쓸 것을 채우심,

예수님 닮은 제자들이 열매로 일어남, 사랑과 긍휼의 면류관이 쓰여지는 10가지 축복이 임한다. 이 세상 어디에도  상급을 사랑과 긍휼로 주는 곳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그 분을 위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기꺼히 죽고자 하는 자들에게 상급으로'사랑과 긍휼의 마음' 을 면류관을 주신다.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헌신을 하고 삶을 드리고 가진 것을 내려놓음을 상급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나?  우리는 이 땅에서 소유가 적은 것을 복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며, 애통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식고 냉혹해 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여러분의 십자가는 무엇인가?  주님을 따르자. 계속 따르자. 더 뜨겁게 따르자. 

벼랑 끝의 사랑과 영광

누가복음 9:7-17
7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8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9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설교 요약>
예수님께서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5천명을 먹이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의 생각은 예수님과 달랐다. 제자들은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자고 했다.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밖에 없음을 알고 불가능 할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타당한 이유들을 대며 현명한 제안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다. 예수님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만 있다는 것을 아셨고 알아보게 하신것도 예수님이시다.
제자들은 큰 무리가 부담스러워 빨리 돌려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으로 긍휼히 여기셨고, 이렇게 하신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 여러가지를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결국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오병이어의 기적은 소유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내면의 긍휼과 사랑이 많고 적음의 문제 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제자들의 근본적인 요소는 소유의 문제였고 예수님은 가진 소유가 없어도 사랑으로 그들에게 배푸셨다. 

벼랑끝에 서게하신 예수님 그리고 그 이유
제자들은 예수님없이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 위대한 일을 했다. 그리고 얼마나 영향력이 컸던지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왕의 귀에 까지 이 위대한 일들이 전해졌다. 이런 놀라운 일들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현실의 문제에 봉착했다. 예수님이 만든 상황에 제자들은 현실적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을 하심으로 불가능한 상황 앞에 서게 하셨다.

예수님은 왜 제자들을 벼랑끝에 세우셨을까? 첫째. 예수님은 제자들의 사역보다 사랑이 더 커져 나가길 원하셨다. 제자들은 마을들을 다니며 헤롯왕까지 반응할 정도의 영향력을 끼쳤다. 유명해졌고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오병이어의 상황 앞에서 그들은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긍휼이 적음을 알려주셨다. 사랑보다 사역이 더 커지면 하나님이 어떤 일의 결정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가진 소유의 크기로 하나님을 잘라낸다. 예수님은 전도여행을 마친 제자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 마을로 떠나셨다. 그러나 무리가 예수님이심을 알고 따라갔고 예수님은 그들을 영접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 하시며 병 고침이 필요한 사람들을 고치셨다. 예수님은 조용한 시간을 깨뜨린 사람들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영접'해 주셨다. 예수님을 사람을 좋아하시고 사랑하였고 정도 많으셨다. 예수님은 무리를 돌려 보냈으면 하는 부담감을 가진 제자들의 영혼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고 도전하심으로 그들 자신 안에 있는 무정함과 더 확장 되어야 할 사랑의 필요를 보게 하셨다. 이것은 우리의 사랑이 더 확장되고 커지는 순간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 되는 일이 일어날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 원하신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영광 따윈 관심이 없다. 죄성 때문이다. 자신의 만족과 영광을 추구하며 산다. 오늘날의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생각속에는 부족함이 없고 풍성하고 모든것이 다 채워져 있는 곳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 반대의 상황은 예수님이 없거나 반쪽 밖에 없다. 하지만 말씀은 예수님이 계심에도 벼랑끝에 서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삶의 배가 가라앉으려 해도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예수님이 더이상 너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고 속상해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함께 하기 때문에 벼랑끝에 서게 되었다'고 속삭이신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육지로 들어갈수 있었다. 그러나 홍해 앞에 막다른 벼랑끝에 서게 하신분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 계신대도 사람 숫자에 비해 가진 것인 비교도 되지 않게 작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뿐이었다. 홍해속에 수장된 바로의 군대를 보면서 무사히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아니었다면 볼 수 없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벳새다 광야에서 날이 저물고 5천명이 먹고 잘 곳이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오병이어를 통해 5천명 이상을 먹이시는 예수님을 경험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 고통과 깊은 절망의 삶을 살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살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누군가를 풀어주고 치유하고 자유케 하실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살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신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누군가를 풀어주고 치유하고 자유케 할것이야'라고 기대하라. 이것이 사랑이자 영광이다.

마음의 눈을 열어 샬롬을 보라

에베소서 1:15-19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설교 요약>
신약 성경에는 ‘행복’ 보다는 ‘샬롬’ 이라는 단어가 주로 언급된다. ‘샬롬’의 뜻은 ‘평안’ 또는 ‘평강’으로 번역된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원한다고 한다면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모두가 ‘샬롬’을 추구한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영주권을 얻고 좋은 직장, 좋은 집, 아이들을 위한 좋은 학교 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이민 온 가정이 있는데, 그 조건이 그 가정의 삶에 만족과 기쁨을 주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물론 이와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비참한 상황에 빠진 그리스도인 부부가 있었는데, 그 부부는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평안과 평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평안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하여 주시고 소망을 주심을 믿어 알기 때문이라고 간증했다. 이것이 바로 ‘샬롬’이다. 세상적인 행복의 조건이 전무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붙잡고, 자신이 고통을 받는 중에도 타인을 향한 긍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샬롬’이다. 
’샬롬’은 세상을 놀라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으로부터 울려퍼지는 소리 없는 찬양이다. 여러분 안에 ‘샬롬’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들 위에 집을 지어서 일 것이며, 눈에 보이는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사울 왕은 원래 겸손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더 의식하기 시작한 후 제사장인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본인이 직접 제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이것은 그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들을 더 의식하며, 자신의 판단에 중점을 두기 시작한 우상 숭배의 형태였다. 이런 관점에서 예배에 참석해도 마음이 올바르지 않고 중심이 그곳에 없다면, 하나님의 눈에는 그 것 또한 우상 숭배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즉,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다른 데서 얻으려 하는 것이 바로 우상 숭배이다. 현대의 가장 큰 우상은 ‘돈’이다. 하지만 돈은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줄 수 있으나 진정한 행복과 평강을 주지 못한다. 에베소서 1:17-18절을 보면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마음의 눈을 밝혀야 한다. 한마디로 눈을 떠라! 깨어나라! 하신다. 나는 지금 무엇을 믿는가? 라는 질문을 매순간마다 대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물을 지으신 후 맨마지막에 지으신 것이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고 우리의 코에 생기를 직접 불어넣으셔서 우리는 생령이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다. 즉,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 그 분과 사랑의 교감을 하도록 만드신 것이 그 목적인 것이다. 하지만, 아담의 죄로 인해 세상의 질서가 깨지고 죽음으로 이르는 형벌을 받게되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셈과 노아, 이삭, 야곱을 통해 인류 구원의 길을 만들어 가셨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그 구원의 길을 완성하셨다. 이것은 창세 전에 예비하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었고, 예수님이 오시기 600년 전인 이사야서 53:4-5절에 예언하신 바였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렸다. 이 평화가 바로 ‘샬롬’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이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교제의 문이 열리고 영으로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마태복음 28:19절에 보면 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우리가 택함을 받은 목적대로, 지어진 목적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이다. 교회가 그 택함을 받은 목적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진정한 평강인 샬롬이 시작되는 것이다. 

포로 된 자가 보아야 할 비전

에스겔 1:1-14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4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6 그들에게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7 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나며
8 그 사방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9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갈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11 그 얼굴은 그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렸으며
12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그 생물들도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3 또 생물들의 모양은 타는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에서는 번개가 나며
14 그 생물들은 번개 모양 같이 왕래하더라

<설교요약>
에스겔은 유다의 여호야 긴 왕과 함께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 당시 포로로 잡혀간 무명의 사람이 쓴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시는 육체적으로 포로가 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적으로 어둠의 세력에 의해 영혼이 묶임을 받을때 드러나는 2 가지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과거의  은혜받은 때만 그리워 하고 현재는 자원함으로 하나님을 경배 못 함.
유대인들은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에서 자유롭게 기도하던 삶의 그리움 때문에 오는 슬픔을 표현했다. 그들은 더이상 하나님을 찬양했던 수금으로 기쁘게 하나님을 찬양할수 없었다. 그래서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어놓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산 그 땅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땅을 축복하길 원하셨다. 영적으로 어둠에  묶이면 과거의 은혜를 그리워 하지만 하나님을 예배하진 않는다. 적극적으로 자원함으로 그 상황 가운데에서도 기름부워 주실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이 있는 그곳이 사단이 장악하고 있는 공간과 장소라고 해도 하나님이 그런것에 제한받지 않으시고 당신의 머리위에 성령의 기름을 더욱 강하게 부워주실 것을 믿는가?  

둘째,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지 않고 타인을 향한 탓과 복수심에 불탐.
그발 강가에서 시인은 자신들을 포로로 끌어온 바벨론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었다. 요셉의 형들은 그를 시기해서 미디안 노예상에게 팔아 요셉은 애굽의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요셉이 총리가 되어 형들을 만났을때 그는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었다. 그리고 모든 그들의 죄를 용서했다. 요셉이 애원하며 살려달라고 부르짖을때 외면한 형제들을 용서하고 복수하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랑은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 이루신 일을 보았기에 가능했다. 영적인 침체에 빠지면 복수와 미움의 마음이 가득해 진다. 복수와 미움은 아무리 해도 만족이 없다. 자괴감의 감정만 남는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속에 있는 에스겔에게 한 환상을 보여주셨다. 우리도 이 환상을 주목해야 한다. 에스겔이 본 사람 형상의 4개의 생물은 한개의 생물에 얼굴이 4개씩 있었다. 4개의 얼굴은 정면이 사람, 오른쪽은 사자, 왼쪽 소,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었다. 얼굴은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다. 동서남북을  동시에 보고 있다. 이것은 모든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특히 에스겔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속에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서만 임재하시는 분이셨다. 그러나 하나님은1000마일이나 떨어진 바벨론 지금의 이라크 땅에서 이런 하늘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맨 앞의 얼굴은 사람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 외모가 아니라 그분의 사랑의 성품이다. 사람은 동물에게 없는 사랑과 정을 소유했다. 수금을 버드나무에 건 포로된 자들이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에스겔과 포로된 자들이 보기를 원하셨다. 오른쪽 얼굴은 사자였다. 숫사자는 하루의 20시간을 그늘에서 쉬며 보낸다고 한다. 사냥을 자제하는 것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사냥에 직접 나서 힘을 소비하는 것을 자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오른쪽의 사자처럼 그분의 자녀들의 오른손이 되신다. 뒤의 얼굴은 독수리다. 독수리의 눈에는 시각세포가 조밀하게 밀집해 있는데 사람은 한곳에 모여 있는 반면 독수리는 두 곳에 있고 그 안의 원추세포 수도 인간의 5배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독수리의 형상이 뒤에 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내가 보는 것 보다 더 넓게 더 높은데서 더 크게 보신다. 우리의 시야는 한정적이다. 우리는 좁게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각은 크다. 

하나님 능력
생물은 날개가 있고 불같고  광채가 있고 번개같이 움직인다. 하나님은 오늘도 한개의 불타는 석탄을 통해 또 다른 영혼들에게 그 불을 옮겨붙게 하신다. 14절은 번개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재림하실때 번개처럼 빠르게 오심을 말씀하신다. 에스겔이 본 환상도 네 생물들이 번개처럼 빨랐다고 한다. 주님은 내가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에도 지구를 7바퀴 반을 도실수 있다. 우린 이런 주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있다.하나님은 수년동안 해결되지 않는 일도 번개처럼 단 시간에 해결하실수 있다. 짧은 시간에 모든 고통과 아픔을 다 치유하시고 갚아주실수 있다. 이런 놀라운 환상이 바벨론 포로된 자들 가운데 있던 에스겔에게 보여졌다. 한주동안 당신이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자신인가? 4생물에 나타난 하나님 성품인가? 불과 번개같은 하나님의 능력인가? 

영원히 남는 일을 위해

누가복음 9:1-6
1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설교요약>

* 선택부터 파송까지의 일
예수님은 12제자를 선택하신 후 부터 계속 그들과 함께 하셨다. 예수님이 하신일을 모두 곁에서 지켜보게 하셨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을 가지 않으시고 처음으로 제자들 끼리만 복음을 전하러 보내셨다. 제자들만 보내시기 전까지 선택부터 파송직전 까지 어떤 일이 있었나 보자. 누가복음6장에 보면 예수님이 산에서 밤새 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아침에 12제자를 부르시고 사도로 세우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병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다. 그 다음에 산에서 팔복의 말씀을 전하셨다. 그 다음 백부장 믿음대로 그의 종의 병을 고쳐주셨다. 나인성에서는 한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셨다. 그리고 세례요한을 칭찬하셨다. 그 다음에 한 죄인인 여자가 자신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 주시는 일이 있었다. 그 여인의 죄사함과 많은 사랑을 드러내셨다. 그 다음에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 하심으로 4종류의 밭중에 한개의 좋은 땅에서 백배의 결실을 맺는 것을 말씀 하셨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 형제요 자매고 어머니라며 영적가족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리고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항해 하다가 배가 물에 잠기는 상황에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두려워 하는 제자들이 그런 상황속에서도 믿음을 가질것을 교훈하셨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면서 이런 비슷한 은혜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부어주시는 말씀과 성령의 은혜가 크고 마치 자신이 천국의 한 중심에 들어와 있는듯한 은혜를 누린적이 있는가?  주님을 따르다가 어려운 삶의 풍랑을 만난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만약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왜 그런 은혜를 주시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다음구절은 그런 은혜를 주신 목적을 말씀하고 있다.

* 영원히 남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해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예수님은 이 날을 위해 제자들을 훈련하셨다. 그리고 때가 되매 제자들 끼리만 보내셨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을 알지 못해 고통과 외로움과 슬픔에 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천국의 삶을 누리기 원하신다. 지옥같은 삶에서 나오기 원하신다. 그래서 제자들을 보내 그들을 고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 믿음으로 살게해서 또 다른 믿음을 낳게하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세상의 이런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보낼 제자를 찾고 계신다. 훈련시키신다. 때로 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영원하고 가치있는 일을 위해 제자들로 하여금 풍랑도 지나게 하시고 물이 가득해서 삶의 배가 가라앉기 직전까지 가는 일도 경험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 가라앉는 배를 건지시는 분이 예수님임도 경험하게 하신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가라앉고 있는 삶에서 건져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 이심을 전하게 하는 믿음을 예비시키신다. 요한복음 6:27 예수님은에 말씀처럼 썩는 양식이 있고 영원히 썩지 않는 양식이 있다. 양식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한다. 영원히 썩지 않는 양식을 예수님이 주시겠다고 하신다. 우리가 성령안에서 성령을 위해 한 일은 영원한 음식이다. 그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양식이 된다. 요한일서 2:16-17에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 때문입니다.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라고 했다.  세상정욕, 육체의 욕망은 언젠가 없어지고 사라진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는 없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거둔다고 한다. 갈라디아서 6:8의 말씀을 보면 세상의 정욕과 욕망은 계속해서 열매가 나타나 우리의 삶에 고통을 안겨준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심은 것은 누군가에게 생명을 주고 영감을 주고 계속해서 없어지지 않는 천국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성령으로 심은 것은 우리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심지어 이 세상과 결별해도 영원히 남아 생명으로 흘러간다. 

* 영원히 남는 것을 심으려면
첫째.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따라 일하라.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고린도 전서 3:10에 따르면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 야망이나 누군가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일하지 않고 하나님이 은헤를 따라 기초를 놓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일하려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혜와 은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특별하게 주신 은혜들이 있다. 그 은혜와 은사들을 사용하려면 먼저 주님께 기도하고 묻고 실행에 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 우리의 영혼에 기쁨이 있고 타인의 삶에 유익이 되는지를 체크해 보라. 

둘째. 사람이 아닌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일이다. 
고린도 전서 3:11-15을 보면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불에도 타지 않으나 나무나 풀이나 짚은 불에 순식간에 타 없어진다. 예수님은 금과 은과 보석과 같다. 내가 아닌 예수님을 주고 내가 아닌 예수님이 드러나는 결정들을 한것은 영원히 존재한다. 이것은 사람이 가릴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불이 결정한다. 불은 환란과 연단으로 성경에 종종 묘사된다. 예수님은 환난과 고난의 불속에서도 타지 않는다. 다니엘 3:25에는 평소보다 7배나 뜨겁게 해서 그들을 던지던 사람들도 모두 죽었는데 그들은 네번째 사람의 보호에 의해 타지도 않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고 불속에서 다시 나왔다. 다니엘 3:17-18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품은 사람들은 환난과 고난이 와도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예수님만 따라가고 그분만 드러나는 가를 생각하고 어떤 일을 결정한다.

셋째. 자신의 내면이 하나님의 성전인것을 항상 생각하며 산다. 
고린도 전서 3:16-17말씀을 보면 방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없다. 쓰레기가 자신의 방에 쌓여있는것을 보고 마음이 편한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사람들, 성령으로 심는 사람들은 내면에 악한 생각과 거룩하지 못한 마음들이 들어오면 불편해 한다. 즉시 하나님께 회개하고 고백하며 예수님의 보혈로 영혼을 씻는다.말씀으로 기도로 씻는다. 하나님은 거룩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주님께 드리는 일을 보석처럼 영원한 일로 남게 한다. 
당신은 영원히 남는일을 위해 살고 있는가? 
한주간 동안 영원히 남을 일을 한다면 어떤일이 될것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