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하는 사랑 1

사도행전 18:12-28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공급하심

사도행전 18:1-11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설교요약>
무역도시이자 남 그리스와 북 그리스 사이의 연결 도시로 이용되었던 그리스는 그 당시 가장 부유하고 사람이 많은 도시였다. 그러나 이런 재물로 인해 교만과 부도덕, 동성연애 등의 사악한 죄악이 이곳에 만연하게 되었다.이 곳에서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장막을 지으며 복음을 전하게 된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시는 공동체 내에서의 사람과의 은혜와 수동적인 은혜들을 살펴보자.

사람 은혜
바울이 홀로 아덴을 거쳐 낯선 고린도에 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마침 믿는 유대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게 해주셨다. 그들은 당시 로마에 살고 있었는데 황제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는 바람에 고린도로 이민을 와야만 했다. 당시 수공업의 기술을 가지고 있던 바울과 이 부부의 직업도 동일했다. 그래서 함께 일을했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을 도우며 헌신했다. 당시 지중해 근방에는 많은 나라들과 도시들이 있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그 많은 로마의 식민지와 도시들로 갈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고린도에 왔을 때는 놀랍게도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한 시점 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까지도 아까워 하지 않고 바울을 도왔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누군가 당신을 위해 목숨도 아까워 하지 않고 돕는다면 어떨것 같은가? 꺼져가던 영혼도 다시 뜨겁게 타오르지 않겠는가? 우리는 주님을 따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경험들을 자주한다. 함께 주를 위해 일하고 먹고 웃고 울었던 사람들이 곁을 떠나간다. 그때 마음이 슬퍼질수 있고 열정이 약해지며 힘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 다시 하나님을 기대해야 한다. 하나님은 또 다른 도울자를 예비시키시고 보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바울과 아굴라 부부처럼 함께 일하고 주를 섬기며 헌신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들을 주도적으로 세워가야 한다. 그렇게 하는 목적은 사람들의 존엄성을 세워주고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관계로 세워가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새롭게 주시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생각하라. 그들을 뜨겁게 사랑하라. 만약 지금 아무도 없는것 같다면 떠나간 사람으로 인해 슬퍼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하라. 하나님은우리에게 사람을 주시는 분이시다.

수동 은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도 자신이 주도적으로 회당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고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와 베뢰아로 들어갔다. 거기서도 자원해서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했고 믿었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한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다시 몰래 그곳을 떠나 아테네에 도착했다. 아테네 에서도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매일 장터에서 철학자들과 변론하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체포되다 시피해 법정에 서야 했다. 그 전에는 빌립보에서 자원해서 귀신들린 여종을 귀신을 쫓아내어 자유케 해주었다가 빌립보 감옥에 수모를 격어야 했다. 그러나 그 감옥에서도 자신을 때리고 고통을 준 간수에게 복음을 전해 구원받게 해주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바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한 일이다. 그런데 당시 바울 곁에서 카메라맨 역할을 했던 저자 누가는 고린도에서 두드러지는 한 인상적인 장면을 적고 있는데 그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영에 강하게 붙잡힌 모습이었다. 지금까지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열정적으로 사역하며 헌신했다. 그런데 고린도에서는 하나님이 그를 등에 엎고 뛰시는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몸은 추운데 전혀 그것을 느끼지 못할때가 있다. 몸은 휴식을 원하는데 생각은 전혀 힘들지 않고 괞찮다고 느낄때가 있다. 그 상태를 방치하면 몸에 문제가 생긴다. 바울은 어쩌면 자신이 느끼는 어떤 영적인 육적인 기갈이 있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는 고린도에서 노동을 하면서 안식일 마다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했다. 4절 '안식일 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he reasoned in the synagogue, and persuaded the Jews and the Greeks' (4절-NIV) 여기서 두개의 동사는 분명 능동태로 쓰여졌다. 우리는 주를 따르면서 자신의 상태를 잘 알지 못할때가 있다. 자신의 느낌과 실제가 다를때가 있다. 실제는 마음이 두려운데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외로운데 외롭지 않다고 느끼며, 몸이 힘든데 크게 힘들지 않다고 느낀다. 반면 그 반대일때도 있다. 두렵지 않은데 두렵다고 느끼고, 외롭지 않은데 외롭다고 느끼고, 힘들지 않는데 힘들다고 느낀다. 이때 우리의 상태를 정확하게 아시는 분은 하나님 이시다.이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수동태의 은혜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사로잡으시는 은혜다. 그 우리 자신과그 짐의 무게도 모두 그분이 짊어지시기 위함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수동의 은혜다.

우리는 그분의 푸근한 가슴에서 다시 새힘을 얻는다. 그분의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큰 평안과 생명을 공급받는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힌 바울을 보면서도 그를 핍박하고 공격하는 유대인들의 증오는 계속되었다. 그때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한 증거를 남기며 유스도라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고 회당장 그리스보와 온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밤에 다시 환상중에 바울에게 나타나 두려워 하지 말고 계속 전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와 함께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그를 아무도 해할수 없게 지켜 줄것이라고 하시며 그 도시에 하나님이 구원할 사람들이 많다고 다시 수동의 은혜를 주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강권적인 수동적인 은혜를 보면서 그것을 의지가 약하고 의존적이고 요행을 바라는 삶이라고 유대인의 율법적인 관점으로 볼수있다. 매순간 하나님 앞에 굴복하라. 그분 앞에 무릎꿇고 십자가 앞에 나오라. 그리고 은혜 아니면 살수가 없다고 고백하라. 그때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하고 우리의 사랑은 더욱 진실해져 가고 우리의 선행은 더욱 생명을 주는 축복이 될것이다.

하나님을 보려면

사도행전 17:15-34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나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고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들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붇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나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여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슴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고 있었더라 
 

<설교요약>
사도바울은 2차 전도여행때 베레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선동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도록 방해를 받았다. 바울은 핍박하는 무리들에게 쫒기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아테네에 머물면서 베레아에 남아있던 디모데와 실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바울이 전했던 말씀중에 두개의 구절을 함께 묵상해 보려고 한다.

정해주신 시간과 경계
26절에 보면 두 개의 단어가 눈에 띈다. '연대와 경계' 다. 연대는 “정한 때” 라는 어떤 시기와 기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경계는 “정해진 한계”라는 장소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시간과 장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시간과 장 소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라
27절을 보면 성령은 바울을 통해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신다. 특히 '더듬어' 라는 단어는 “만져보다” 라는 의미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를 주의 깊게 묵상해 봐야 한다.

하나님을 찾는 방법
1) 축복하는 사역이다.
야곱의 생애를 한가지로 압축하면 “축복하는 일”이었다. 창세기 47장 9절에서 10절을 보면 애굽의 왕인 바로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다. 그 다음에 야곱의 죽음이 가까워 올 때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복하는데 이때 장자인 므낫세에게 야곱이 오른손을 얹지 않고 둘째인 에브라임에게 얹은 것을 보고 잘못 얹은 줄 알고 요셉은 아버지의 손을 옮기려 했다. 그러나 야곱은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창: 48:19) 하며 그 손을 옮기지 않고 에브라임을 므낫세 보다 앞세웠다. 이것은 야곱이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영에 붙잡혀 축복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12명의 아들들을 축복하며 생애를 마쳤다. 그리고 훗날 그 예언들이 모두 성취되었음을 그 증거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또한 하나님의 영에 붙들려 한 축복임을 증명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선택하시고 그분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시겠다고 감동시키신 일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야곱이 가졌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다.당신이 누군가를 축복할 때 당신은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2)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
시편 143장 7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그분의 얼굴을 숨기실 때 자신의 영혼이 피곤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얼굴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그분의 얼굴이 우리에게 비취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증거는 기쁨과 평안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침을 뱉었다. 이제 하나님은 이렇게 수치와 폭력으로 인해 일그러진 이 땅의 영혼들의 얼굴을 그분의 손으로 감싸주고 상처를 싸매주며 흐르는 눈물과 피를 닦아주는 사람들을 찾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가로막는 고질적인 방해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수치와 폭력에 상한 마음이다. 우리는 마음이 완벽하게 죄 사함 받고 치유 되기 전 까지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삶 속에서 겪는 슬프고 마음상하는 일들이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의 고통 받는 마음에 치유와 기쁨을 줄 수 있는 능력임을 말씀하고 있다.하나님이 당신의 그 해결되지 않은 슬픔과 고통들로 누군가를 치유하고 있을 수 있음을 믿으라.

3) 하나님을 찾으려면 한번에 한 사람씩 사랑하라.
야곱이 요셉이 보낸 수레를 타고 애굽으로 내려갈 때 그의 전 가족은 70명 이었다. 하지만 야곱이 147세에 그의 임종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창: 48:4). 야곱이 이 비전을 40세에 받았다고 하면 거의 100년이 지난 시간이지만 야곱은 죽음 직전에 하나님의 비전을 분명히 기억한다. 외적인 상황만 본다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계속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이 일에 중심에는 요셉이 있었다. 야곱에게 있어 요셉은 두 가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준다. 첫째. 사랑은 다시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둘째. 완벽하지 않은 사랑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 하나님은 야곱의 불완전한 사랑으로도 요셉같이 훌룡한 용서와 사랑과 생명을 사랑하는 열매를 거두게 하셨다. 또한 죽은 줄 알았던 그 사랑을 다시 부활시키셨다. 우리의 사랑은 예수님처럼 완벽하지 않다. 우리의 사랑은 물거품처럼 되버릴때가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것 보다 계속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신다. 우리가 한번에 한 사람을 사랑하려 할 때 완벽하지 않아도 때로 물거품처럼 되어도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신다.

당신은 누군가를 축복하고 기도해 주고 있는가? 당신의 슬픔과 고통으로 누군가의 얼굴의 수치와 상처를 닦아주고 있는가? 한 번에 한 사람씩 사랑하고 있는가? 그러면 하나님이 살도록 인도해 주신 땅과 그 시간들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보게 될 것이다.

준비된 마음

 

사도행전 17:10-14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설교요약>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대하는 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가 그분의 말씀을 마음과 뜻을 다하여 신중히 기쁨으로 듣기 원하신다.

준비된 마음과 믿음
듣는 것이 신중한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도 상대방이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신중하게 말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그도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신중한태도를 취하지 않는 현상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가 말씀을 듣는 중에 읽고 묵상하는 중에 소망의 생각과 마음들을 주셨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가?

눈으로 보는 것을 누릴 수 있는 준비된 마음
성경에는 눈으로 보았지만 누리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다. 12명의 정탐꾼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눈으로 보았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죽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실것이라는 약속을 약 1년 4개월 전 이미 홍해를 건너기 전에 모세를 통해 들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실것 뿐만 아니라 그 땅에 할일도 미리 말씀해 주셨다. 따라서 그들이 보았지만 누리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가 아니다. 1년 4개월 전에 주신 말씀을 마음에 넣어 놓지 않고 신중하게 듣지않고 건성으로 들었기 때문에 막상 현실에 부딪칠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못하고 현실의 상황 앞에 절망하게 된것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해준 사랑의 말들을 쉽게 잊지 않는다. 그것은 건성으로 듣지 않고 진심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듣는 것은 사랑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을 어려서부터 암송하고 외웠다. 그러나 그 말씀안에 예언 되어 있는 메시야 예수님에 대해서는 왜 보지 못하는가? 이것은 지식으로는 받아 드렸는지는 모르지만 준비된 마음, 신중한 마음으로는 받아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받아 드리지 않는 말씀은 결국 사단이 그의 눈을 가려 속임 가운데로 인도하기 마련이다. 말씀은 우리 삶의 '사용설명서' 다. 우리는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알려면 말씀을 준비된 마음으로 잘 들어야 한다. 그러면 그분을 더욱 잘 보게 되고 그분이주시는 것을 보는것 뿐만 아니라 모두 누리게 된다.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
주님이 우리와 24시간 동행 하시는데 왜 만남을 준비해야 하는가? 공식 예배와 또는 개인 경건의 시간은 늘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 하나님과 밖에서 만나는 시간과 흡사하다. 우리는 이런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간을 통해 기대와 기쁨으로 채워지는 천국을 경험한다.

1) 할 말들을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을 미련한 사람 보다도 더 미련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말들 속에는 소원도 고백도 아픔도 갈등도 감사도 기쁨도 모두 들어 있게 된다.

2) 기도로 준비한다.
기도하며 준비할 때 이미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하늘의 문이 열리고 축복들이 부어 지기 시작한다. 응답들이 주어진다.

3) 빈 그릇을 준비한다
미리 시간 전에 와서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메마른 땅이 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은혜를 사모하면 하나님은 그 준비한 마음의 그릇에 그분의 은혜를 부어 주신다. 특히 당신의 모든 생각, 계획, 염려를 비워 빈 그릇이 되게 하라. 온갖 세상 것들로 가득 찼다면 먼저 주님 앞에서 고백하며 비우면 주님이 채우실 것이다.

4) 선물을 준비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무엇인가 주고 싶어진다. 주면서도 받아주면 너무도 고마워 한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까 생각하며 나오라. 그때 눈으로 보는 것을 누리게 될것이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사도행전 16:35 - 17:9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한대 
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주니라

<설교요약>
두 종류의 사람
우린 삶에서 위로 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상황은 위로 받기 보다 위로 해주고 돌봐주어야 하는 상황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 내면에는 갈등이 일어날수 있다. '나는 누구에게 위로를 받지? '라는 불만이 계속 솟아오른다. 그러나 또 다르게 반응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계속 위로하고 누군가를 돌보면서 자신의 길을 간다. 그리고 계속 누군가에게 공급을 받는 것처럼 힘이 있고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그들은 '다음엔 누굴 위로하고 도울까?' 라고 말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 당신의 삶은 이 둘 중에 어느 쪽에 속했는가? '위로 해 주는 자를 계속 찾는가?' 아니면 '위로 해 줄 사람을 찾는가?'

기대치 않은 위로
바울 일행은 야손의 희생 덕분에 안전하게 형제들에 의해 베뢰아에 도착했다. 사도행전 17장 10절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리라' 야손과 그의 가족은 바울과 그 일행을 향한 하나님의 큰 위로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소유까지 걸고 바울을 도왔다. 더 큰 위로는 이 짧은 시간에 데살로니가에 많은 영혼들이 예수를 만났고 그들의 삶과 믿음은 '아가야' 즉 마게도냐 남쪽 그리스 영토 전역에 본이 되고 향기가 된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계속 위로하고 돌보야 하는 상황에도 계속 기쁨으로 그 일들을 해 나갈 때 하나님은 전혀 기대치 않은 위로와 선물로 우리를 만나주심을 믿는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음
잠언서 29장 25절에 이렇게 말씀한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 무에 걸리지만 주님을 의지하면 안전하다'(잠: 29:25) 'It is dangerous to be concerned with what others think of you, but of you trust the Lord, you are safe' (GNT)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각인 되고 싶다.
2) 사람의 도움과 사랑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3) 그 관심과 도움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사람의 거절과 배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마음을 쏟을 때 일어나는 변화들은 무엇인가
1)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상황속에서 인도해 가신다.
2) 기도하게 된다.
3) 진정한 사랑으로 사람을 대한다.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유익보다는 진실한 마음으로 대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피곤해지고 유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을 존중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유치하게 생각되면서 점점 사무적이고 이익중심적이고 실용적인 가치만을 추구하게 된다. 이 또한 사람을 두려워하는 삶의 전형이다. 바울은 빌립보에 한 영혼 때문에 고통을 당했다. 그는 루디아 한 사람, 귀신들린 한사람, 감옥의 한 간수, 데살로니가의 한 사람 야손을 세상의 가치기준과 직업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으로 진심으로 대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전혀 기대치 않은 위로를 주셨다. 그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을 일으키셨다. 그런 삶을 살수 있는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주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더 많은 시간과 삶을 드리는 하루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을 생각하고 신뢰할 때 나의 내면과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확인하고 글로 적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