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전쟁

누가복음 4:5-8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

<설교 요약>
광야로 이끈 두번째 이유 -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기 위해
마귀가 두번째 예수님을 유혹한 것은 자신에게 절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절하다' 라는 동사는 '~을 향하여 입맞추다, 경배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다'라고 할 때 사용되는 언어다. 사단은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예배를 자신에게 하라고 유혹한다. 그 미끼로 세상 영광과 권력을 모두 주겠다고 유혹했다. 이것을 사단은 다시 한번 자신도 모르게 네 가지를 인정한 셈이다. 첫째.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둘째. 하나님은 사람들의 예배를 받으신다. 세째. 예배에는 놀라운 축복이 숨겨져 있다. 넷째.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를 자신에게 하기 원한다. 이 시점은 예수님이 3 년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려는 시점이다. 예수님은 저물 때 모든 사람이 집으로 돌아갈 때도 홀로 감람산으로 가셨다. 요한복음 7:53-8:1에 따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저녁이 되어 제자들을 배에 태우어 보내신 후 홀로 산으로 가셨다. 마가복음 6:46에 따르면 새벽에 홀로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마가복음 1:35에 따르면 예수님은 자주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이셨었고, 기본적으로 열 두 명의 제자의 늘 함께 하는 삶을 사셨다. 그러나 그런 삶 속에서도 홀로 어디론가 가곤 하셔서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을 찾아야만 했다. 혼자있는 것은 외로울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홀로 있지 않으셨다. 요한복음 8:29을 보면 예수님은 삼 년간에 공생애 동안 제자를 훈련하고 복음을 전하고 설교하시고 병든자를 고치고 귀신 들린자 들을 자유케 해주시는 사역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께 엎드리는 시간 그분께 예배하는 시간만큼은 어떠한 것과도 타협하지 않으셨다. 수많은 무리가 자신을 애타게 찾을 때도 예수님은 예배를 드리러 떠나셨다. 요한계시록 22:5에 따르면 하나님의 임재가 단절된 곳에는 영원한 고통, 절망, 지루함, 그리고 슬픔만이 존재한다. 시간이 아닌 사단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에는 아직 시간도 존재하고 하나님의 임재도 존재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와 그 분과의 깊은 예배가 깊어질수록 우리 삶의 시간속에서 지루함도 외로움도 점점 작아지고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분과의 교제가 단절 될수록 시간 안에 있는 아픔과 고통과 절망과 슬픔과 외로움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가 흐르는 예배는 이땅의 시간 안에서 천국을 살게 하는 힘의 원천이고 생수의 근원이다. 아무것도 아닌데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그 시간에는 기쁨과 치유와 회복과 자유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가 없는 곳에는 사단이 지배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예배가 건강하고 살아있을 때 그들은 매순간 삶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임재를 경험한다. 그러나 예배의 태줄이 끊어지면 내면은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간다. 당신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온전히 드리고 있는가? 예배드리는 것을 다른것과 타협하지 않고 있는가?

마귀의 유혹 - 예배 안에 있는 축복들을 받지 못하도록
마귀는 예수님의 예배를 파괴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렇게 단계별로 유혹했다. 순식간에 예수님을 데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여주었다. 세계의 나라의 왕국에는 부귀와 권력과 영화가 모두 있다. 한 나라의 왕은 뭐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한다. 누가복음 4:6과 요한복음 3:35 말씀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던 공생애 초기에 한 말씀이다. '주셨다' 라는 동사가 현재 완료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미 예수님에게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모두 예수님에게 주심을 알 수있다.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그렇다면 아들의 것이기도 하다. 잠언 8:27 에는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잠언8:29-30에는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그는' 예수님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함께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알수 있다. 한 나라의 왕국은 하늘과 땅, 바다와 태양과 자연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왕국의 주인도 하나님이시고 예수님 이시다. 그러므로 마귀의 이 거짓말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농토를 가진 주인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와 그 주인의 농토를 보여 주면서 당신이 나에게 잘만 보이면 내가 이 농토를 당신에게 주겠다' 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마귀의 조그마한 유혹에도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린다. 거짓말에도 잘 속아 넘어간다. 세상의 영광과 권력에 취하고 유혹에 점점 무릎 꿇을 때 나타나는 두드러지는 증상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세상의 영광과 권력의 달콤함의 유혹이 너무 강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권력과 영광과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마귀에게 이 땅의 주권을 넘겨준 일이 없으시다. 스스로 자신의 것이라고 거짓말 한다. 자신이 하나님인양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협박도 하고 달래기도 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세상 정욕과 유혹에 넘어지고 변질되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부요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배도 자신의 영달과 야망을 위해서는 단숨에 포기한다.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사단에게 팔려고 한다.

마태복음 6:25, 31-34 말씀은 무엇인가? 하늘과 땅의 주인은 마귀도 아니고 우리 자신도 아니고 우리의 육신의 부모나 권력이나 재력의 빽도 아니다. 바로 하나님 이시다 라고 말씀하신다. 막상 예배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희생시켜 돈을 벌고 직장에 들어가고 출세를 한다해도 우리는 우리 힘으로 지혜로 안되는 일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때 누가 우리를 이런 정신적이고 육체적이고 영적인 총체적인 고통에서 구해줄수 있을까?  한분 밖에 없다. 하늘과 땅과 세상 모든 영역에 주인되신 하나님 이시다. 그 하나님은 예배안에 계시다. 예배가 풀리면 모든것이 풀린다. 예배가 막히면 모든것이 막힌다.

당신은 삶의 최우선 순위는 무엇인가? 당신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원수가 두려워하는 것

누가복음 4:1-4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설교요약>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직후 하늘로서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가 너를 기뻐한다' 라는 음성이었다. 그러나 이 일 직후 예수님은 성령에 의해 광야로 이끄심을 받았다. 왜 하나님은 40일 동안 광야에 머무르게 하셨을까?

이유 -  떡 만이 아닌 말씀으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 가운데로 인도되셨다.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고 맑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이 세상 육신의 자랑, 안목의 정욕, 쾌락의 삶이 이때 거룩함과 순결과 사랑의 삶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하고 있을 때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하러 왔다. 

유혹 - 하나님의 음성 듣지 못하게 하도록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질 때 마귀는 특별히 예수님이 거의 잡수시지 않기로 작정한 기간의 마지막 부분에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유혹했다.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님은 얼마 전에 세례를 받으시면서 하늘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가 너를 기뻐한다' 그러나 마귀는 그래도 다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유혹한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할 때 내면에 들려오는 마귀의 음성을 잘 분별하고 대적해야 하는 이유를 확인시켜 준다. 이것은 아빠와 아들 엄마와 딸이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데 낯선 사람이 와서 아들과 딸에게 '네 아빠 엄마 맞아 정말?' '이렇게 닮은 구석이 없는데' 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마귀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고 육신의 본능과 탐욕대로 살라고 부추긴다.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라고 속인다.  예수님은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다. 그러나 돌을 떡으로 만들며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시지 않으셨다.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핑계 대며 돌을 떡으로 만들며 합리화시키지도 않으셨다. 인간적인 욕정과 쾌락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사셨기 때문이다.

떡이 아닌 말씀으로 사는 방법 
1) 입을 하나님께 드리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기를 원하신다. 
2) 열방을 두려워하지 말고 파괴하고 세워라. 하나님의 말씀이 입을  통해 마음에 들어오면 파괴할 것이 보이고 다시 세울 것이 보인다. 
3) 맞서게 하시는 은혜. 세 번째 우리가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내가 너를 보호하고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당신은 사단이 파괴한 하나님의 창조물을 되살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떡이 아닌 말씀으로 사는 사람이다. 원수가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75인 중에 빛나는 보석처럼

누가복음 3:23-38
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24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얀나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25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아모스요 그 이상은 나훔이요 그 이상은 에슬리요 그 이상은 낙개요 
26 그 이상은 마앗이요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서머인이요 그 이상은 요섹이요 그 이상은 요다요 
27 그 이상은 요아난이요 그 이상은 레사요 그 이상은 스룹바벨이요 그 이상은 스알디엘이요 그 이상은 네리요 
28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앗디요 그 이상은 고삼이요 그 이상은 엘마담이요 그 이상은 에르요 
29 그 이상은 예수요 그 이상은 엘리에서요 그 이상은 요림이요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30 그 이상은 시므온이요 그 이상은 유다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그 이상은 요남이요 그 이상은 엘리아김이요 
31 그 이상은 멜레아요 그 이상은 멘나요 그 이상은 맛다다요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 
32 그 이상은 이새요 그 이상은 오벳이요 그 이상은 보아스요 그 이상은 살몬이요 그 이상은 나손이요 
33 그 이상은 아미나답이요 그 이상은 아니요 그 이상은 헤스론이요 그 이상은 베레스요 그 이상은 유다요 
34 그 이상은 야곱이요 그 이상은 이삭이요 그 이상은 아브라함이요 그 이상은 데라요 그 이상은 나홀이요 
35 그 이상은 스룩이요 그 이상은 르우요 그 이상은 벨렉이요 그 이상은 헤버요 그 이상은 살라요 
36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그 이상은 아박삿이요 그 이상은 셈이요 그 이상은 노아요 그 이상은 레멕이요 
37 그 이상은 므두셀라요 그 이상은 에녹이요 그 이상은 야렛이요 그 이상은 마할랄렐이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38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설교요약>
누가는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의 족보를 추적해서 그 근원까지 적고 있다. 아담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탄생하고 번성했지만 하나님이 한 족속을 선택했고, 그 족속 중 한 사람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셨다. 여기에 기록된 75인 중,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따르며 그 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 사람들의 특징을 추적해 보자.

하나님의 씨를 일으키는 것에 마음을 쏟았다
아벨을 죽인 가인은 성을 쌓고 도시를 건설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보다는 나의 유익을 우선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어 갔다. 분명 아담과 하와와 그의 후손들은 가인의 후손과 멀지 않은 곳에 살았고, 가인 후손의 악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따르는 새로운 씨가 일어나길 갈망했을 것이다. 창세기 4장 2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아벨을 대신할 셋이라는 다른 씨를 주셨다. 하나님은 셋을 통해서 혼돈과 타락 속에 있는 가인의 세상을 제자리로 돌려 놓길 원했다. 하지만 창세기 4장 26절에 보면 셋의 아들인 에노스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셋이 105년 동안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며 삶을 드린 결과였다.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회의적일 때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바라보시고 그 분의 불을 보내주시기 때문이다.

셈과 아르박삭의 후손이라도 하나님께 믿음의 반응해야 한다
노아의 아들인 셈은 1년 10일 동안 방주 안에서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위대하심을 체험했고, 아버지인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실수했을 때, 동생 야벳과 함께 부친의 나신을 옷으로 덮어드렸다. 그 후로 셈은 하나님을 섬기는 영적인 복을 받았다. 셈과 그의 아들인 아르박삭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생존해 있었다. 서로 교류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의 직계 조상인 노아와 셈이 경험했던 방주와 하나님에 대해 분명히 전해들었을 것이다. 그 때까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직접 만나주시고, 그의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번성케 할 것이라 약속해 주셨다. 아직 상속자가 없던 85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도 하나님이 하실 수 있음을 믿는 고백을 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살게 하셨으며,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 하나님은 어린 다윗이 하나님을 비웃는 골리앗에 대항해 믿음으로 싸우게 하셨고, 마리아의 약혼자인 요셉에게 천사를 보내 잉태될 아들이 예수님임을 계시하여 그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셨다. 삶 속에서 당신의 힘과 능력으로 하려다 되지 않아 모든 걸 내려놓고 성령을 의지하여 신실함으로 기도하는 영적 방법을 통해  때 닫혔던 문이 쉽게 열린 경험은 없는가? 누가의 족보에 있는 75인 중에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그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믿음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도록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그런 상황을 주실 때 믿음으로 반응했다는 점이다.

잠언서 11장 30절에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이라고 신약은 분명히 말한다.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에 지혜로운 자는 영혼을 얻는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의인을 축복하면 의인의 마음은 항상 따르는 사람에게 자신을 우상 삼게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를 섬기게 한다. 그 생명나무는 생명 되신 예수님이시다. 요한 계시록 2장 7절에 보면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가지려면 댓가 지불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전제한다. 사랑은 희생이다. 처음 사랑은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처음 행위도 이렇게 순수하다. 그러나 이런 사랑을 하려면 마음을 다칠 수 있고 아픔을 경험할 수 있고 상처가 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시고 생명나무 과실을 주어 먹게 하신다. 또한 치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평안과 기쁨과 보화들을 안겨준다.

흥정과 믿음

누가복음 3:18-23
18 또 기타 여러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19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20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설교요약>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자기 앞으로 나서는 이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 때 그 군중 사이에 섞여 있던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러 세례 요한 앞으로 나오셨다. 줄 서 있던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인식하거나, 알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그 물에서 올라오실 때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첫째, 비둘기 같은 형체의 성령이 예수님 위에 임했다.  둘째, 하늘에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이런 일을 행하셨을까? 답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어느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수의 무리 속에서 존재감이 희미해질 때 
예수님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줄을 서 세례 요한에게로 나아가고 계셨다. 아무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사랑 받는 분임을 알지 못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 가운데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자신의 존재가 미미함을 느낄 때가 있다. 사람은 자신의 존재 자체의 가치를 상실하면 슬퍼지고, 우울해지고, 심하면 여러 유혹들에 쉽게 넘어가게 된다. 잘 나고 경쟁적인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나의 말을 들어 줄 누군가가 그리워 질 때가 있다. 하나님은 이 때, 우리에게 주목하시며 하늘을 여시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가 너를 기뻐한다고' 말씀하시고 싶어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대단한 일을 이루지 못했어도, 우리가 어떤 것으로 인해 기뻐할 때, 우리의 기쁨을 더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당신은 오늘도 당신을 향해 이유 없이, 조건 없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딸이다, 너는 내 기쁨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고 있는가?

공적 사역으로 여러가지 내면의 소리를 들을 때 
예수님은 30년 동안 목수의 아들로 이름 없이 살았다.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 금식 기도를 하신 후 공적 사역을 시작하셨다. 이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그 음성은 '일을 그르치지 말아라, 멋지게 일을 해야 한다, 일주일에 금식은 몇 번 해야 한다'류의 음성이 아니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자다' 라는 음성이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이러한 음성과 마음이 항상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 옆에 있는 사람의 사역을 보니 그 사람을 더 사랑하시는 것 같아.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지? 나는 왜 이렇게 능력이 없지?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해' 라는 음성도 들릴 때가 있다. 식물의 생명이 뿌리에 있음 같이, 사역의 뿌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 뿌리가 뽑히거나 상하면 줄기나 가지나 열매나 모두 금방 시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열매가 더디 맺혀도, 외적인 식물의 형태가 초라해 보여도, 뿌리만 튼튼하면, 언젠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떤 일을 했을때, 그것에 대해 인정 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넣어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 이유는 우리를 보고 있고, 인정해 주는 어떤 존재가 반드시 있음을 의식하며 우리가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때로 희생을 해야 하고, 헌신을 하게 되더라도, 계속해서 기쁨으로 그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관계가 건강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어려운 상황과 어려운 사람들을 만날 때 
헤롯 안디바는 선을 알면서도 악을 선택한다(19-20절). 이런 인격을 형성하게 된 이유는 아버지 헤롯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 헤롯은 자기 두 딸과 아내를 죽이고, 충직한 신하들을 감옥에 보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그 지역 두 살 아래 아이들을 모두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성장한 자녀들은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부모의 사랑으로 채워져야 할 내면은 사랑이 아닌 공포와 불안으로, 그리고 곧 헤로디아가 아버지 헤롯의 사랑으로 채워졌어야 할 안디바의 내면을 대체 하였다. 헤로디아는 그를 악하게 조종하였다. 하나님은 안디바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듣고,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세례 요한을 통해 다시 주셨다. 그러나 그는 세례 요한을 죽였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죽인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헤롯 안디바 혹은 헤로디아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성장 과정부터 꼬이고 묶인 사람들이다. 그런 배경 속에서 자라나며 잘못 형성된 인격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때로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 넣는다. 심하면 판단력도 흐려진다. 더 심하면 사람들의 행동과 말에 의해 깊은 우울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비둘기 같은 형상의 성령으로 오실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으로 채워진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고전 2:11-12) 분별력과 은혜로 우리는 이미 주신 선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확인의 방법 : 흥정인가? 신뢰인가? 
예수님 물에서 올라오신 것은 세례 요한의 인도 덕이였다. 예수님이 인간의 손을 의지한 것은 인정과 사랑 때문이다. 이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 들려왔다. 구약에 나병 환자였던 나아만이 엘리사의 말대로 요단강에 몸을 여섯번이 아니라 일곱번째 몸을 담글 때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처럼 회복되었다.
물은 말씀이다. 물은 예배 속에 흐르는 성령이다. 찬양과 기도 속에 흐르는 성령이다. 일곱번은 반복을 의미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 속으로 계속 반복해서 들어갈 때 우리 삶에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고, 닫혀있던 것들이 열리기 시작한다. 한 번 두 번 해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만두는 것은 흥정이고 조건적인 믿음이다. 몸이 물로 들어갈 때 마음도 영혼도 들어간다. 그래서 예수님도 친히 자신의 몸을 세례 요한에 맡기시며 물 속에 잠기셨다.

당신은 계속해서 그 성령의 강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가? 말씀의 강물 안으로 반복적으로 들어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흥정이 아닌 믿음으로 주를 따르는 사람이다. 

 

쭉정이와 알곡

누가복음 3:7-17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10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하고 
14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설교 요약> 
자연에는 좋은 열매도 있고 나쁜 열매도 있다. 좋은 열매는 먹을 수 있으나 나쁜 열매는 먹을 수 없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외쳤다. 누가복음 3:9 절 말씀에서 믿는 사람들은 두 가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한다.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한 조건 
누가복음 3장 9절 말씀에 기초할 때 '믿는 사람들이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던져질 수 있다. 누가복음 3 장 7 절에서 8절을 보면 세례 요한은 자신 앞으로 나오는 이들의 내면 상태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들은 먼저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아브라함 혈통의 사람들에게, 요한은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다. 독사는 사단을 상징하는 명사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의 믿음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아브라함의 혈통이라는 육적 자부심에만 빠져 있었고, 외형적으로만 믿음의 후손으로 보일 뿐이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1. 좋은 열매를 맺는다
첫번째, 좋은 열매는 회개의 열매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먼저 예수님께로 나아가 우리 죄를 회개하게 한다(요한복음 14 장 6 절).
그런데, 말로만 회개하고 행동에 변화가 없다면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씨앗은 가장 먼저 회개의 열매로 나타난다. 세례 요한은 단순히 회개라고 하지 않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라고 했다. 고백을 '회개의 씨앗'이라고 보고 행동의 변화를 '회개의 열매'라 보았다. 참된 회개는 눈으로 볼 수 있게 드러난다. 결국 나로부터 시작된 회개는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가게 되고 지속적인 열매를 맺게 된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진정한 회개에 대해 누가복음 3 장 10 절에서 14 절을 통해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의 핵심은 행동이 수반된 회개다. 좋은 열매는 예수님 안에 거할 때 맺어진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 장 5절을 통해,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다는 것은 말씀 안에 있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회개는 나의 노력과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과 나무이신 예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로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드려지는 회개는 구원 받기 위한 '거듭남의 회개'다. 그 이후에는 '성화를 위한 회개'를 계속해야 한다. 요한복음 15장 2절을 보면, 지속적으로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가지 치기를 해 주어야 한다 말한다. 주님을 따르면서 계속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2. 성령의 불에 태워진다
두번째,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그 분께 붙어 있는 가지임을 확신시켜 줄 증거는 성령의 불에 태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회개할 때, 예수님이 부어주실 성령의 불에 대한 약속이다. 성령과 불로 나누어 말했지만 성령을 불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성령의 불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부어 주시기 원하신다. 시내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의 영혼에 불을 붙인 것도 가시떨기 나무에 붙은 하나님의 불이었다. 이 하나님의 불을 체험하고 모세는 애굽에서 고통받는 200만명의 영혼들을 구해냈다. 그 이후로도 이 불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속해서 나타나 이들을 보호해 주었다. 특히 구약의 불은 번제와 연결되어 있다. 번제는 두 가지 목적으로 드렸다. 첫째. 지은 죄를 사함받기 위한 속죄의 제사였다. 둘째,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제사였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독자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을 받았다. 하나님은 이미 번제물로 이삭을 정했다. 그 이삭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런데 이삭처럼 자신을 받고 싶어하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번제할 어린 양을 찾는다. 하나님은 오늘도 스스로를 번제물로 드리기 위해 우리가 광야 길을 걸어갈 때, 불로 우리를 감싸신다. 

당신은 준비된 불과 나무를 보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좋은 열매 맺기를 원하신다. 좋은 열매는 삶의 변화가 있는 회개다. 좋은 열매는 나를 위해 준비된 불과 나무를 보면서 기꺼히 자신을 번제로 드리는 자원함이다. 예수님 안에 거하라. 말씀 안에 거하라. 회개의 열매와 불의 열매는 말씀 안에 있다. 이것이 쭉정이가 아닌 '알곡'이다.